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주교(베드로·제주교구장)이 사제의 예언자 역할에 대해 새해 메시지를 통해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고발하고 비판하며 저항하는 것이 예언자의 직무”라고 밝혀 주목된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각종 갈등의 해결 촉구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태를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의 현장에 사제들이 앞장 선 활동을 분명하게 평가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월간지 ‘경향잡지’(발행인 강우일) 1월호에 기고한 강우일 주교의 ‘성직자 의안을 다시 읽으며’를 보면, 강 주교는 예언자직 수행에 대해 ‘성직자 의안’을 들어 “사제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말씀의 선포자로서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며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신 것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초인간’이 아니라 한 시대, 한 나라, 한 문화권에서 노동자 한 사람으로 살았다”고 밝혔다.

강 주교는 “예수님이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진리를 가르치시지 않고, 때로는 농부의 이야기, 때로는 상인의 이야기, 때로는 어부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 한복판에 사는 이들, 아무리 배우지 못한 이들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점을 들어 “오늘의 사제가 펼치는 복음 선포도 이 세상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향잡지 1월호 강우일 주교 기고문 표지.
 
강 주교는 사제의 역할에 대해 “이 세상 한복판에 사는 하느님 백성, 특히 사회에서 가장 작은 이 취급을 받는 이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 번민과 공포를 함께 느끼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고, 특별히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힘 있는 이들, 짓밟히는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지녀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제의 정치사회 참여와 관련해 강 주교는 “사제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지키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유로이 사회를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바로 이끌어갈 수’(의안 21항) 있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이 정의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땐 이를 고발하고 비판과 저항을 불사하는 것이 예언자의 직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예언자직을 수행하기 위해 사제들은 백성이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에 대한 복음적인 관점과 그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가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를 식별하는 판단력으로 끊임없이 자신이 사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강 주교는 당부했다.

특히 한국의 1970~80년대를 거치며 민주화의 격랑에 휩쓸리기도 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게 걷는 고난의 길을 걸었던 사제들에 대해 강 주교는 △민주화를 위해 희생되는 이들 곁에 동행하며 감옥행도 불사하고 악전고투한 사제 △산업화의 밑바닥에 깔려 고통 받고 신음하는 노동자 곁에서 인권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용기와 위로를 북돋았던 노동사목 종사자 △대도시의 무분별한 재개발 열풍에 휩쓸려 끊임없이 철거민으로 살아가는 도시빈민들 곁을 지킨 소수사제들을 들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겸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의 미사 봉헌 모습. 사진=천주교 제주교구 홈페이지
 
그러면서 강 주교는 “그러나 엄정한 시선으로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우리 대부분(의 사제들)은 교구나 본당 공동체에서도 이런 가장 가난한 이들을 사목활동의 중심 영역에서는 제외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통렬히 반성했다.

이런 과거와 달리 최근 몇 해 사이에 용산 재개발 사태, 4대강 사업, 강정 해군기지 사업, 쌍용차사태, 밀양 송전탑 건설, 핵발전소 건설 문제 등 정부와 한국교회가 견해를 달리하며 사제들이 적극 나섰던 사례를 들어 “놀랍고도 반가운 사실은 예전보다는 훨씬 많은 사제들의 교구의 벽을 넘어서 연대하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복음적인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 주교는 “지역과 교구, 수도회의 경계를 넘어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며 오늘의 시대에 복음의 증인이 되려고 함께 노력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교회가 그만큼 내적으로 더 성장했다는 표지라고 생각한다. 예언자직 수행의 폭이 그만큼 더 넓어졌음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강 주교의 이 같은 진단은 본당 중심의 기도에 그치지 않고,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더라도 약자와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몸소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예언자의 역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진정한 사제의 역할을 밝혔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dgjuspeace)는 19일 저녁 트위터에 “사심 가득한 ‘거짓 예언자’들에게 들려드리고픈 강우일 주교님의 일갈”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사제님들 존경합니다”(노영훈-@in5246), “진정한 사제의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는 강주교님입니다”(@kmuehkim), “섭리자께서는 ‘불의’를 용납 않으셨습니다”(손용기 @bhyk21291),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하셨네요”(백조-‏@yumei918), “정진석(추기경)씨가 배워야 할 대목이네요”(한티맨-‏@star56785678) 등의 목소리가 트위터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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