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치수 ‘원맨팀’이라 불리던 북산고등학교는 무명팀에서 일약 전국에서 주목받는 팀으로 성장한다. 진짜천재 서태웅이 합류했고 ‘도내 넘버1가드’ 송태섭이 복귀했으며 오랜 방황 끝에 ‘불꽃남자’ 슈터 정대만까지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 평범한 스토리는 그러나 ‘자칭천재’ 강백호의 성장기를 통해 수많은 만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이야기다.

우리동네 예체능이 ‘농구’편을 통해 화요일 밤 예능의 최강자로 다시 한 번 자리를 잡았다. 농구마니아 박진영과 천재적 운동신경을 가진 육상선수 출신 서지석, 그리고 이정진과 김혁 등이 합류하면서 우리동네 예체능 팀은 벌써 2승째를 거두었다. 여기에 농구 초짜 강호동의 성장기가 덧붙여지면서 이번 에피소드는 훌륭한 서사를 갖추었다.

강호동의 복귀 이후 여러 프로그램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는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예지 KBS PD를 비롯한 제작진들의 노력이 곁들여져 있다. 운동도 별로 해 본 적 없는 젊은 여성PD가 생활체육 종목으로 강호동을 연착륙시킨 셈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7일 이예지 PD를 만나 ‘우리동네 예체능’과 여러 가지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KBS 예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PD가 프로그램 하나를 맡아 끌고 나가기 어려운 KBS 구조에서 이 PD는 우리동네 예체능 뿐 아니라 ‘안녕하세요’로 입봉, 초기 포맷을 잡은 PD이기도 하다.

   
▲ 이예지 KBS PD
@이치열 기자
 
주어진 건 ‘화요일 밤’과 ‘강호동’ 뿐

이예지 PD는 원래 강호동의 복귀작이었던 ‘달빛프린스’를 맡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달빛프린스는 불과 8회 만에 막을 내렸다. 이예지 PD는 달빛프린스의 실패에 대해 ‘쿨 하게’ 인정했다.

“‘안녕하세요’는 우리가 낸 기획안이 뽑혀서 론칭이 됐어요, 내가 하고 싶은 주제를 먼저 정한 셈이었는데 달빛프린스는 이미 강호동이라는 진행자와 기획안이 세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PD가 들어가는 상황이었어요, 그게 어렵더라고요, 그런 상황도 잘 해결하는 것도 능력인데, 달빛프린스에 대해서는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만약에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보라면 다른 기획을 했을 것 같아요. 다 핑계죠, 쉽게 풀었어야 하는데, 급했어요. 근데 요새 농담으로 우리끼리 얘기하곤 하는데, 다시 하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이 안 풀렸는데 급했죠”

달빛프린스가 실패했지만 이예지 PD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진행자 강호동 뿐, 그래서 탄생한 것이 우리동네 예체능이다.

“강호동이란 MC의 장점이 많은데 단점도 분명히 있는 MC에요. 그 사람이 특화되어 있는 부분은 너무 잘하지만 진행이 어떻다는 등, 소리를 지른다는 등 여전히 그런 댓글이 달려요. 현재 트랜드인 관찰예능에는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거죠. 사실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얘기를 회의에서 많이 했어요. 강호동의 장점은 늘 최선을 다하고 체력이 좋아요. 강호동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아무래도 ‘먹방’과 ‘운동’이었어요”

이 PD는 최종 단계에서 강호동씨를 불러 먹방과 운동 중 하나의 포맷을 결정하도록 했다. 이 때 강호동씨가 선택한 것이 바로 ‘운동’이다. 이후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고 매일같이 연습을 하면서 체력이 방전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강호동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우리는 연습도 많이 하고 실력이 늘어가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 슬렁슬렁 하는 MC들이라면 너무 힘들었을텐데 강호동씨는 운동을 했던 분이어서 그런지 ‘으싸으쌰’ 해주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운동신경은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각 종목들 코치들도 그렇게 얘길 하더라고요”

그렇게 출범한 우리동네 예체능은 동시간 대 예능 1위로서 대세를 굳혔다. 하지만 우리동네 예체능은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기도 하다. 성장스토리라는 점에서 초기의 ‘무한도전’ 같으면서도 운동으로 진검승부를 겨룬다는 점에서 ‘출발 드림팀’의 향기도 난다. 이 PD는 두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출발드림팀의 경우, “드림팀은 승부를 펼치는 방송이지만 우리는 과정을 보여준다”며 “그 과정에서 하나의 팀이 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무한도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다만 이 PD는 무한도전과의 차이점에 대해 “무한도전의 경우 ‘못하는 사람들’의 시작을 다루기 때문에 그 과정이 재미있다”며 “그러나 경기의 질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무한도전의 조정이 꼴찌를 해도 감동이 있지만 매번 꼴찌만 하면 감동이 없다”며 “어떤 종목을 할 때 그 종목에서 잘 하는 친구들이 오면서 그 친구를 중심으로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무도와의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 우리동네 예체능 - 농구편 방송화면 갈무리
 
그래서 인지 이번 농구편에서는 박진영, 서지석, 이정진, 김혁 등 연예계 소문난 ‘농구 선수’들이 출전을 했다. 특히 농구선수 출신의 김혁은 지난달 19일 방송에서 백덩크를 성공시키며 좌중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잘 하는 사람’들만 모이면서 성장기를 가리는 것은 아닐까? 또 만화와는 달리 실제 ‘무경험자’들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를 어떻게 조화하느냐가 우리동네 예체능의 숙제다.

“운동을 하면 기대대로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에요,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대본을 짤 수도 없어요. 그게 제일 힘들었는데, 성장 하다가 슬럼프를 겪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매회 달라지는 거죠, 우리는 성장을 지켜보면서 출연진을 골고루 비춰주는 역할입니다”

“예체능 포맷 변화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듯 한계와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일단 프로그램에서 감초 역할을 하던 이수근씨의 사설도박 연루와 하차는 우리동네 예체능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사실 농구편은 처음으로 하는 팀플레이 경기였기 때문에 빈자리가 덜 느껴질 수 있는 종목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우리끼리 위로 했는데, 대안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어요”

고정 출연진이 강호동, 최강창민 뿐이라 프로그램의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고 성장기 스토리가 가려진다는 느낌도 있다. 이에 대해 이 PD는 “고정 등의 포맷 변화를 구상하고 있다”며 “농구가 마무리 될 때 정식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사구조가 비슷해지는 점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동네 예체능에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새로운 것’을 시청자들이 요구하는데 늘 같은 형태로 방송을 구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PD는 ‘변화’가 아닌 ‘진전’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운 것이 있어요, 배드민턴 때 처음 엘리트 체육을 만났는데 신기한 것이 국가대표 감독이 코칭을 하면 실력이 확 느는 것이 눈에 보이는 거에요, 엘리트 체육이 새로운 소스로 찾아온 셈이에요, 우리 애의 경우 영어는 안 시키는데 축구는 시키거든요 이제 6살인데 지금 어린 남자애들에겐 유소년 축구 교실이 ‘필수코스’ 처럼 되어 있어요. 그런 점을 종합해보니 어머니 시청자들은 교육적인 정보를 원하겠구나 싶었어요, 우리끼리 승부를 내는 건 단조롭고 어떻게 배우는지 그 과정을 알려드린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더 큰 위기는 이른바 ‘협찬러시’다. 이 PD도 “생활체육 시장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각 지자체별로 있는 생활체육협회는 대체로 정계로 진출하는 일종의 경로로 여겨진다. 생활체육을 둘러싼 아웃도어 업체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요즘 힘든 것은 청탁이 온갖 루트로 들어온다는 거예요, 우리는 철저하게 신청해주신 분들 중심으로 (상대팀을 결정) 한다라는 것이 원칙이에요, 물론 밸런스를 맞춰야 하니, 팀을 보고, 그 안에서 캐릭터 좋은 분들 몇 분을 뽑긴 하는데, 여러 경로를 통해 출연 청탁이 들어오고 있어요(웃음) 우리는 지자체나 종목의 협찬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생활체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시는 분들도 많고 브랜드 광고주가 ‘어떤 종목을 하면 돈을 드리겠다’고 하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우린 받을 수 없어요. 원칙이 깨지면 일을 냉정히 할 수 없거든요”

   
▲ 우리동네 예체능 - 탁구편
ⓒKBS
 
“애초부터 예능 PD가 꿈, 면접에서도 말했다”

분위기를 바꿔 이예지 PD가 ‘예능 PD’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 PD는 애초에 면접장에서 ‘어려운거 물어볼까봐’ 대놓고 “예능PD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예능이 좋더라고요. 예능은 장르가 없어요. 동그란 그릇에 물을 담으면 동그랗게 되고 길죽한 것에 담으면 길죽한 것이 되는 그 유연함이 너무 좋아요.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드라마 형태로도 할 수 있고, 인간의 조건처럼 다큐에 접목할 수 있고 불후의 명곡처럼 쇼에 접목할 수도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장르에요. PD의 기획능력에 따라 더 많이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형프로젝트는 거의 다큐멘터리에서 하는데 언젠가는 그런 걸 예능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그가 최근 주목하는 예능은 아무래도 KBS 선배 PD들이 만들고 있는 ‘히트작’ 들이다.

“다들 비슷할 것 같은데, jTBC의 썰전과 마녀사냥, tvN의 경우 ‘꽃보다’ 시리즈나 ‘응답하라’ 시리즈가 좋아요, 다들 우리 선배들이 가서 한 거잖아요(웃음) KBS라면 그런 주제를 다루기 힘들었을거에요, 기획안 단계에서 진행이 못됐을 것 같은데, 그런 걸 jTBC나 tvN이 하게 해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응답하라는 원호 선배(신원호PD)가 하시는데 저랑 남자의 자격을 같이 했거든요, 원호 선배가 그런 장르를 너무 하고 싶어 했는데 주말버라이어티에서 그런 걸 할 수 없었어요, 시즌제를 통해 기회를 준다는 것이 부럽더라고요. 지금 KBS의 젊은 PD들에겐 부러움이 많을 거에요”

그렇다면 이 PD도 FA를 꿈꾸지 않을까?

“지금은 선배들과 같은 선상에서 싸우는 상황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KBS라는 채널이 나쁘지 않아요. 조직이 크고 둔하고 흐름은 느리지만 회사가 서포트만 잘해주면 젊은 PD들은 안 떠날 거에요”

실제 이 PD는 우리동네 예체능에 대한 KBS의 지원이 못내 아쉽다고 털어놨다.

“우리 프로가 지금 지상파가 처한 상황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우선 편성문제가 있는데 화요일 밤 예능은 시청률이 잘 안 나오는 편인데 (종편 등이) 그걸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어요. 회사가 전략을 세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청률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영향력에 대한 유의미한 조사가 필요해요. 게다가 우리는 홍보도 편성도 손을 놓고 있어요. 젊은 PD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인데 이제 콘텐츠를 다운받는 시대에서 소비자에 맞춰 움직여야 해요”

마지막으로 이예지 PD가 우리동네 예체능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리고 답은 “운동하자”로 나왔다.

“시청률을 위해 많이 노력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해서 건강해질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이 프로를 하면서 바빠도 PT같은 운동을 시작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규칙적인 운동이란 걸 시작한 건데, 우리 프로를 보면서 운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좋고 한 번이라도 가서 운동하면 더 좋아요, 취미나 습관이 되면 정말 좋구요, 우리나라 취미가 없잖아요? 술 마시고 게임하는 것 말고는 (상대팀 선정 오디션에서) 고등학생 딸이 아빠와 오는 모습이 부럽더라고요 우리 프로를 보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제일 기뻐요.”

   
▲ 우리동네 예체능 - 탁구편
ⓒKBS
 
이예지 PD 약력

2004년 KBS에 입사했다. 조연출 때부터 상상플러스 론칭에 참여하면서 큰 경험을 했다. 노현정 아나운서와 함께 하차 했는데, 하차 이유는 ‘출산’이었다. 이후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 시즌1에 참여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론칭에도 참여했다. 이후 안녕하세요로 입봉해 연출을 맡다가 ‘강호동 복귀 프로젝트’에 차출됐다. 현재 나이 34세, 이 PD는 젊은 나이에 입봉을 하게 된 계기는 ‘행운’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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