근대 이후 스포츠가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양상으로 나타난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대회처럼 근대국가를 기반으로 성립한 스포츠의 경우에는 국가주의가 표면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대회에 참가한다. 국가대표라는 명칭은 선수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의 멍에를 지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위원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별 국가는 금메달 개수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경쟁을 부추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결국 선수 개인들이다. 메달이나 기록과 같은 성적에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대다수 현대인들이 겪는 노동의 소외가 스포츠선수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23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갈라쇼에서 '이매진(Imagine)에 맞춰 열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
안현수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시선은 혼란스럽고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한국 선수로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까지 했음에도 이번에는 경쟁국가의 선수로 참가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안현수를 둘러싼 논란을 보게 되면 올림픽과 같은 현대스포츠에서 국가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빙상연맹을 비롯한 국가에서 관리하는 대부분의 스포츠연맹들은 국가주의의 상징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대회를 위해 ‘태릉선수촌’이 운영된다. 하지만 최근 알려진 것처럼 비인기종목 선수들은 선수촌 식당을 이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빙상연맹의 사례처럼 폭행과 파벌 등의 문제점 역시 메달지상주의나 국가주의가 아니라면 그 정도로 심각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라는 국가가 그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 정점에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통치를 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푸틴은 안현수에게 훈장까지 수여함으로써 국가의 영웅으로 대우하고 있다. 선수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는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일종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권경우 문화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