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참여를 희망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비밀 협상문서 두 건이 공개돼 미국과 국제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두 문서 모두 최신 협상내용을 담고있으며, 협상 참여국들의 각 사안별 입장을 정리한 표도 포함돼 있다. 특히 미국이 올 연말까지 협상 타결을 한다는 목표아래 다른 나라들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키리크스는 9일 TPP 비밀 협상문서를 공개하며 "미국과 나머지 참여국가 간에 깊은 갈등이 있다는 것과, 미국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날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도 같은 문서를 공개하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기업맨(Company Man)'이라고 비꼬는 보도를 했다. 이 신문은 기업에게 정치적 권한(투자자-국가간 제소·ISD)을 주고, 의약품 가격을 인상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요구에 나머지 국가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개된 비밀 문서 중 하나는 지난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TPP 수석협상자 정상회담에 대한 한 참여국의 내부 보고서다. 영어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지식재산권, 의약품, 투자, 국영기업(SOE) 등 분야에 대한 협상 과정을 설명한다. 또한 미국이 원하는대로 연말까지 협상을 마치지는 못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 9일 허핑턴 포스트의 머릿기사.
 
이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분야의 협상에서 마찰을 빚는 건 미국의 강압적인 태도다. 미국은 ISD 등 분야에서 협상의 여지를 전혀 보이지 않으며, 자국의 요구사안만을 강요하고 있다. 또한 섬유 분야에선 미국이 멕시코를 '구워삶아'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인 '얀 포워드(원사기준 원산지)'를 요구하게 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또 다른 비밀 문서엔 지난 6일 기준 TPP 협상 참여국들의 분야별 입장이 정리되어 있다. 이 표를 보면 한미FTA와 같은 골간을 지닌 TPP에 국영기업, 중소기업, 노동, 환경 등 분야가 새로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국과 다른 참여국들의 입장이 갈리는 분야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만 요구하거나, 미국만 반대하는 사안이 많다는 얘기다. 
 
공방이 제일 치열한 지식재산권 분야에선 미국을 제외한 11개국 모두가 '제약 허가특허연계조항'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FTA에 포함된 이 조항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제약 자료독점권조항'도 마찬가지로 미국만 유일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상당수 조항에서 나머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본이 미국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어 두 국가가 이해관계가 비슷함을 보여준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선 일본이 미국, 유럽에 이은 강대국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TPP 협상 중 유출된 나라별 입장표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두 문서를 보면 미국이 나머지 11개국에 동시에 한미FTA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미국이 연말까지 협상을 타결한다는 데드라인을 두고 반강제하다시피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산품 수출 보조금'의 경우에도 모두가 삭제를 원하는데 유일하게 미국만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TPP 협상은 철저한 비밀주의 원칙으로 진행되면서 협상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TPP 협상 내용은 위키리크스 등을 통해 유출된 문서로만 확인이 가능했다. 앞서 위키리크스는 지난 11월 96장으로 이루어진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 초안을 공개했고, 미국 시민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지난해 6월 투자 분야 초안을 공개했다. 
 
한편 비밀 문서는 협상 전략상 고의적으로 외부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는 "언론에 협상 내용을 건네준 후 여론에 힘입어 협상 상대를 압박하는 것도 국제 협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술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실수로 유출된 것이라면 해당국가는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몇개 국가로 추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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