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는 지난해 위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인터넷 언론사에선 내년에야 사라질 전망이다. 정부는 신속히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6월 지방선거 전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3대 분야 13개 규제 정비안을 확정했다. 정비안엔 인터넷 언론사 실명제 폐지와 임시조치제 남용 방지 등 인터넷 규제 개선 과제가 포함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8월 전원 합의로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2007년 7월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가 5년여 만에 폐지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망법 상 인터넷 실명제 조항은 사라졌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상 인터넷 실명제는 아직 남아있다. 위헌 결정 효력은 심판대상 조문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 언론사들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게시판에 실명 확인 조치를 해야 했다. 위반 시 1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 선거관리위원회가 인터넷 실명제를 들어 선거운동기간 소셜댓글에 대해 실명인증 조치를 취하라고 통보했다. ⓒ이용호
 
정부는 합동으로 발표한 규제 정비안에서 '인터넷 실명제(정보통신망법)' 위헌 판결의 취지를 살려 선거운동 기간 중 인터넷 언론사에 대한 인터넷 실명제도 신속히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소관 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부입법 권한이 없어 개정은 의원발의를 통해야 한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공직선거법의 '인터넷언론사 게시판·대화방 실명확인'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이 개정안을 논의 중이나 이견이 있어 올해 통과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공직선거법 상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부정적인 인터넷 댓글을 꺼리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개정안 통과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내년 지방선거 전에 개정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시조치제·통신자료제공 제도 개선 추진

이와 함께 정부는 수사기관에 통신자료 제공 제도 개선, 임시조치제 남용 방지 등의 방안도 발표했다. 그동안 인터넷 사업자들이 지나친 규제라며 개정을 꾸준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은 재판, 수사 등을 위해 영장 없이 포털 사업자 등에게 '통신자료(이용자의 아이디, 주민등록번호 등)'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제공이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사업자 입장에서 거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재량사항이기 때문에 통신자료 제공에 따른 민사상의 책임은 온전히 사업자가 질 수밖에 없었다. 사업자들의 요구에 따라 미래창조과학부는 수사기관의 ‘자료제공 요청서’ 작성방식 재검토, 사업자의 내부 심사기능 강화 등에 대해 법무부 등 유관기관과 협의할 예정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던 '임시조치제' 남용 방지안도 추진된다. 인터넷에서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주장이 있는 경우, 포털 사업자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 또는 임시조치(30일 이내 '블라인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조치기간 경과 후 해당 게시물의 처리방법에 대한 규정이 없어, 사업자는 손해배상책임 등을 우려하여 대부분 게시물을 삭제하고 있다.

   
▲ 지난달 권리침해 신고를 받고 임시조치(블라인드)된 블로거 아이엠피터의 글.
 
특히 정치인 등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게시물을 무조건 명예훼손으로 임시조치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와 같이 임시조치제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가 정비안을 낸 것이다.

정부(방송통신위원회)는 내년까지 정보통신망법 개정해 인터넷 사업자의 판단기준, 임시조치 이후 처리방법, 정보게재자의 이의제기 절차 등 임시조치제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인터넷상에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일축할 우려가 있는 규제는 정부 입법활동의 최우선으로 두고 신속히 폐지 또는 보완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규제 정비안들은 일단 사업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도 보호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관련 시민단체인 오픈넷의 한창민 사무국장은 "부족하지만 환영할 만하다"고 밝혔다. 그는 "업계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의 편익에 장애가 됐던 제도를 개선한다는 건 일단 환영한다"면서도 "내년 시행을 앞두고 부처 간 이기주의가 부딪칠 수 있으니 끝까지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털사 등으로 구성된 한국인터넷기업협회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최성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전체적으로는 규제를 개선한다는 방향에 대해선 환영한다"며 "포함 안된 과제는 규제 개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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