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는 동시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고등학교 국사(하), 1982년판, 국사편찬위원회)

최근 전국 고등학교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이 거의 0%에 머무르면서 각종 특혜와 위법에 눈감으며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나섰다가 실패한 교육부와 여당이 결국 목적하던 국정교과서 추진으로 물타기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 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서 쓰였던 국정교과서 내용들을 살펴본 결과, 대통령을 구국혁명의 영웅처럼 찬양하고 쿠데타와 독재를 옹호하는 내용 일색인 것으로 나타나 박근혜 대통령의 유신역사 미화 의도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의 균형 잡힌 교육을 위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언급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앞다퉈 국정교과서 재도입 필요성을 주장하고, 급기야 교육부는 9일 국정교과서 체제로 회귀하는 편수조직까지 부활하겠다고 밝혔다.

   
▲ 고등학교 국사(7차) 국정교과서
 
본래 근대적 교육제도가 시작된 대한제국 시기에 검인정으로 출발한 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바뀌어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로 쓰이기 시작한 해는 박정희 유신체제 때인 1974년이다. 유신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둔갑시키고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하고 새마을 운동을 추진했는데, 국정교과서를 통한 한국사 교육도 그런 연장선에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3월 “국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올바를 국가관에 입각한 교육을 해야 한다”며 ‘체계 있는 국사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5월 국사교육강화시책이 마련됐고 10월 유신 후 1973년에 국정교과서가 탄생했다. 당시 국사교육강화위원회는 “역사 교재의 국정화는 민족사적 교육의 강화보다는 오히려 엉뚱한 부작용을 초래하며 역행적인 결과를 자초할 것”이라고 국정화를 반대했지만 문교부 주도로 국정화가 강행됐다.

국정교과서에 쓰인 역사적 사건을 규정하는 용어를 통해서도 정권이 역사교육을 통해 어떻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국민 의식 속에 심으려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 4·19혁명을 통해 분출된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고 권력을 장악한 5·16군사정변에 대해 역대 국사 국정교과서에서는 ‘5월 혁명’(1975년·1979년·1982년판), ‘5·16군사혁명’(1990년판)이라고 명명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강화해 나가던 1975년판에는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1961년 5월 16일 혁명을 감행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고 서술돼 있다.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원로 한국사학자들이 지난해 11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개탄한다”고 밝혔다. 사진=강성원 기자
 
전두환 신군부가 12·12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발행된 1982년판 교과서도 전두환 정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0월 유신 이후 성립한 제4공화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적 징후를 보였다. …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10·26 사태를 맞았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 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 부문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 그 후, 국민투표로 확정된 새 헌법에 따라 당선된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여 새 정부를 이끌어 나감으로써 제5공화국이 출범하였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1982년판엔 언급조차 없으며 광주 청문회 과정을 거쳤던 1990년판에도 “일부 군부 세력이 12·12 사태를 일으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고만 간략히 서술돼 있다.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 이후 발행된 1996년판 국정교과서에는 “이 시기를 전후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대학생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는 광주에서 비롯되어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때 민주 헌정 체제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진압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도 살상되어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5·18의 구체적인 원인이나 배경, 과정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난 7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왜곡 내용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동원 피해자, 독립운동가 유족 등이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 해임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서울 신현고 역사교사)는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문민정부 이후 쓰인 국정교과서도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기술하려고 애를 썼지만, 70~80년대 유신과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일종의 ‘교과서적 역사지식의 표준화’가 이뤄져 그것이 관성처럼 진행된 부분이 여러 군데 존재할 수 있다”며 “유신시대의 교과서가 단순히 독재 합리화에만 그친 게 아니라 독립정신 계승과 민족화해협력 추구, 민주개혁 등의 헌법적 가치를 거의 담아내지 못했고, 남북 분단을 당연히 여기며 체제 경쟁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정부·여당의 국정교과서 추진 움직임에 대해 “국정체제이라는 것은 국정교과서 시대의 역사인식을 국가가 위로부터 주입하겠다는 발상이고, 유신시대의 역사인식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배웠던 역사인식과 다르니까 모두 좌파라고 말하는 어이없는 현실을 맞고 있다”며 “전국의 다양한 모든 학생을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역사해석의 국가적 독점도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도 이날 오후 교육부의 역사교육 장악 기도 중단을 촉구하는 논평을 내고 “교육부가 고교 한국사 채택과정에서 나타난 교육주체들의 명확한 의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또다시 역사교육을 정권의 통제하에 두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교육부의 편수기구 설치는 교과서 검정제도의 취지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으로 사실상 국정체제로 바꾸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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