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스포츠단체의 부정·비리 행태와 관련하여 조직 사유화와 파벌주의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 측면의 문제일 뿐 부정‧비리 문제를 발생케 한 근본적 원인의 문제는 아니다. 공론화를 통한 바람직한 개선방안이 도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원론적인 문제 제기보다 스포츠단체를 둘러싼 문제의 근본적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 21일 새벽(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해안 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라스 경기장에서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열렸다. 피겨 종목 마지막 경기였다. 우승자는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가 되었다.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김연아' 선수는 아쉽게도 소트니코바 선수보다 적은 점수를 획득해 종합점수에서 5.48점 차로 지고 말았다.

그런데 심판의 점수 판정에 대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시비 논란이 일고 있다. 김연아 선수에게는 점수를 짜게 준 반면에 소트니코바 선수에겐 후하게 점수를 주었다는 것인데 러시아의 홈 어드밴티지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쳤다는 것이다. 편파 판정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국민들이 심판 판정의 편파성과 부당성을 주장하며 국제빙상연맹(ISU)의 재심을 구하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선수단과 대한빙상연맹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빙상연맹에 심판 판정 문제에 대해 항의하였다고 한다.

   
▲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23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갈라쇼에서 '이매진(Imagine)에 맞춰 열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법적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국제빙상연맹이 김연아에 대한 심판 판정, 즉 점수의 적정성 여부를 재론할 순 없다. 특별한 사정이란 심판이 의도적으로 부당하게 점수를 매겼다는 심판의 폭로나 증거의 발견을 말한다. 국제빙상연맹 규약(General Regulation)은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 선수의 경기(performances) 평가(evaluations)에 관한 심판결정은 이의제기(protest)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예외적으로 점수계산의 오류(incorrect mathematical calculation)가 있는 경우에만 경기종료 후 24시간 이내에 문서로 이의제기가 가능하다(rule 123, 4 A).

'인간의 실수'인 심판 판정은 재론할 수 없다는 ISU 규정

또한 국제빙상연맹 규약은 난이도 레벨이나 구성에 대한 잘못된(wrong) 평가는 '인간의 실수(human error)'이지 점수계산 오류의 문제가 아니므로 이의제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지금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연기의 난이도 레벨이나 구성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의 김연아 선수 점수나 소트니코바 선수 점수의 타당성 여부를 국제빙상연맹 차원에서는 다툴 수는 없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심리 원칙중의 하나가 스포츠에서의 심판 판정은 심판이 고의적으로 부당하게 판정하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심리할 수 없다는 것이므로 이 문제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로 끌고 갈 수도 없다.

스포츠에서의 심판 판정이 항상 시비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대개 피겨, 체조, 태권도 등 심판의 판정에 따라 승부가 가려지는 경기에서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심판 판정은 원칙적으로 그 부당성 여부를 다툴 수 없고 따라서 판정을 돌이킬 수 없다는 규정과 원칙으로 인해 이러한 경기에서 심판의 중립성과 판정의 공정성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따라서 스포츠계는 국내외적으로 심판 판정의 편파성과 주관성을 최소화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데 나름 노력하여 왔다.

경기전 심판 배정의 공정성을 위한 심판 제척·기피 제도를 도입하자

그러나 제도의 허점이 원인인지 인간 본성의 한계가 원인인지 계속 심판 판정의 편파성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엄현한 현실이다. 선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또는 파벌의 이익을 위해 선수가 흘린 땀과 눈물의 가치를 깡그리 무의미하게 만드는 편파적인 심판의 판정은 어찌보면 범죄행위이다. 태권도 선수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심판 편파 판정에 어찌할 도리가 없어 목숨을 던져 그 부당함을 알리고자 한 사건을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심판 판정의 편파성 문제를 없앨 수 있을까? 지금 거론되고 있는 피겨에서의 심판 실명제처럼 기술적인 측면에서 심판 판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 노력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심판의 배정과 구성 단계에서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선수측에서 볼 때 자신에 대하여 명백하게 편파적인 판정을 할 우려가 있는 심판에 대해서는 경기 전에 선수측이 심판을 기피 신청하거나 객관적으로 볼 때 어느 한 쪽에 치우쳐 판정을 할 심판은 당연 제척되는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물론 심판 풀의 여건이나 경기 진행의 문제로 인하여 어느 정도 제약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심판의 기피·제척 제도를 도입하자. 심판의 기피·제척 제도가 잘 운영이 된다면 사전에 편파 판정의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는 그래도 행복한 것이다. 심판 판정이 편파적이고 잘못되었다며 국민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국내 스포츠 경기에서 파벌이니 뭐니 하는 문제로 일어나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심판 판정에 대해 평범한 선수와 가족은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다. 돈 없고 배경 없는 탓을 할 뿐이다.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받은 어린 선수는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 어린 선수 중에는 미래의 김연아, 박태환 선수가 될 소질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제2의 김연아가 될 선수가 제2의 김연아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스포츠계로선 죄악이다.

<필/자/소/개>
필자는 중학교 시절까지 운동선수였는데 운이 좋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따른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그런 바람을 칼럼에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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