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취재환경 마련을 위해 힘을 모은 55개 언론사 소속 884명의 언론인들은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피해 당사자인 여성 기자 한명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감찰본부는 성폭력 사안에 대해 최소한 견책 이상의 징계를 내리도록 되어 있는 대검 예규가 버젓이 있는데도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 대해 가벼운 ‘경고’ 처분을 내리는 데 그치고 감찰을 종결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26일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현 대구서부지청장)는 기자들과 송년회 자리에서 피해 여기자에게 “내가 참 좋아해” 등의 말을 하고 손을 만지고, 등을 쓸어내리고 허리를 껴안고 술자리가 끝난 이후에도 문자를 보내는 등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우리 언론인들은 치욕적인 술자리 언행부터 피해 당사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여러 사람의 2차 피해까지 겪으며 지금까지 해당 기자가 느꼈을 무력감과 수치심에 십분 공감한다”라고 밝힌 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권에 대한 검찰 내부 의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낙후돼 있는지를 새삼 실감한다”고 비판했다.
▲ 이진한 전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연합뉴스 | ||
언론인들은 “검찰은 인권을 중시하며 폭력을 근절하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검찰의 기본 직무를 저버렸다. 언론사에서 여성 기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취재 중 발생한 성폭력 문제는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날 성명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전면 재조사를 실시하고, 가해자인 이진한 대구서부지청장을 중징계하라 △검찰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해당 기자에게 사과하라 △검찰은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를 바꾸고 적극적인 성폭력예방교육 등 확고한 재발방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서명운동의 실무를 맡았던 한 기자는 “서명자 개인명단은 처음부터 적시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총인원만 발표하고 명단은 정리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내일 자(25일)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성명내용이 담긴 지면광고를 게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성명은 이진한 검사 고소 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자료로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한 검사에 대한 언론인들의 비판은 이번 성명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이진한 검사의 처벌을 촉구하는 여성단체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 ||
이 기자는 이어 “비슷한 일을 저지른 다른 검사는 감봉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진한 검사는 차장검사라는 높은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감봉 이상의 징계를 받아야 했다”고 지적한 뒤 “이진한 검사 스스로 옷을 벗고 물러나는 게 맞지만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인들의 이번 성명에 대해 “가해 당사자들이 충분한 징계나 처벌을 받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언론인들이 뜻을 모은 것 같다”고 지적한 뒤 “이번 사건은 취재원과 취재기자 사이의 잘못된 관계설정이 빚어낸 결과다. 한국은 정보를 주는 권력집단의 우월적 지위에서 기자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비단 여기자와 그릇된 성문화를 가진 검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성평등 취재환경 마련을 위한 언론인 성명 전문이다.
▲ 이진한 검사의 처벌을 촉구하는 여성단체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