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추’를 아시나요? 요즘 들어 박근혜 정부와 보수세력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이름 중의 하나이다. 정식 명칭은 ‘정의와 상식을 추구하는 시민 네트워크’이다. 조직을 갖춘 시민단체도 아니다. 어엿한 홈페이지도 없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SNS 네트워크’이다.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 번역이 가능하거나 SNS 홍보, 언론사 제보, 그래픽, 디자인, 영상편집 등 재능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회원이다. 국내외의 한국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정상추’는 “국내외에서 모두 힘을 모아 정치 사회 교육 문화 환경 등 전반에 걸쳐 잘못된 정책과 부조리·부정부패의 근절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후손들을 위해 올바르고 강한 대한민국,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고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주로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세계 각국의 언론보도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알린다. 다음 아고라에도 올린다. 최근에는 한국뉴스를 영역하여 외국 언론에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정상추는 한국의 주류언론이 외면하는 외신보도들을 신속하게 번역하여 배포한다. 현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된 외신보도를 번역하고 있다. 원문을 올려 놓은 뒤 한글로 번역하고 이에 대한 감수도 한다. 정상추의 기사를 받아쓰는 매체는 이미 30여곳을 넘는다. 외국 언론들도 정상추에게 정보 및 자료를 요청하기도 한다.

정상추의 외신번역 서비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외국순방 때 돋보였다. 한국 언론의 특파원이나 수행기자들이 외면하는 순방국 언론의 보도를 즉각 번역해 배포했기 때문이다. 특파원과 수행기자들은 국빈 방문한 국가들로부터 환대받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한다. 인도와 프랑스 방문 때 해당국 언론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보도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상추는 박 대통령에 비판적인 언론보도를 번역해 국내에 배포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 있는 독자들도 순방국의 비판적 언론보도를 읽을 수 있었다.

지난 1월 박 대통령의 인도방문을 앞두고 인도 유력지 ‘뉴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한국 대통령 방문 반대시위를 준비하는 마을주민’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디힌키아 마을 주민이 포항제철 프로젝트에 내어준 환경 인허가권을 두고 한국 대통령 박근혜 반대시위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신문은 ‘박근혜의 인형을 태우기로’ 결정하고 ‘박 대통령이 머무는 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포스코가 제철소를 건설하려는 이 지역에서는 마을 전체를 고립시키는 폭력에 의해 5명이 죽고 십수명이 부상했다.

지난해 프랑스 방문 때 박 대통령은 프랑스어로 연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국내 언론들은 ‘마음의 메시지’였다며 찬양 일변도로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박 대통령이 왜 기립박수를 받았는지는 전하지 않았다. 국민은 정상추가 프랑스 르몽드의 기사를 번역해준 뒤에야 진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르몽드는 ‘한국 공공부문 시장을 외국기업에 개방 예정’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300여명의 프랑스 청중이 외국기업에 한국의 공공부문 시장을 조만간 개방하겠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공표한 사실에 특히 만족했다”는 내용이다.

르몽드는 “비관세 장벽을 폐지함으로써 양국간 교류에 장애가 되는 일련의 장벽들을 제거하기 위한 대통령 시행령이 며칠 이내에 내려질 것”이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명확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도시철도 분야 진입장벽도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날 대통령도 없는 자리에서 국무회의는 ‘세계무역협정의 정부조달협정에 관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박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철도시장 개방, 민영화’ 등을 약속했고, 한국정부는 다음날 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정상추는 외국의 주류언론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교황청 라디오나 위성방송, 블로그 뉴스, 시사월간지 등 외국매체의 한국관련 뉴스는 빠짐없이 번역해 소개한다. 교황청 공식라디오인 ‘바티칸 라디오’의 “한국에서 가톨릭교회와 정부의 사이가 험악하다”는 보도가 그렇다. 세계 최대의 블로그 뉴스인 ‘글로벌 보이스’의 보도도 정상추가 아니면 지나칠 뻔했다. 글로벌 뉴스는 “한국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밝혀지면서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비영리 매체인 글로벌 보이스는 자원봉사 번역가들을 통해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미국의 위성방송 링크TV는 “한국에 거대한 매카시즘이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영리 뉴스전문 위성방송사인 링크TV는 미국내 3,300만명의 가시청권과 660만명의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보도도 정상추가 번역해 우리말 자막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시사월간지 ‘카운터 펀치’가 보도한 ‘한국의 정치적 불기둥’ 기사도 정상추가 소개했다. 카운터 펀치는 최근호에서 대선 당시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을 이용해 여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남북정상회담의 발췌문을 왜곡해 야당 후보를 공격했던 일을 다뤘다.

국내사정이 정확하게 외신에 전달되지 않자 최근에는 외국매체에 국내사정을 알리는 시도도 하고 있다. 정상추는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 상황을 영문기사로 작성해 CNN iReport에 보내기도 했다. 단순히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외신 기사를 찾아내 전달하는 데서 벗어나 한국의 실상을 외국에 알리는 데 적극 나선 것이다.

정상추는 박근혜 정부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외국 언론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보도를 가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 대통령은 아버지 시절의 외신통제가 그리울 지도 모르겠다. 박정희는 국내언론 못지않게 외국언론도 극심하게 통제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내려보낸 보도지침은 외국 언론의 보도에 더욱 민감했다. 외국에 상주하는 공보관을 통해 한국관련 외신보도를 사전에 탐지한 뒤 엄격하게 통제했다. 외국의 신문 잡지 등은 사전에 검열한 뒤 비판적인 뉴스는 잘려나가거나 시꺼멓게 먹칠하여 국내에 배포됐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특파원들은 중앙정보부의 도청이나 미행, 감시 등에 시달려야 했다. 박정희에 비판적인 뉴스를 작성한 특파원들은 추방당하기도 했다. 외국 신문사의 서울지국이 폐쇄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김대중 납치사건 관련보도 때문에 서울지국이 강제로 문을 닫아야 했다. 특파원들도 모두 추방됐다. 이에 따라 정작 내국인들은 한국관련 외국의 반응을 접하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의 인권침해는 외국 언론의 주요뉴스였고 세계 각국과 인권단체의 주요관심사였다.

반대로 박정희나 유신을 찬양하는 기사는 국내 언론에 도배되기 일쑤였다.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뉴스였다. 정부에서 외국 지방신문사 편집국장 등을 초청해 향응을 베푼 뒤 대통령을 인터뷰하게 한다. 신문에 대통령을 찬양하는 기사가 실리면 당사국 주재 한국 대사관 공보관이 우리말로 번역하여 문공부에 보낸다. 중앙정보부는 보도지침을 통해 국내 언론사가 이를 보도하도록 하면 그만이다. 방송사에는 해당국 주재 특파원에게 번역된 기사를 보내 읽도록 하면 된다. 외국 언론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전철을 밟아 외신을 통제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보도에 민감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사설에 대응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정치인과 교과서(Politicians and Textbooks)’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의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두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반영하기 위해 교과서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베 총리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지우길 원하고, 난징 대학살도 축소 기술되길 원하고 있다”며 “일본의 전쟁침략을 세탁하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본 식민지배 당시 한국인들의 친일협력 내용과 한국의 독재 정권의 묘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과 친일행적에 민감한 가족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아베의 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이 패망한 이후 연합국에 의해 A급 전범으로 체포됐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는 일제 식민통치 시기 일본군의 장교였으며 남한의 군사 독재자였다. 두 나라에서 교과서를 개정하려는 위험한 노력은 역사의 교훈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다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가 뉴욕타임스에 엄중히 항의하고 공식 사과보도를 게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가 과거역사를 집요하게 왜곡하는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동일시하는 사설을 개재했다”면서 “사실관계가 틀린 황당한 사설의 게재는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에 근거해 의견을 표명한 사설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뉴욕타임스가 잘못된 사설이라며 사과한 적도 없다.

이런 가운데 정상추에 색깔을 입히려는 시도들이 잇따라 주목된다. 인터넷에는 정상추를 국정원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네이버의 ‘Story of Koreaspiritnana’는 “정상추가 국제 공산주의 단체와 연대하여 언론플레이를 하는 단체”라며 국정원의 조사를 요구했다. 이보다 앞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선데이저널은 ‘국내의 종북세력과 연계, 노골적으로 북한 고무찬양’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정상추를 ‘온라인 종북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는 이들의 주장대로 정상추를 종북세력으로 매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정의와 상식을 추구하는’ 이들의 정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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