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은 박정희 대통령을 흠모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를 이어 충성을 맹약했던 보수단체들에게 횡재를 안겨준 격이 되었다. 천주교 안에서도 천주교뉴라이트, 나라사랑기도회를 잇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이 박근혜 정부를 위해 신나게 ‘헌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 이들은 그동안 전국 성당을 돌면서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종북 마녀사냥’에 나서왔는데,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던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손병두 이사장도 이 집단에 속한다.
▲ 지난 3월 즉위한 프란치스크 교황.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
사제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데 ‘시국미사’보다 더 복음적인 방법은 없다. 시국미사란 성당에서 현 시국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자리가 아니던가. 교황청에서는 내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에 추기경 서임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그전에 새로운 추기경을 대거 선출할 텐데, 염수정 대주교 역시 유력한 추기경 후보자인 상황에서 교황의 의중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재간이 없다. 교황은 줄곧 ‘교회 밖 세상’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공동선을 위한 정치행위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며 교회의 정치참여를 독려해 왔다.
‘시국미사’라는 용어는 한국교회에서만 쓰는데, 이런 미사가 봉헌되기 시작한 것은 하필이면 박정희 유신정권 때였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는 “완전한 민주주의가 완전한 반공”이라고 말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종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유신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에 있던 농민, 노동자, 시민, 학생들을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이 중심이 되어 ‘빨갱이’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공동선을 위한 기도’ 자체가 정치행위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11월 22일 롯데마트 군산점 앞에서 열린 '불법·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 촉구' 촛불집회. ⓒ 강성원 기자 | ||
프란치스코 교황은 줄곧 ‘가난한 이들의 참상에 대한 공감하고 연대’하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며, 교회가 사회적 ‘변방’에 머물 것을 주문해 왔다.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장에서, 압제받는 이들이 해방을 요구하는 거리에서 ‘복음’이 선포되길 희망했다. 경험적으로 한국교회처럼 교황청의 향방에 영향을 많이 받아온 교회도 없다. 게다가 오는 12월 8일은 인권주일이며 ‘사회교리주간’이다. 교회가 인권과 사회문제에 집약적으로 관심을 갖는 때라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천주교회와 승산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셈이다. 이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는 “국가권력이 법률과 사회적 합의로 정한 한계를 넘어선다면, 권력은 그것 자체로 불법”이라는 바둑돌을 놓았다. 정부·여당의 다음 수가 무엇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