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인간의 역사다.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온 과정이자 결과이며,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했다. 역사가들은 지도라는 텍스트에서 수많은 콘텍스트를 본다. <지구 끝까지-세상을 바꾼 100장의 지도>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지도 100장을 선정해 시원한 칼라지면으로 소개하는 지도사 입문서다.

100장의 지도에는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콘텐츠가 많다. 기원전 7년 로마제국의 실세 아그리파가 만든 세계지도에는 로마인이 바라본 세계가 담겼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아시아가 북쪽, 아프리카가 동쪽, 유럽이 세상의 서쪽에 위치했다. 아시아의 끝은 인디아(인도)였다. 1300년 경 중세시대에 그려진 엡스토르프 지도의 경우 지도가 예수의 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지도의 심장부에는 예루살렘이 위치했다. 근대의 관점에서 보면 무가치한 지도이지만, 당시의 세계관을 보여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무슬림이 작성한 지도에는 성지 메카가 중앙에 위치했다. 남쪽이 지도의 위를 향해서 늘 아프리카가 위에 자리 잡았고 유럽은 아래에 ‘박혀’ 있었다. 이슬람문명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항해와 무역이 발달했던 이슬람권의 지도는 유럽보다 정확했다. 점차 해상무역이 중요해지자 선원들이 축적한 지식을 모아 선으로 항구를 연결해 최단거리와 항로를 표기한 포르톨라노 해도가 등장했다.

이후 해도 제작기법의 발전과 선박 제조 기술의 발전, 나침반의 등장과 구텐베르크의 이동식 활자 인쇄술 등장, 지중해의 이슬람패권 강화로 인한 해외무역의 필요성 등이 대항해시대를 추동했고 지도의 진화를 이끌었다.

   
▲ 지도제작자 발트제뮐러의 세계지도. 1507년 작품.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지도사의 황금기였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신세계>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는다. “내가 찾아 헤맸고, 결국 발견한 이 새로운 지역을 신세계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지역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신세계’의 등장으로 지도는 급격히 발달하고, 정밀해지며 신세계가 열렸다. 보다 정복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제국의 시대에는 과학적인 지도학이 발달하며 영토를 정교하게 구분했다.

근대에 들어서며 정복이라는 목적 외에도 여행과 사회분석을 위한 지도가 나타났다. 1889년 영국 런던에선 빈곤지도가 등장해 런던 인구의 35%가 빈곤이하에서 살고 있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20세기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영국군이 영국 폭격기부대원들에게 비행기 격추 이후 수용소에서 탈출하기 위한 용도로 실크 재질의 정교한 탈출용 지도를 주었다. 이 지도에는 독일의 도로와 지명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이 책에선 지도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들도 등장한다. 2000년 전 알렉산드리아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낸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리학 입문>을 펴내고 지도를 수학적으로 구축했다. 당시 8000개에 이르는 지명과 지리적 지형지물에 대한 사전도 편찬했다. 지도제작에 관련한 그의 프레임(개념틀)은 오늘날까지 지도학을 지배하고 있는데, 위선을 동심원의 호로 나타내고 지도의 위를 북쪽으로 설정한 것이 모두 그의 프레임이다.

   
▲ '지구 끝까지'. 제러미 하우드 저, 이상일 역. 푸른길. 28000원.
 
오늘날 통용되는 지도를 만든 16세기의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는 지도가 무엇을 보여 주느냐보다 지도의 정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주목했다. 그는 세계를 직사각형으로 재현하며 평면 위에 구체를 펼쳤다. 북극과 남극이 적도와 같은 평평한 선으로 표현됐다. 이 같은 도법으로 인해 나침반 경로를 정확히 설정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지도는 인간을 위해 ‘지구 끝까지’ 묘사해냈다.

1600년대 대항해시대의 ‘마젤란 세계 일주 항로’나 고대 승리의 여신 니케의 동상을 보며 드러나지 않은 역사에 묘한 흥분을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은 매력적이다. 굳이 텍스트를 읽지 않고 책에 담긴 100편의 지도만 봐도 좋다.

굳이 이 책의 아쉬움을 꼽는다면 저자가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역사학자라는 점이다. 이 책은 필연적으로 유럽 중심·서양 중심의 지도사를 서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보완하고 싶다면 <대항해시대>(주경철, 서울대학교출판부)와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옥순, 푸른 역사>을 함께 읽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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