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와 MBC 관계자들이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MBC·부산일보 지분 매각을 논의한 사실을 보도한 최성진 한겨레신문 기자가 항소심 선고에서 1심보다 높은 양형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1심에서 대화 청취는 유죄, 녹음·보도는 무죄 취지로 징역 4월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 판결을 냈지만, 28일 항소심 판결에선 녹음·보도까지 사실상 유죄로 인정해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안승호)는 28일 최성진 기자에게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위반 혐의로 위와 같은 양형을 내렸다. 검찰은 지난 10월 31일 최성진 기자에게 징역 1년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공개된 대화가 아닌 경우 녹음할 수 없다는 통비법 제 3조 1항을 위반했다. 피고(최성진)는 평소 알고 있던 이진숙 본부장의 목소리가 들려 종료버튼을 누르지 않고 약 1시간 동안 녹음했다. 누구든 이 대화를 녹음해선 안 된다”며 청취가 유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필립과 이진숙 등이 공적 인물이라 해도 자기 의지에 반해 대화가 누출되어선 안 된다. 이들에게는 사적으로 대화할 권리가 있다”며 헌법에 명시된 사생활의 자유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언론의 자유 또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개인 간 대화내용이 공적 관심이 된다 해도 통비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 지난해 10월 한겨레신문의 '비밀회동' 보도.
 
재판부는 위법성조각사유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최필립·이진숙 등의) 논의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계획에 불과하고 절차가 남아있었다. 지분매각을 발표했더라도 이를 비판하는 보도 역시 예상된다”며 “해당 논의는 공적사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는 대화를 들으며 (듣고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 대화에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밝힌 뒤 해당 사건에 위법성조각사유를 인정할 경우 “앞으로 우연히 타인의 대화를 청취할 경우 언론이 내용을 취합해 보도했을 때 막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는 최필립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8분 47초 가량 통화한 뒤 전화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이진숙 MBC기획홍보본부장과 이상욱 전략기획부장과 최필립 이사장의 대화내용을 듣고 이를 보도했다. 1심 재판부는 “세 사람의 대화가 시작됐을 때는 이미 녹음 중이었고, 단지 소극적으로 녹음을 중단하지 않은 ‘부작위’행위인데, 이를 (통신비밀보호법이 금지하는) 녹음행위의 선행행위로 볼 수 없다. 녹음이 적법하므로 보도 역시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를 ‘작위’행위로 판단했다.

   
▲ 최성진 한겨레신문 기자. ⓒ언론노조
 
권력의 비리를 감시해야 하는 언론은 불가피하게 잠입취재나 허락 없이 녹음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공익을 목적으로 한 보도의 경우에는 통비법에도 위법성조각사유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판결은 이와 배치되는 것으로 언론자유 침해 논란이 불가피해보인다.  

변호인측은 판결 이후 기자와 만나 “사건의 특수성이 있는데 사생활만 일방적으로 주장했다. (최필립·이진숙) 대화의 취지와 의미가 축소된 것 같다”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는 “국민 여러분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셨는데 언론이 생각하는 정의와 사법부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른 것 같다”고 말한 뒤 “앞으로도 진실을 알리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변호인측은 논의를 통해 상고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국회의원 46명은 지난 3월 “현 통비법은 통신의 자유만을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보호하면서 표현의 자유 보장을 포기하도록 해 헌법 정신에 배치되고 있다. 불법 감청을 통해 생성된 정보라 하더라도 공개 내용이 공익성을 갖춘 경우 처벌을 면하도록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해야 한다”며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