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중문화계에서 <응답하라 1994>의 인기는 신드롬으로 불릴만 하다. tvN에서 금·토요일 밤 8시 40분에 방송하는 이 드라마는 KBS 예능PD였던 신원호PD의 연출로 시트콤 요소가 더해져 보는 내내 행복감을 주는 청춘물이다. 1994년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제법 고증에도 충실해 1990년대 청춘을 보냈던 30대 중반~40대 중반에게는 추억의 복기와 젊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드라마는 Mnet <슈퍼스타K>와 더불어 케이블 콘텐츠사史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응답하라 1994>의 ‘성공’은 콘텐츠소비환경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16일(토)에 방송된 10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편은 평균시청률 8.8%, 순간최고시청률 10.0%(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했다. 케이블·위성·IPTV 통합 동시간대 시청률 1위였다. 30대 여성에게서는 최고시청률이 13.2%까지 나왔다. 또 주목해야 할 건 20~49세 시청 층에서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평균 6.2%)를 기록한 사실이다.

20부작의 절반이 방영된 상황에서 <응답하라 1994>의 시청률은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이 닐슨코리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시청률추이에 따르면 첫 방송에서 2%대를 기록한 뒤 3화부터 매회 1% 이상이 오르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추세라면 마지막 방송(20화)에선 꿈의 시청률 20%도 가능하다. 16부작인 전작 <응답하라 1997>의 경우도 케이블로는 이례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현재와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 tvN '응답하라 1994'(왼쪽)와 '응답하라 1997'(오른쪽)의 시청률 추이. '1997'에 비해 '1994'의 시청률 상승이 가파른 것을 알 수 있다. ⓒ미디어오늘
 
<응답하라 1997>의 1·2화 평균 시청률은 1% 미만이었고 중반부분에서는 시청률 정체를 겪기도 했다. 순간최고시청률은 마지막화에서 기록한 8%였다. 시청률 수치에 비해 온라인에서는 ‘응칠앓이’라는 사회적 신드롬을 낳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CJ E&M과 닐슨코리아가 공동 개발한 CoB(Consumer’s Content Consuming Behavior) 모델에 따르면 <응답하라 1997>은 드라마부분 ‘소셜미디어버즈량’에서 매주 지상파를 제치고 1위 내지는 순위권을 유지했다.

<응답하라 1994>는 젊은 시청자를 타깃으로 하는 tvN이 40대까지 흡수하며 온라인에서도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온라인에서의 뉴스구독순위와 직접검색순위, SNS버즈량 순위를 통합한 콘텐츠파워지수(Content Power Index)에서 이 드라마는 SBS <상속자들>, MBC <무한도전>을 제치고 11월 첫째 주 1위를 기록했다. 10월 마지막 주도 1위였고, 10월 넷째주의 경우는 <상속자들>에 이어 2위였다. 온라인에서는 지상파보다 잘 나가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응답하라 1994>가 보여준 현재까지의 지표는 ‘케이블’이라는 일종의 ‘플랫폼 장벽’에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황성연 AGB닐슨 연구위원은 1년 전 통화에서 “tvN은 젊은 층의 기호와 트랜드를 지속적으로 반영하며 tvN에 대한 시청습관을 끌어올렸다. 지상파 시청 습관을 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응답하라 1997>은 지상파 위주플랫폼에서 콘텐츠중심 플랫폼으로 가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측은 후속작의 성공으로 현실화됐다.

황성연 연구위원은 최근 통화에서 “케이블은 지금껏 지상파 콘텐츠를 반복 재생하는 재방송채널 이미지였다. 이제 채널성격이 바뀌며 오리지널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케이블이 점차 에프터 마켓에서 오리지널 마켓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재방송 케이블은 몰락하고, 오리지널 콘텐츠 케이블은 성공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에 따라 지상파 역시 영광스러웠던 플랫폼 독점시대를 뒤로하고 케이블과의 경쟁을 마주하게 됐다.

   
▲ tvN '응답하라 1997'(왼쪽)과 '응답하라 1994'(오른쪽) 포스터. ⓒtvN
 
황성연 연구위원은 “지상파는 지금껏 너무 편안하게 왔다. 개편을 해도 편성의 리뉴얼이 없다. 정규편성의 절반 이상은 장수프로그램이다. 케이블은 드라마를 만들어도 시즌제이지만 지상파는 시즌도 없고 잘되는 프로그램 포맷에만 맞춰 가려 한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내부에선 TV수상기 위주의 기존 시청률집계방식 때문에 중장년층 시청자에 최적화된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많다. 이 때문에 새로운 시청률 개념이 나와야 새로운 시도 역시 수월해질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지금껏 플랫폼 집중으로 누려온 특권이 깨지는 순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상파의 입장을 놓고 볼 때 핑계일 수도 있다.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는 지상파의 의무재송신보다 강력한 것이 스마트폰이다. 2013년 현재 지구인 10억 명이 스마트폰을 24시간 사용하고 있다. 지구인의 36%에 해당하는 25억 명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초연결 네트워크’ 사회에서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다. 시청자가 수동적으로 TV를 보는 시대는 떠났다.

콘텐츠 수용자는 스마트폰으로 ‘즉시성’을 확보해 언제든지 보고싶은 콘텐츠를 다시 볼 수 있고 특정부분만 볼 수도 있으며 SNS를 통해 리뷰나 프리뷰를 공유하며 질 높은 콘텐츠만 골라 볼 수도 있다. 시공간 장벽이 깨지며 일본 예능이나 미국 드라마, 영국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게 돼 온라인에서는 콘텐츠 다양성도 구현된 상황이다. 점점 콘텐츠시장은 tvN 드라마, MBC예능이 아닌 <응답하라 1994>, <무한도전>이라는 콘텐츠 그 자체로 상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 tvN '응답하라 1994' 촬영 현장. ⓒtvN
 
플랫폼이 다변화된 상황에서 케이블이 오리지널마켓이라는 이미지를 확보할수록 플랫폼은 콘텐츠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여기에 더해 시청률 조사가 콘텐츠에 대한 영향력지수 측정으로로 정교해질수록 지상파의 입지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4년부터 통합 시청률 조사(TSR;Total Screening Rate)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고정형 TV로만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측정했지만, 내년부터는 고정형 TV와 스마트폰, PC 등 세 가지를 이용하는 패널을 통해 조사가 이뤄진다. 스마트폰과 PC에는 실시간으로 시청 프로그램을 인지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된다. 이는 기존 시청률 조사 방식이 급변한 콘텐츠 이용 행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에 따른 결과다.

또한 이르면 내년부터 VOD 판매 실적도 TSR에 합산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응답하라 1997>은 2012년 7월~2013년 10월 2주차까지 다시보기 VOD 건수가 공식 플랫폼 기준 1000만 건을 돌파했다. 이중 90%는 유료 VOD다. 방영은 끝났지만 시즌제를 통해 전작에 대한 호기심을 유도하며 콘텐츠의 지속적인 수익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식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지상파는 케이블의 킬러콘텐츠와 편성전략에 무너질 것이다. <응답하라 1994>의 시청률이 상승할때마다, 시청자는 지상파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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