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메시지를 공유하는 메신저 서비스를 압수수색해 대화 내용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노조 간부들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의 사적 공간까지 마구잡이로 뒤지고 있다는 비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27일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경찰은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쓰고 있는 커뮤니티 메신저 서비스 ‘밴드’를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압수수색해 대화 내용을 들여다봤다. 경찰과 네이버 관계자는 압수수색 실시 여부를 묻는 미디어오늘 기자의 요청에 답변을 피했지만 압수수색 당사자인 철도노조 측의 문의를 받고 “경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확인했다.

철도노조 백성곤 홍보팀장은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압수수색 여부에 대해 경찰이 했다고 네이버 측에서 확인시켜 줬다, 다만 구체적인 시기와 대상에 대해서는 확인해 주지 않았고 파악 중이라고 밝혀왔다”고 전했다.

   
 
 
철도노조는 인권침해에 가까운 수사 행태라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백 팀장은 “노조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커뮤니티는 없고, 지부별끼리 편의 차원에서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라지만 노조 조합원들의 사생활까지 침해하는데 경찰이 나선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또한 경찰이 특정 범죄 사실을 파악한 상태에서 압수수색을 한 게 아니라 불법파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순히 수사 편의 차원에서 철도노조 지도부 및 조합원들의 대화 내용을 포괄적으로 들여다본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네이버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민감한 모습이다. 밴드는 네이버가 최근 인터넷 그룹 메시지 플랫폼으로 적극 홍보하고 있는 상황인데 압수수색 영장을 통한 집행이라고 하더라도 개인 사생활 침해 논란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네이버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의 관련 사실 요청에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가 거듭된 요청에 “사실 확인을 했지만 수사 사항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이 사적 대화 내용까지 압수수색하는 무리수를 둔 것은 지난 22일 3000여명의 경력을 동원해 민주노총 건물을 샅샅이 뒤지고도 김명환 위원장 등 주요 지도부 검거에 실패해 자존심이 상한 상태에서 지도부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다급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으로 분석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실장은 “형사소송법에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할 때 압수수색 이전이나 최소한 압수수색 직후에 당사자에게 통보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실장은 “법원이 영장을 쉽게 내주는 것도 문제지만 개인정보가 경찰이나 검찰에 넘어가는데도 당사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런 상황은 문제가 많다”면서 “네이버에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을 적용한 거 같은데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았다면 절차를 문제 삼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전통보나 사후통보를 법제화하는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통과가 안 된 상황이다. 현행 법상 영장만 받으면 메일이나 메신저,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무차별 조회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사전사후 통보도 없이 광범위하게 이런 사생활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다.

김 변호사는 “이런 황당무계한 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이 이상하고 진짜 문제는 이런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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