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자사의 대표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의 무료 공연 횟수를 내년부터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스페이스 공감> 제작진을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은 이번 조치는 프로그램의 취지와도 맞지 않으며 ‘불법적인 개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EBS 신용섭 사장은 <스페이스 공감>의 무료 공연 횟수를 주 5일에서 2일로 줄이고, 제작PD 또한 3명에서 2명으로 감축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이 주 2회 방송되므로 무료 공연도 그에 따라 줄이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인력은 물론 공연 횟수가 줄어들면서 프로그램에 투입됐던 제작비도 삭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의 한 제작진은 27일 통화에서 “그동안 <스페이스 공감>은 대중들에게 공연을 통해 음악적 다양성을 알리는 역할을 했는데, 사측은 제작진과 상의를 하거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통보했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우려스럽다”면서 “사측은 음악적 다양성을 전파해온 이 프로그램의 공공적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지부장 한송희)도 “립싱크가 방송계의 관행처럼 여겨지던 시절, 스페이스 공감은 음악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공연 프로그램의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방송계에 음악적 본질을 되살림은 물론, 매일 공연을 시청자에게 약속함에 따라 폭넓은 장르의 음악 향유 기회를 제공해왔다”면서 “이러한 EBS 대표 프로그램을 사장은 독자적이고 즉흥적으로 뜯어고쳤다”고 이번 조치를 비판했다.

   
지난달 11일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가수 김예림.
 
내부 구성원들은 이번 조치를 사측의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반적인 비용절감 추세가 맞물려 낳은 사태라고 보고 있다. 제작진은“‘올해의 헬로루키’라고 신인음악가를 발굴하는 코너가 있는데, 사측에서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쓰느냐, 이렇게 하려면 협찬을 따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면서 “문화적 가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EBS가 <스페이스 공감>의 인력 및 공연기회를 줄이는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BS지부에 따르면 신 사장은 지난 13일 사내 편성위원회에서 결정한 내년 편성개편안을 결재하는 과정에서 이번 조치를 결정했다. 편성위원회에서는 <스페이스 공감>과 관련한 논의가 없었다고 한다.

EBS 지부는 “공사법이 정한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본인의 입맛대로 제작 예산과 인력을 마음대로 바꿨다”고 했다. 공사법 편성위원회운영규정 제3조는 위원회에서 방송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 예산, 인력에 대해 심의하고 의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EBS 편성위원회는 위원장인 부사장을 포함해 사측 9명, 노측 3명으로 구성된다.

   
▲ EBS <스페이스 공감>
 
이에 대해 류현위 콘텐츠기획센터장은 “사내 규정에 따르면 편성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사항은 사장의 결재를 받아서 시행하도록 돼 있지 부분적인 것들도 조정할 수 없다고 돼 있지 않다”면서 “제작 여건에 따라 시행과정에서 변동은 있을 수 있고, 이번 조치도 그런 범주 내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공사법 위반이 아니란 얘기다.

류 센터장은 또한 “이번 조치는 EBS 전체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전체 재원 중 공적자금이 25~26%에 불과, 시설·인력·제작비가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시청자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려다보니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4월 전파를 탄 EBS <스페이스 공감>은 내년이면 10주년, 2월에는 방송횟수 1000회를 맞이하게 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그 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등 걸출한 숨은 실력가들이 발굴돼 왔다. 제작진에 따르면, 현재까지 3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이 프로그램의 무료공연을 통해 문화적 혜택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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