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23일부터 초판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다. 23일 저녁 7시부터 24일자 신문의 첫판을 디지털 지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의 ‘가판’ 부활이다. 조선일보의 ‘가판’ 부활은 2005년 3월 7일자로 초판 발행을 중단한 뒤 8년 9개월만이다.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가판 경쟁이 가속화될지 관심이다. 광고와 기사 ‘바꿔먹기’ 관행이 표면화될지도 주목된다.

조선일보의 초판 유료 서비스는 연간 120만원으로, 현재 초판 유료 서비스를 진행 중인 한국경제(월 5만원)와 비교하면 일반 신문독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고가에 해당한다. 이번 서비스는 언론사 관계자·기업 홍보팀·정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기획됐다. 신문은 초판 이후 밤새 판 갈이를 거쳐 최종판을 내는데, 일반 독자에게 초판은 별 의미가 없다.

조선일보는 20일 지면에서 “과거엔 초판을 보려면 가판대를 찾거나 제한된 지역에서 별도의 유통구조를 통해야 했다”며 “통상 가판이라 불리던 초판 구독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새 초판 서비스는 발행 즉시 디지털 기기로 자동 배달된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광화문 인근에서 기업·정부 관계자들이 가판을 기다리는 풍경이 쉽게 연출되곤 했다.

   
▲ 조선일보 12월 20일자 10면 기사.
 
초판 서비스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으로 신문지면 PDF를 그대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아이디로 한 대의 PC·한 대의 모바일 기기에서만 초판을 볼 수 있다. 구독 신청은 연간 단위로만 가능하고, 동시접속은 불가능하다. 조선일보는 신문 산업이 어려워지며 ‘프리미엄 조선’처럼 수익모델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이번 초판 서비스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2005년 가판 폐지 당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가판이 나감으로써 지면 전략이 노출되는 데서 오는 비용(리스크)이 훨씬 크다는 게 회사의 판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언론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실시간 뉴스소비로 지면 전략이 큰 의미를 잃었고, 신문광고는 지속적인 하락을 겪고 있어 수익모델의 다양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실시간 뉴스소비 시장은 이미 형성되어 있다. 초판 서비스의 디지털상품화는 기관 담당자·기업 홍보실처럼 확실한 타깃이 있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초판에서 비판기사를 지면에 실은 뒤 광고·협찬을 약속받고 기사를 빼는 식의 ‘광고와 기사 바꿔먹기’ 노골화될 우려다.

   
▲ 조선일보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판 서비스를 두고 “기업과 매체간의 선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돼 기사를 매개로 한 거래도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초판은 지면의 날 것이다. 이것을 상품화하는 것은 시장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초판이 나왔을 때 (기업 등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매체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또한 “조선일보의 초판 서비스로 타사 지면이 조선일보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뒤 “(초판 서비스로) 기업에 부정적 기사가 나왔을 때 기사에 대한 압력 또는 대가와 같은 대응이 나타날 수 있어 지켜봐야 할 것”이라 밝혔다.

조선일보의 이번 결정으로 초판 서비스가 확산될지도 관심사다. 업계에선 한국경제와 조선일보에 이어 매일경제도 조만간 ‘온라인 가판’ 대열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김위근 언론재단 연구위원은 “초판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자사 영향력을 확장시키겠다는 기획으로, 다른 언론사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메이저 신문이나 경제지 외에는 수요가 없을 것”이라며 시장 확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 관계자는 23일 통화에서 “우리는 계획이 없다. 다시 가판을 부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리서치 관계자는 조선일보의 이번 선택을 두고 “오프라인과 비교해 영향력이 낮은 온라인 뉴스 시장을 잡겠다는 뜻으로, 온·오프라인 통합열독률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통합열독률이 높아지는 대신 기사라는 ‘상품’과 광고를 교환하는 과정이 드러날 경우 신문사에게는 큰 리스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서중 한국언론정보학회장(성공회대 신문방송학 교수)은 “이해당사자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정정할 기회를 준다는 가판의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업이나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이 가판에 나온 불리한 내용을 두고 거래가 이뤄지거나 압박이 이뤄져 뉴스 수용자가 진실에 다가갈 가능성이 줄어들 부정적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서중 회장은 “가판은 오래 전부터 권·경·언 유착의 상징이었다”며 “가판 이용자가 이해관계자로 한정된 만큼 그들에게 별도의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초판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의 중요한 정보를 한층 더 신속 정확하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환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