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언론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의 일부 발언을 부각시키면서 색깔론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의 비난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일부 발언의 취지를 무시한 채 과격성만을 부각시켜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에서 나온 발언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가정체성 문제를 들고 나오자 지상파 방송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모습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2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흔들리는 지반 위에 집을 바로 세울 수 없다"며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궤변과 억지선동으로 무장하고 종교 제대를 방어벽 삼아 북한의 연평도 공격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천안함 폭침 행위를 부정한 것"이라며 "진실을 거짓으로 말하고 거짓을 진실로 말하는 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문제가 된 발언은 박창신 전주교구 원로신부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대목이다.

특히 MBC와 KBS는 박 원로신부 발언의 취지는 고려치 않고 일부 발언만 편집해 마치 박 신부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정당화 한 것처럼 표현했다.

MBC는 23일 뉴스에서 박 신부가 "NLL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쏴야지. 그것이 연평도 포격사건이예요"라고 발언한 장면을 내보냈다. 이어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독도에서 훈련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대통령이? 쏴버려야죠. 안 쏘면 대통령 문제 있어요"라고 말한 대목도 이어서 내보냈다.

MBC는 또한 다음 리포트에서 "(천안함 폭침을) 북한이 했다고 만든 거예요. 왜냐 북한을 적으로 만들어야 종북문제로 백성을 칠 수 있으니까"라는 발언도 소개했다.
 

   
▲ 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은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천주교 신자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불법·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KBS도 23일 "강론에 나선 한 신부가 3년 전 북측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며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해서 독도에서 훈련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되요? 쏴버려야지. NLL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훈련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쏴야지. 그것이 연평도 포격사건이에요."라고 말한 박창신 신부의 발언 장면을 내보냈다.

하지만 박창신 신부의 발언 전문을 보면 북의 연평도 포격 사건을 정당화한 것이라기보다 북방한계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견 역시 오히려 북의 기술적 수준을 의심하면서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취지에서 나온 내용이다.

박 신부는 "지금 이제는 북한하고 우리는 적으로 해서는 안 돼요. 남북 교류해야 합니다. 개성공단 잘 되고, 금강산도 가고, 철도도 이렇게 해서 러시아도 가고, 유럽까지 우리 우편물 실어나르고,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머리였잖아요"라며 과거 정부에서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신부는 "이제 금강산도 가고, 이제 개성공단도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 때 열고, 그래서 통일의 길로, 화해의 길로 갑니다. 예수님 말한 대로 서로 원수를 사랑해라, 해서 이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가 벌어집니까"라며 천안함 사건을 거론한다.

박 신부는 "천안함 사건, 저 NLL 지역에서 한미군사합동 훈련 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군사훈련하면 더 삼엄하고 보초도 더 잘 서야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이지스함에 천 개 이상 눈을 가지고 있는데, 세 대 이상 있는데 엄청난 눈을 가지고 훈련을 하고 있는데 북한 함정이 와서 어뢰를 쏘고 갔다? 이해가 갑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MBC는 박 신부의 이 같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발언을 생략한 채 곧바로 "(천안함 폭침을) 북한이 했다고 만든 거예요. 왜냐 북한을 적으로 만들어야 종북문제로 백성을 칠 수 있으니까"라는 박 신부의 발언을 소개하며 아무 맥락없이 천안함 사건을 북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NLL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훈련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쏴야지. 그것이 연평도 포격사건이에요"라는 박 신부의 발언 역시 남북 충돌 요소가 해소되지 않은 NLL 문제를 언급하고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다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나온 대목이다.

박 신부는 "여러분, NLL 아시죠? 뭡니까? 북방한계선이에요. NLL은 UN군사령관이 우리 쪽에서 북한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그어놓은 거예요. 북한은 아무 상관없고 휴전 협정에도 없는 거예요. 군사분계선도 아니에요. 군사분계선, 해상에는 없어요. 북한하고도 아무 상관없지만 북한에서는 NLL 이걸 우리 공해상, 해상이다, 왜 너희들이 와서 훈련하냐? 여러분, 하나 예를 듭니다"라고 말한 뒤 일본의 독도 훈련을 예로 들어 연평도 포격 사건을 설명한 것이다.

MBC는 특히 "한 원로신부가 'NLL에서 한미연합훈련을 하면 북한이 포를 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박 신부의 발언에서 이 같은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박 신부의 발언은 북의 연평도 포격을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부각되면서 종북몰이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보수 성향의 대학생 단체부터 어버이연합 등 보수 단체들이 25일 당장 천주교 전주교구 현장에서 항의 집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오후 5시 현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홈페이지도 마비된 상태다.
 

   
▲ 팩트TV 측이 자사의 영상을 무단 도용한 화면이라고 주장한 TV조선 보도 화면.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24일 미디어오늘 통화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팩트가 점점 드러나도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갇혀 길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천주교 사제들이 길을 제시했고, 시민들이 위안을 얻으면서 여론이 확산되는 것에 정권 차원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추 사무처장은 박창신 신부 발언을 부각한 언론 보도나 정치권의 공세에 대해서도 "국정원 비판 여론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꼬투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이런 보도를 통해 떠들면 본질은 묻히고 디테일에 대해서도 옥신각신했지만 현재 국면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MBC와 KBS 등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방송들이 인터넷 대안방송국 팩트TV의 영상을 무단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MBC와 KBS는 팩트TV가 촬영한 박창신 신부가 발언하는 화면을 로고를 지우거나 로고 화면을 자르는 방식으로 내보냈다. TV조선과 JTBC 역시 같은 방식으로 팩트TV의 화면을 무단으로 내보냈고 채널A는 무단으로 오디오를 사용했다.

팩트TV 신재관 책임 PD는 "기사 제보를 받는 전화로 우리의 입장을 말씀드리고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전했다.

신재관 PD는 "거대 공중파 방송들이 몰상식하게 무단 사용한 것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명하고 무단 사용을 넘어서 영상을 입맛에 맞게끔 편집을 한 것에 대해 더한 분노를 느낀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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