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심의위)가 21일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에 대해 법정제재인 경고(벌점 2점)를 결정을 내리자 현업PD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심의위가 징계를 내린 근거는 방송심의 규정 제9조2항(공정성)과 11조(재판 중인 사건)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징계에는 방송심의 규정 제11조가 주요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심의규정 11조는 “방송은 재판 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되며, 이와 관련된 심층취재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업 PD들은 이 같은 심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시사프로그램은 물론 뉴스 제작도 어렵다고 반박한다.

“이런 ‘수준’의 위원들이 프로그램에 ‘칼질’을 해대는 게 서글프다”

KBS 기획제작국 한 PD는 “언론 보도 때문에 재판부가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주장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심의규정 11조 조항을 프로그램에 적용시키면 거의 모든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제작은 불가능하게 된다”면서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프로그램 제작은 물론 보도조차 하지 말라는 얘긴데, 방송 현업인 출신과 교수들이 포함된 심의위원들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게 말이 되냐”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21일 심의과정을 지켜봤다는 KBS 한 PD 역시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이 PD는 “모니터를 통해 심의위원들의 발언을 지켜봤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논평할 수준조차 되지 못하는 한심한 발언들이 많았다”면서 “이런 위원들이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 등을 운운하며 현업인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칼질’을 하고 있다는 게 답답하고 서글프다”고 말했다.

때문에 현업PD들의 불만은 심의위원들 특히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로 집중되는 양상이다. 한 중견PD는 “다른 걸 다 떠나서 이번 결정을 주도한 여권 추천 위원들의 구성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여권 추천위원 가운데 2명은 기자 출신이고, 2명은 교수 그것도 언론학과 교수 출신”이라면서 “언론자유에 가장 앞장 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추적60분> 법정제재를 공식 회의 석상에서 강하게 주장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김현석·KBS본부)도 22일 성명을 내어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구체적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KBS본부는 특히 KBS출신인 권혁부 위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KBS본부는 “권혁부 위원은 (추적 60분이) 방송에서 다룬 탈북자 유우성씨 사건에 대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법적 혜택을 받으며 간첩활동을 한 사건’이라며 유씨를 간첩이라고 단정했다”면서 “기가 찰 일이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이 간첩 혐의의 근거로 제시한 7가지 항목에 대해 모두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간첩이라고 단정짓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기자·교수 출신들이 오히려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주장 펼쳐 … 부끄러운 일”

KBS본부는 “그의 망발은 이 뿐이 아니다”면서 “(권혁부 위원은 제작진이) 간첩을 옹호했다는 등의 헛소리를 공식 회의석상에서 끊임없이 쏟아냈다. 사실도 아닐뿐더러 의견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말들”이라면서 “권혁부 위원은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을 유씨와 추적 제작진 모두에게 가한 셈이다. 1심 재판부가 무죄로 선고한 사건을 유죄라고 단정 짓는 권혁부의 태도야말로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KBS본부는 “신문사 기자를 거쳐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박성희 위원은 ‘(방송이) 유씨가 1%라도 간첩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면서 “유씨가 1%라도 간첩일지 모를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는 게 아니라 아닐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KBS본부는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절차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른다”면서 “법원은 검사가 입증하는 증거에 의해서만 유죄의 심증을 형성해야 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무죄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무죄를 선고해야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법체계도 부정하는 방통심의위원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비판했다.

한국PD연합회(회장 홍진표·PD연합회)도 21일 저녁 성명을 내어 “<추적60분>은 국가 정보원의 무리한 수사에 대해 심층 취재했고, 국가 권력이 함부로 칼을 휘두르면 무고한 시민의 인권이 유린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또한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것을 높게 인정받아 최근에는 ‘통일언론상’을 비롯해 ‘이달의 PD상’ 등을 수상했다”면서 “우리는 심의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또한 과연 징계를 받아야할 곳이 방심위인지, <추적60분>인지 따져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PD연합회는 “심의위가 국정원을 비호하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면서 “심의위가 무차별적으로 언론의 공공성을 짓밟는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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