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앞에 서 있는 그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거절했다. 화제의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 의 주인공 주현우(고려대 경영학과, 27)씨는 “내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대자보를 배경으로 한 사진 찍기를 거절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가벼운 인사말이 며칠 째 포탈 검색어 1-2위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10일 고려대학생 주현우씨는 고려대에 대자보를 붙이고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4000여명이 넘는 철도노동자들이 직위해제되고, 국회의원이 ‘사퇴하라’는 한 마디를 했다고 제명 위기에 처한 현실을 비판하며 ‘모두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주씨의 대자보 이후 고려대에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수십 개의 대자보가 붙었고, 전국 각지 대학에서 각양각색의 대자보가 이어지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개인들이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1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를 눌렀다. 14일에는 3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철도민영화 반대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 14일 3시 고려대 정대후문에 모인 주현우씨와 ‘안녕들하십니까’ 모임 참가자들. 사진=주현우 페이스북
 
도대체 어떻게 정치에 가장 무관심하다는 20대 대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주현우씨는 15일 고려대 근처 카페에서 진행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대자보가 학생들의 ‘언로’를 터준 것 같다”며 “신뢰할 만한, 내가 참여할 만한 언로가 없었는데, ‘안녕들하십니까’가 그 역할을 해주면서 사람들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주현우씨는 자기 자신한테 언론이나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주씨는 “나한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특정한 사람을 띄우는 방식은 ‘안녕들하십니까’의 목적과 어긋난다. 이 기획의 목적은 ‘스스로 자기 정치를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주현우씨와의 일문일답.

-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제목은 어떻게 떠올렸나.
원래 대자보에는 제목이 없었다. 밤새서 고민을 하다, 불현듯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흔히 우리는 안녕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한다. 이것에 대해 진솔하게 물어보는 방식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위 운동권 학생들은 무엇 무엇에 반대한다는 어법을 자주 쓴다. 하지만 어떤 현실에 대한 반대를 넘어 그것을 자기 입장에서 뭐라 부를 것인지 고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과연 나는 안녕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 폭발적인 반응은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했다. 대자보 사진 찍어서 올렸을 때 ‘별로야’라는 댓글도 달렸다. 그래서 ‘나도 별로인 거 알아’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확산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 왜 이렇게 엄청난 반응이 있었을까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끼리 이야기를 해봤는데, 공통적으로 ‘언로’의 문제를 지적했다. 내가 신뢰할 만한, 내가 참여할 만한 언로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익명성에 가려져 있고 피드백이 산발적이고 피상적이다. 손으로 쓴 대자보는 확실히 손으로 직접 썼기에 쓴 사람의 감정도 들어가 있고, ‘너만 안녕하지 못한 게 아니다’라는 감정이 사람들에게 잘 전해진 것 같다.

- 이후 많은 대자보가 나왔는데, 어떤 대자보가 가장 기억에 남나
하나하나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대자보와 글들이 페이스북 쪽지를 통해 전해져 온다. 페이스북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다. 고려대학교 13학번 신입생이 쓴 대자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운동권과 전혀 무관한 한 13학번 학생이 자보를 썼는데, 무언가를 말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사회이며 빨갱이가 되는 사회라면 기꺼이 빨갱이가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 15일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들을 읽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 2008년 촛불집회 때 ‘순수한 시민들’의 집회에 운동권 조직이 함께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우려가 있는 것 같다.
촛불 때는 언로가 없었다. 즉, 이런 문제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논의할 공간이 없었다. 그걸 만들 생각이다. 만민공동회를 열고 싶다. 만민공동회처럼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손을 들어 의사결정을 하는 거다. 출발은 몇몇 학생들이 당겼지만 모든 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주인공이 될 모든 사람들을 끌어 모아 운동권 조직이 개입하는 문제 등 각종 논란에 대해 결정하고 싶다.

- 벌써부터 어떤 언론에서는 특정 정치세력이 배후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주 조용한 독서실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갑자기 한 구석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몇 명은 벌써 실신 상태에 위독한 상태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일어나 “불이야!”라고 외치고, 그랬더니 연달아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같이 소리칩니다. 그랬더니 관리자란 사람들이 떡 하니 나타나 쭉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제일 처음 외친 사람을 가리켜 “넌 평상시에도 하라는 대로 안하는 불량한 녀석이다!”라며 혼을 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보고는 불 안 났으니 제자리로 가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타는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말에 호응할 수 있나? 몇몇 언론이 배후에 운동권이 있느니 특정 정치세력이 있느니 하는 소리는 이런 관리자의 태도와 비슷하다고 본다.

- 이런 식의 보도를 하는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사람들의 지금의 언론을 신뢰하고, 지금의 언론이 ‘언로’의 역할을 했다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안녕치 못한 일이 있었을 뿐이고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그것을 말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안녕치 못한 일을 만들어냈다는 식의 보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토요일 집회 때 몇몇 언론의 인터뷰에 보이콧을 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다른 언론 인터뷰하는 사이 와서 마이크만 대고 내 발언을 녹음해가더라. 학내 언론 관련 학과 학생들 중에는 분노한 학생들이 많다.

- 촛불 때도 그렇고 몇몇 언론에서 쓰는 비난논리가 뻔하다. ‘감성팔이’라던가, ‘순수한 학생들이 아니다’, ‘정치하려고 저런다’는 식이다.
그런 질문들에 오히려 질문으로 답해야 한다. 감성팔이라고? 글이 감성 빼면 뭐가 남는데? 순수하고 비순수의 경계는 어디까지냐? 정치하는 게 뭐가 나쁜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정치 아니냐? 이런 식으로 치고 나갈 것이다. 우리는 질문으로 시작했고,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저런 상투적인 비난논리 때문에 물러날 생각은 없다. 이번 기회에 정리 한번 해보자는 입장이다. 자기목소리를 내겠다는 사람들에게 색깔을 씌우고 때리는 비겁한 짓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 대자보를 찢어버리고 찍은 인증샷이 일베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보를 붙이지 못하니까 뜯는 거다. ‘안녕들하십니까’의 모토 중 하나가 ‘일베가 자보를 붙이는 그날까지!’이다. 자유대학생연합이 반박 대자보를 쓴다고 하던데, 환영이다. 적극적으로 반응하겠다. 단, 복붙(복사+붙여넣기) 금지, 익명 금지가 조건이다. 익명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그렇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 우리의 모토다.

   
▲ 고려대 근처 카페에서 만난 주현우씨
 
- 취업해야 되는데 걱정은 안 되나.
그런 질문 많이 받았다. 너 취업준비생인데 너 이제 큰일 났다, 사건이 너무 커지고 얼굴이 다 팔려서 어디 취직이나 되겠냐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 자체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 고등학생이 ‘안녕들하십니까’ 모임에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걸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세상이 안녕치 못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순간 탄압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질문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게 정상적일까요? 이게 마음에 드세요?
나도 4학년인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는 깝깝하다. 1년 전부터 부모님 지원도 전혀 받지 않은 채 독립해 살았다. 한 학기에 알바 2개, 과외 하나를 하며 돈 되는 일은 이것저것 다 하며 살았다. 그래서 돈을 벌긴 해야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 이 열풍이 어디까지 갈까.
마른 섶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어디까지 갈 지 나도 모르겠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계획 중 하나는 대자보를 영문이나 불어 등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제 곧 방학이라 어학연수가고 여행가거나 교환 학생가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 학생들이 이 글을 번역해서 자신이 가는 나라의 광장이나 학교 등지에 붙이고 싶다고 했다. 페이스북 등의 공간을 활용하다보면 전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다.

- 촛불 때 아쉬웠던 것이, 집회 외에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없었다는 점이다.
대자보에는 쓰는 시간이 필요하고, 충분히 읽고 반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아닌 심도 있는 고민과 논의를 위해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필요가 있다. 내 말을 하고,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태도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손으로 연하장 쓰는 것도 생각해봤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똑같은 카톡메시지를 돌리는데, 그러지 말고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는 거다. 이런 식으로 작게나마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 철도민영화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 외에 관심 가지고 있는 세부적인 의제가 있나.
기본적으로 투 트랙을 생각하고 있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물음표 자체는 계속 있어야한다. 또한 일반적인 사람들 차원에서 안녕치 못한 것이 무엇인지 세부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처음에 대자보에서 철도민영화 반대를 던졌기에 처음엔 철도민영화로 시작했지만, 이후의 행보는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 ‘안녕들하십니까’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 보나.
자발성이다. 애초에 기획이 여기서 출발했다. 사람들 스스로 말하게 하자, 자기 정치를 하게 하자 라는 게 ‘안녕들하십니까’의 문제의식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나와 몇몇 학생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어선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보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의정치가 아니고 내가 주인이 되는 정치 아닌가. 이 점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이 기획에 계속 참여하고 싶지만, 나한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특정한 사람을 띄우는 방식은 ‘안녕들하십니까’의 목적과 어긋난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이후 다른 인터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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