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7일 오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이 선고한 것을 두고 “증거주의를 무시한 정치적인 판단”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이번 판결로 인해 사상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합진보당은 “사법부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이라고 밝혔다.

수원지법 형사 12부(부장판사 김정운)은 17일 오후 2시에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이 의원의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상호 등 나머지 피고인에게는 징역 4∼7년, 자격정지 4∼7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내란음모와 선동 혐의에 대해 “내란음모 사건 제보자의 진술 신빙성이 인정되며,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이 존재한 사실도 인정된다”며 이 모임의 총책임자가 이 의원이라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지난해 5월 두 차례 모임은 조직 모임으로 봐야한다”며 “사상학습 소모임은 RO의 세포모임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재판부는 이 의원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인정했는데, ‘혁명동지가’와 ‘적기가’를 부르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사실이 판단의 근거라고 밝혔다. 적기가는 북한의 혁명 가요이며, 혁명동지가는 가수 백자씨가 1991년 만든 노래다. 가수 백자씨는 이번 판결이 나오자 “제 노래 불렀다고 유죄판결 받으신 분들께 죄송하다”며 “혹시 저 창작자라고 잡혀 들어가면 사식 부탁드린다”라고 트위터에 썼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과는 달리, 이번 판결을 두고 ‘정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래군 ‘인권센터 사람’ 소장은 1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국정원과 검찰 입장을 일방적으로 들어준 정치판결”이라며 “공판 과정에서 부정됐던 증거도 모두 실체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증거주의, 공판 중심주의가 깨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회 부위원장도 1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제보자는 법정에서도 진술이 오락가락했는데 법원은 이를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진술을 토대로 판단할 것이라면 재판을 할 필요가 없다. 북한처럼 즉결처분하면 된다”며 “증거주의에 입각한 판단이 아니라, 국정원과 검찰이 조성했던 여론 재판”이라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어 “법원마저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면 대한민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검찰이나 국정원은 권력의 눈치를 본다고 해도 법원은 여론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김용판 판결도 그렇고 사법부가 왜 이런 국정원과 검찰이 만든 여론에 근거한 판단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부위원장은 이번 판결이 ‘파시즘의 전조’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은 과격한 말 자체가 내란음모가 될 수 있다. 아무도 자기 사상을 표현할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민중가요도 못 부르는 세상이다. 막걸리 보안법처럼 막걸리 내란음모가 성립하는 판국” 이라고 말했다. ‘막걸리 보안법’은 시민들이 술김에 한 말조차도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 데서 생긴 말이다.

   
▲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지난해 9월 4일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 후 퇴장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박래군 소장도 “한국사회가 굉장히 극단적인 이념 공세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겨울 공화국으로 가지 않을까”라며 “구체적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절차가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고. 5월 12일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구속수사가 확대될 것이다. 또 정치적인 반대세력은 모두 이적단체로 규정해 탄압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이날 오후 5시께에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참담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검찰에 이어 사법부까지 박근혜 정권의 영구집권 야욕 앞에 충성을 맹세했다”며 “이번 사건이 불법대선개입으로 해체 위기에 몰린 국정원이 거꾸로 (이석기 의원 등에) 죄를 뒤집어씌우고자 조작한 것임을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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