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 대변인으로 간 민경욱 전 KBS <뉴스9> 앵커와 MBC 차기 사장 후보로 떠오른 이진숙 워싱턴지사장을 두고 공영방송 KBS와 MBC에 대한 우려와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두 사람의 모습이 한국 공영방송의 현실이라는 지적과 함께 더 이상 공영방송에 기대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KBS <뉴스9> 앵커 출신의 민경욱 문화부장은 지난 5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4일 밤 <뉴스9>에서 리포트를 맡았던 언론인이 하루 만에 대통령의 입으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주당 신경민 의원실이 주최한 ‘MBC사장 선임, KBS 민경욱 사태로 본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저널리즘’ 토론회 자리에서 정홍규 KBS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오전에 복도에서 만난 사람이 오후에 청와대로 간 사건이었다. 입사 이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며 “언론인 동료에게 치욕을 준 이 사람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며 무력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은 민경욱 전 앵커의 청와대 행을 두고 “욕먹는 시간은 짧고, 부귀영화는 길다는 기성세대의 맨탈리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은 기자가 전문직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끊임없이 공영방송은 황폐화되고 있고 기자는 월급쟁이로 격하되는 일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민경욱 전 KBS 앵커. ⓒKBS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취재현장에서 언론인들이 바로 정·관계로 직행하고 있다”며 “언론현장에 있다가 정치에 참여한 언론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유리한 기사나 칼럼을 통해 간접적으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원하고 있다. 언론의 독립성을 해치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지금껏 청와대로 간 언론인은 많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은혜 MBC 보도국 차장이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홍상표 전 YTN 보도국장도 이명박 정부에서 홍보수석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조순용 KBS 보도국 편집주간이 정무수석으로, 김영삼 정부 때는 주돈식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경욱 전 앵커의 청와대행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최진봉 교수는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정부를 대변하고 홍보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며 “KBS가 정권의 홍보맨을 배출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라 비판했다. 민경욱 전 앵커는 ‘뉴스·프로그램 진행자는 공영방송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KBS 윤리강령 1조 3항을 위반했다.

문제는 공영방송 내에 ‘제2의 민경욱’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은 “우리가 공영방송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 걸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언론장악만이 문제일까. 우리 내부에 있는 변질된 저널리즘은 문제가 아닐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 이진숙 MBC 워싱턴지사장. ⓒ이치열 기자
 
MBC의 상황은 KBS보다 심각하다. 21일 결정될 차기 MBC 사장 후보로 김재철 체제의 공헌자인 안광한 MBC플러스미디어 사장·이진숙 워싱턴지사장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진숙 지사장은 기획홍보본부장 시절이던 지난 2012년 10월 최필립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만나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MBC지분을 팔아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논의한 것이 알려져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최진봉 교수는 “김종국 현 사장의 차기사장 후보 탈락이 의미하는 것은 청와대가 지금의 MBC보다 더욱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MBC구성원이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김재철 사장 측근인 이들이 신임 사장에 임명되면 MBC는 김재철 체제로 복귀하고 증오와 보복 경영은 계속 될 것이다. 그럼 MBC정상화는 물건너 간다”고 우려했다.

2011년 MBC에서 정년퇴직한 뒤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MBC에서 31년 근무했다. 처음에는 KBS가 MBC주식을 갖고 있었다. 그 다음 지금의 방송문화진흥회 구조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야 6대3 구조였다. 결국 그게 그거였다”라며 “사장이 바뀔 시기가 되면 청와대만 바라보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MBC 개별 회사의 문제가 아니고, 공영방송 체제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성주 MBC노조위원장 역시 “권력의 속성상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이 있다. 구조의 벽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성주 위원장은 “부당해고에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장에 대거 지원했다. 우리는 계속 하루하루 싸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무력한 상황은 어쩔 수 없다. 정홍규 KBS새노조 간사 또한 “동료들이 뉴스타파 같은 대안언론으로 떠나고 있다. 위기다”라고 말했다.

민경욱 전 KBS 앵커는 아무렇지 않게 대통령의 입이 되어 국민 앞에 섰다. 공영방송 MBC를 황폐화시킨 김재철 체제를 상징하는 이들은 사장후보에 올랐다. 더 이상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기에는 무력감이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언론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죽은 공영방송을 살리는데 전력을 다할 것인지, 아님 뉴스타파나 국민TV를 살리는 데 조직적 역량을 투입할 것인지 질문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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