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지나다보면 뽑기 기계를 간혹 볼 수 있다. 5백 원을 넣으면 1분 동안 로봇 팔을 움직여서 인형을 건져 올리는 게임이다. 1분이 종료되면 다시 5백 원을 넣어야 된다. 로봇 팔을 1분당 5백 원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느닷없이 뽑기 기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수리기사 노동자들 임금체계가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들의 임금 체계는 1분당 225원을 받는 분(分)급 체계다. 수리기사 노동자들은 삼성이 정해놓은 고장 유형 별 수리시간에 분당 임률 225원을 곱해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 형태로 임금을 받는다. 예를 들어 방문 수리로 엘씨디 티브이의 주변기기 연결 관련 고장을 처리할 경우 이 고장 유형은 30분 동안 수리하도록 되어 있고, <30분 × 225원/분 = 6,750원>을 받는 식이다.

정말 황당무계한 임금체계다. 아마 독자들도 연봉제, 월급제, 일당제, 시급제는 들어봤어도 분당 임률로 수수료를 책정해 건(件)당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임금체계는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이름을 붙여보자면 ‘분급제 수수료 체계’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체계에서는 기본급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법정 수당인 잔업·특근 수당도 없다. 4대 보험료도 어떻게 책정해야 할 지 근거가 불명확하다. 노동시간도 측정이 안 된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분당 임률과 수수료가 어느 정도 보장되면 수입은 어쨌거나 충분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분 단위로 책정되는 수수료체계는 극히 일부 노동시간만을 유급처리하기 때문이다. 이 체계에서는 직접 수리하는 시간만 유급이기 때문에 실제 수리보다 오히려 더 긴 시간이 소요되는 출장 시간, 상담시간, 다양한 대기시간은 모두 무급처리 된다.

연봉도, 월급도, 시급도 아닌 '분(分)'단위 임금

예를 들어 앞에서 이야기한 30분이 할당되어 있는 고장유형을 방문 수리한다고 했을 때, 출장시간 30분, 상담시간 10분, 방문 및 복귀 시 중간에 발생하는 대기시간 20분 등으로 사용된 1시간은 무료노동이 된다. 이 상황을 가지고 실제 임률을 계산해보면 분당 75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4천5백 원이 된다.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서비스업에서 월급제가 일반적인 이유 중 하나는 간접 노동시간이 다양하게 발생하기 때문인데, 삼성전자서비스는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분’단위로 노동시간을 잘개 쪼개어 대부분의 노동시간을 무급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심지어 출장 수리 시 발생하는 이동비 모두를 노동자가 부담하고, 사후 일부를 실비로 지급받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월급여가 마이너스인 달도 발생한다. 최저임금 미만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임금체계가 황당하다.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삼성전자 수리기사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문제점은 이게 다가 아니다. 분당 임률 225원의 계산방식도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임률 225원을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임금 통계를 사용해 책정했다고 주장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자기기 통신 수리원 월평균 임금이 255만원이고, 월평균 노동시간이 189시간이니, 255만원을 189시간에 해당하는 분(11,340분)으로 나눠주면 분당 임률은 225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서비스가 사용했다는 사업체노동력조사는 조사 표본 수가 실제 사업체의 1%도 되지 않는 조사로, 삼성전자서비스처럼 소분류 산업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단적으로 삼성전자서비스가 이용한 「전기, 전자, 통신 및 정밀기기 수리업」은 표본 기업수가 50개도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전기 전자 수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니, 통계의 평균이 곧 삼성전자 수리기사의 현재 상태와 다르지 않게 된다.

필자가 좀 더 정확도가 높은 통계를 이용해 계산해보면, 분당 임률은 현재보다 25% 높아져야 한다. 한국 기업체 조사 중 포괄범위가 가장 큰 경제총조사 자료(2010)를 이용하면 10인 이상 「가전수리업」 월평균임금은 2013년 약 305만원이며,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수리업 평균 노동시간이 월 180.4시간이므로 분당 임률은 281원이다. 회사 측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올해 수리기사 전체 임금의 25%를 떼어먹은 셈이다.

도급업체 사장들이 수수료 착복해도 방조하는 삼성

엉터리 임금체계의 화룡정점은 수리기사 노동자들의 법적 사용주인 도급업체 사장들이 그나마 이 적은 수수료 중 상당수도 떼어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약 1백여 개 도급업체를 통해 전체 AS의 90% 가량을 해결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일부 AS를 직접 담당하기도 하지만, 사실 삼성전자서비스의 주업무는 AS 도급업체 관리라고 봐도 무방하며, 삼성전자서비스가 간접고용된 수리기사 노동자의 업무평가부터 임금체계까지 직접 관리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입장에서 보면 도급업체 사장들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들인 셈이다. 바지사장이란 이야기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이들 업체들에게 통합수수료란 이름으로 건당 수수료를 지급한다. 통합수수료는 앞에서 이야기한 노동자들의 분급제 수수료에 각종 지원금을 더한 금액이다. 실제로는 최저임금에도 한참 미달하는 분급제 수수료로는 고용 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삼성전자서비스는 여기에 사회보장료 지원금, 출장 지원금, 센터운영지원금, 교육 지원금, 산업정착지원금 등 20개 가까운 항목의 지원금을 만들어놓았다. 지급액수 계산방식도 매우 복잡해 현장에서는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렇게 복잡한 형태로, 심지어 잔업특근 수당 지원금이라는 건당 수수료라는 체계에 들어갈 수 없는 돈들까지 마구잡이로 통합수수료 안에 집어 넣다보니, 도급업체 사장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이 돈을 착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수리기사 노동자는 얼마 전 사장에게 이런 내역을 따져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한 번에 받아내기도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20여개 지원금이 있지만 업체 사장이 수리기사 노동자에게 주는 명세표에는 제품수수료와 지원금, 딱 이 두 항목만 표시된다. 삼성전자서비스가 도급업체에 주는 통합수수료 중 수리기사 노동자가 가져가는 제품수수료는 6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40%는 도급업체 사장 맘대로다. 물론 이 과정을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모를 리 없다. 사실 삼성전자서비스는 도급업체들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를 방조하고 있다.

   
▲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삼성을 피할 수 없다면, 삼성을 바꿔야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마구잡이 임금체계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세계 1등 기업 삼성전자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답은 하나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도 한참 미달하는 이런 임금 체계가 삼성 안에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그냥 이게 정상이구나 하고 살았던 것이다.

오늘부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서초동 삼성본관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한다. 고 최종범 조합원에 대한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현재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에 대해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란 이유로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이제 시민들이 나설 때다. 세계 1등 기업에서 발행하고 있는 이 70년대만도 못한 노동탄압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한국에서 삼성을 피할 수 없다면,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가 삼성을 바꿔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2월 10일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출범이 반갑다. 삼성노동자들과 시민사회운동이 안팎에서 만나 삼성을 바꾸는 역동적 힘이 형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