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이동통신 요금인가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통신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미래부는 곧바로 해명 자료를 내고 “검토 대상일 뿐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 14일의 일이다. 미래부는 “요금제와 가계 통신비 부담, 이용자 보호 등 제반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요금제 개선 로드맵을 6월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요금인가제란 선발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의 격차를 보완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1991년 도입된 제도다. 무선통신에서는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 시내전화에서는 KT가 요금을 결정할 때 방송통신위원회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2위와 3위 사업자들은 자체적으로 요금을 책정해서 신고만 하면 된다. 1위 사업자가 가격 인상을 주도하거나 가격을 끌어내려 후발 사업자를 배제하는 등의 불공정 경쟁 행위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문제는 지난 18년 동안 요금인가제가 오히려 요금 인하를 막고 가격 담합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데 있다. 이를 테면 SK텔레콤이 지나치게 낮은 요금제를 내놓아 만년 꼴찌 LG유플러스를 도태시키는 사태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SK텔레콤이 적당히 요금을 끌어올리면 KT와 LG유플러스가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아 서로 경쟁을 회피하면서 가격을 담합하고 과도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동통신 시장의 불법 보조금 경쟁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신형 단말기까지 마이너스폰으로 쏟아져 나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입점한 한 휴대폰 매장. ⓒ연합뉴스.
 
실제로 통신 3사 요금은 변별력이 없을만큼 거의 비슷하다. 월 정액 6만2000원 요금제의 경우 SK텔레콤이 기본 제공 음성 통화가 350분에 데이터가 6GB, 문자 메시지가 350건인데  KT는 음성과 문자 메시지는 같고 데이터만 5GB로 조금 적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과 정확히 같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6만2000원 요금제 바로 아래 단계인 월 5만2000원 요금제로 내려가면 무료 제공 데이터가 2~2.5GB로 뚝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TE 이용자들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2.3GB(지난해 8월 기준) 수준인데 2~2.5GB와 5~6GB 사이에 중간 단계가 없어서 중장기적으로 월 6만2000원 요금제 이상으로 가입자당 매출이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요금제가 비슷한 것도 문제지만 중간 단계 요금제를 없애서 한 단계 위의 요금제로 옮겨가도록 유도하는 이른 바 업셀링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과거 3G 요금제와 비교하면 담합의 징후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SK텔레콤의 경우 3G에서는 월 3만4000원에 음성이 150분에 데이터가 100MB였는데 LTE로 넘어오면서 같은 요금에 음성을 120분으로 줄이고 데이터를 550MB로 늘린다. 4만4000원 요금제에서는 3G에서 음성이 200분에 데이터가 500MB였는데 LTE에서는 음성이 180분에 데이터를 1.1GB로 늘린다. KT와 LG유플러스도 거의 비슷한 요금제를 베끼다시피 해서 내놓았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3G 무제한 요금제도 실제 사용량보다 더 많은 요금을 내게 만들었지만 LTE로 넘어오면서 평균적으로 1만~2만원 이상 더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신 3사는 LTE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가입자당 매출(ARPU)가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전 이사는 “SK텔레콤이 들고 온 요금제를 미래부가 거의 그대로 인가해주기 때문에 요금 인가가 곧 가격 가이드라인이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11년에는 SK텔레콤이 교묘하게 인상된 LTE 요금제를 신청했다가 방통위에서 거부된 사례가 있지만 며칠 뒤 인가가 난 요금제 역시 기본 골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KT와 LG유플러스도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았다. 지난해 6월에는 LG유플러스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자 KT가 바로 그날 저녁에 SK텔레콤이 다음날 아침에 거의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아 베끼기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요금인가제 폐지를 주장했던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요금 인하 정책이 오히려 사업자들이 담합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인가 사업자가 요금을 인하하면, 후발 사업자들이 그에 맞춰 유사한 수준으로 요금을 인하하는 의식적 병행행위를 반복하는 사례가 빈번한데 이 과정에서 후발 사업자들 사이에 묵시적 합의가 있다면 담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 이사는 “요금인가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요금을 낮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요금제 보다는 단말기 보조금이 마케팅 수단으로 더욱 강력하기 때문에 요금을 낮춰서 가입자 유치 경쟁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전 이사는 “요금인가제를 폐지할 게 아니라 요금인가제를 제대로 시행해서 SK텔레콤부터 요금을 내리도록 압박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국장은 “과점 상태의 통신 시장에서 무작정 요금인가제를 폐지하고 시장 논리에 맡겨 두자는 발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 “기술 혁신의 혜택을 기업들이 챙기면서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비용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인데 규제 당국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거품을 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국장도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면 미래부 등이 통신 요금에 개입할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통신사들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SK텔레콤이 50% 점유율을 크게 넘지 않으면서 가입자를 묶어두려는 입장이라면 KT와 LG유플러스는 공격적으로 가입자를 빼앗아 와야 하는 입장이다. KT와 LG유플러스가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SK텔레콤은 요금인가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특히 LG유플러스는 요금인가제 폐지는 시기상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요금인가제가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할 거라고 하지만 SK텔레콤은 앞장서서 가격을 인하할 의지가 없다”면서 “LG유플러스가 앞장 서서 mVoIP(모바일 인터넷 전화)를 전면 허용하고 무제한 음성통화 요금제를 도입하는 등 가격 인하를 주도한 것과 달리 SK텔레콤은 망내 할인이나 망내 무료 통화 등 자사 가입자들을 묶어두는 락인(lock-in) 전략에 치중해 왔다”고 지적했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라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요금인가제 폐지 이후 SK텔레콤이 자발적으로 요금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동안 방통위에서 보류돼 왔던 약탈적 요금제들이 출시되면서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SK텔레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지만 SK텔레콤이 요금인가제 폐지의 유일한 수혜자가 될 거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전 이사는 “이제 와서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서 요금을 낮추겠다고 말하는 건 그동안 방통위가 SK텔레콤 등의 부당이득을 방치해 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이사는 “요금인가제 폐지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요금상한제라도 도입해서 부당이득을 환수하고 고평가돼 있는 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되돌려 놓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정환 기자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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