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자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부대시설을 넓히는 사업은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서울대병원을 영리병원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의료기관의 자법인(자회사) 설립이 의료 영리화를 부추긴다’는 김성주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철도 민영화와 더불어 의료 민영화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의료계에선 서울대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영리 자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이미 설립된 두 병원의 자회사를 예시로 들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보건의료 서비스 투자 활성화’ 대책을 확정했다. 정부는 의료법인이 외부 자본을 조달한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며 수익기반 확충을 위해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그동안 자회사 설립과 부대사업이 과도하게 제한돼, 병원의 경영 효율성과 수익성이 약화됐다며 추진 배경을 밝혔다. 최근 병원의 수익구조가 악화돼 의료법인의 경영난이 심각하니 의료사업 외 영리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의 길을 열어주자는 얘기다.

그러면서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다른 성격의 법인들과의 형평성이다. 학교법인 등 다른 법인은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데 의료법인만 금지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정부가 예로 든 서울대병원(특수법인)과 세브란스병원(학교법인)엔 이미 자회사가 설립되어 있다.

이 논란을 이해하려면 의료기관 설립 법인의 종류부터 살펴봐야 한다. 의료법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주체를 의사, 국가,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중 의료법인과 비영리법인은 의료법 시행령 제20조에 따라 의료업(부대사업 포함)을 할 때 영리를 추구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법이 함께 적용되는 학교법인이나 사단·재단법인 등은 현재 자회사를 두고 있다. 정부가 이를 이용해,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의료법인에게도 영리 수익사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SK텔레콤와 영리사업

정부가 사례로 들기 전까지 서울대·세브란스병원의 자회사들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의료계에서도 이 병원들에 영리 수익사업을 하는 자회사가 있는지 잘 몰랐다. 이전에 ‘공정거래법 위반’ 등 다른 문제로 부각된 적은 있지만, 영리 추구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건 이번 논란을 거치면서다.

교육부 소속 국공립병원인 서울대병원은 모바일 헬스케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헬스커넥트라는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헬스커넥트는 SK텔레콤과 서울대병원이 2012년 1월 합작 설립한 주식회사다. 자본금 200억원으로 양측이 각각 100억원씩 현물투자했으며 지분은 서울대가 50.5%, SK텔레콤이 49.5%를 가졌다. 대표이사는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당시 보라매병원장)이 맡았다.

이외에 서울대병원은 이지케어텍(시스템통합·41.85%), 이지메디컴(의료품구매대행·5.5%), 버추얼엠디(온라인의료교육·6.6%) 등 벤처회사에 출자했다. 다만 이들은 50%를 넘지 않아 상법 상 자회사는 아니며 단순 투자회사다.

   
▲ 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학교병원
 
문제가 되는 건 법 위반 여부다. 서울대병원 설치법 제6조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사업은 △서울대학교 의학계 학생의 임상교육, △전공의 수련과 의료 요원의 훈련, △의학계 관련 연구, △임상연구, △진료사업, △그 밖에 국민보건 향상에 필요한 사업으로 한정되어 있다. 서울대병원 안팎에선 헬스커넥트 등이 서울대병원의 사업목적에 부합하느냐에 대한 이견이 있다.

의료법은 더 큰 문제다.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은 영리를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장은 헬스커넥트 등에 대해 “비영리 기관이 자회사를 이용해 영리 수익사업을 하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해당 사업이 필요하더라도 비영리 사업으로 해야지, SK텔레콤 등과 손잡고 영리사업을 하는 건 위법”이라며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지난 18일 성명에서 “서울대병원의 이러한 행태는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과 맞물려 더욱 우려스럽다”며 “투자활성화 대책은 국민의 건강관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정부가 오히려 보건의료를 자본가들의 ‘돈벌이’용 성장산업으로 만드는, 그 자체로도 어처구니가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과 교육부는 위법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설립 당시) 외부 고문변호사에게 법리적 검토를 마친 후 교육부·보건복지부·기재부 차관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도 통과했고, 교육부도 공식적으로 법리적 문제가 없다고 승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회사에서 발생한 수익을 서울대병원의 목적인 교육·연구·진료에 재투자하기 때문에 영리 수익사업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 관계자도 “서울대병원이 교육부에 검토를 요청했고, (교육부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종합적으로 봤을 때 서울대병원 설치법의 사업 목적과 부합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자회사 영업이익, 기부금으로 ‘전액 상납’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학교법인으로 의료법과 사립학교법을 모두 적용받는다. 연세대학교 학교법인은 의약품 공급 도매업체인 안연케어(구 제중상사)를 자회사(1992년 설립)로 두고 있다. 앞서 안연케어는 의료법이 아니라 약사법과 공정거래법 상 불공정거래로 문제가 돼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안연케어는 설립 당시부터 의료기관의 의약품 도매업 겸업을 금지하는 약사법 개정에 따라 상호와 대표자 명의만 바꾼 회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연세대학교는 안연케어에 의약품 독점 남품권을 부여하고 기부금을 받았다. 안연케어는 2008년 117억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이보다 2억원 더 많은 119억을 연세대에 기부했다. 결국 그해 8억8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안연케어는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당시 전혜숙 민주당 전 의원은 ‘신종 리베이트 제공’이라며 병원의 직영도매업 소유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직영도매상의 계열 대학에 기부한 현황 ⓒ전혜숙 전 민주당 의원
 
이런 논란에 따라 2012년 개정된 약사법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의료기관과 관련 도매상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연세대학교가 100% 지분을 가진 안연케어는 세브란스병원에 남품할 수 없게 됐고, 현재 지분 51%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병원과 연계된 학교법인의 자회사는 꾸준히 말썽을 부려왔다.

또한 학교법인의 영리 자회사는 의료법은 물론 기존 정부 방침과도 충돌한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학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영리사업이 배임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부분 학교법인 등이 자회사를 운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상 정부가 이를 규제했기 때문에 검찰이 그동안 안연케어를 제재했던 것”이라며 “정부가 마치 원래 허용했던 것을 의료법인에도 확대하는 것처럼 말하는 건 사실관계에서도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학교법인 등에 허용된 영리 자회사도 모두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민주당 의원은 “의료법인의 자회사 허용은 반대”라고 말한 후 “학교법인 등의 영리 자회사도 이번 일을 계기로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부대사업을 확대한 것도 무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세브란스병원 측은 학교법인의 영리 자회사는 위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병원이나 안연케어 모두 학교법인 소속”이라며 “병원이 의료법 적용을 받지만 안연케어는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의료 민영화 수순”

정리하면 정부는 여러 문제를 잉태하고 있는 학교·특수법인의 영리 자회사와의 형평성을 내세우며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정부 방침에 따르면 의료법인의 자회사는 외부 자본을 유치할 수 있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외부자본의 투입과 영리활동 본격화를 통해 “병원과 보험회사, 의료기기회사, 제약회사, 정보통신회사, 투자회사 등이 결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상 의료 민영화 절차에 돌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 지난 11월 18일 국회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민영화·연금개악 저지 대국회 집중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서있다. ⓒ연합뉴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의료법인 자회사를 허용하고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면 기존 병원도 자회사를 늘리고 현재 자회사가 없는 한양대, 이화여대 고려대병원도 앞다퉈 만들 것”이라며 “의료기관의 영리 수익사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병원이 자회사를 통해서 외부 자본을 유치해서 마음대로 이윤추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의료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상법 상 영리회사인 자회사가 ‘왝 더 독(Wag the Dog)’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상구 복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의료법인은 수익이 거의 없어 대부분 성실 공익법인에 해당한다”며 “의결권 주식 100% 취득 시 영리 자회사가 역으로 실질적인 지주회사가 돼 의료법인을 운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가 이런 내용이 담긴 투자활성화 대책을 국회 법 개정이 아니라 복지부 가이드라인 제정과 시행규칙 개정 등으로 추진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김용익 민주당 의원은 “비영리 모법인(의료법인)이 영리 자법인을 설립하게 하는 건 중대변화에 속한다”며 “그걸 법 개정 없이 추진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당연히 법 개정을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회 선진화법 이후 날치기 통과가 어려우니 정부가 요새 그런 식으로 피해가려고 하는데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은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미 검증됐는데 국회를 거치지 않고 시행규칙만으로 추진하는 건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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