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의 현수막 게시를 거부해 국가인권위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고, 성소수자 문화제 장소 사용을 불허한 마포구청이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어기고 반인권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마포구청은 지난달 26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커밍아웃 문화제’가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홍대 앞 나무무대 사용을 ‘주민화합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등의 불분명한 이유로 불허했다.

마포구는 지난달 24일 공연장 사용 승인과 관련한 공식 공문을 통해 “주민화합에 지장을 초래하고 주민갈등만 유발할 것이 확실하다”며 “홍대 걷고싶은거리의 나무무대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무대이고 어린 학생들도 통행하는 개방된 장소이므로 승인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등 인권시민단체들은 20일 오전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포구청은 여전히 혐오와 차별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소수자가 드러나고 말하고 지역 주민과 어울리려는 모든 노력을 번번이 막아서고 있다”며 “인권보장의 흐름에 가장 민감해야 할 공공기관이 성소수자들의 ‘함께 살자’는 외침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지언정, 지역에 해가 되고 갈등을 유발할 뿐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규탄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등 인권시민단체들은 20일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단체의 행사 장소 사용을 불허한 마포구청을 규탄했다.
 
앞서 마포구청은 지난 6월 인권위가 “성소수자 관련 광고물의 내용이 성소수자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직원들에게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관한 인권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에 대해서도 이를 무시하고 2개의 현수막 중 1개만 게시하도록 허용했다.

마포구 성소수자 모임인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는 지난해 12월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한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2개를 제작해 마포구에 게시 허가신청을 냈다. 하지만 마포구는 자체 심의 결과 광고물의 일부 문구가 근거 없이 작성됐다며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게재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인권위 시정 권고 이후 열린 지난 9월 10일 마포구 광고물관리 및 디지인심의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원회는 첫 번째 게시물 내용에 대해 “게시자의 의도와는 달리 인근 주민에게 정확하지 않은 통계 수치를 전달함으로써 불특정 다수를 성소수자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고 부결했다. 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위원은 “우리 구가 성소수자의 단체나 모임 등의 중심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고 반대 입장을 폈고 나머지 5명의 위원들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권고 결정문에서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규제하는 허위․과장 광고는 상업적 광고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비상업적 의견제시 성격의 본 사건의 현수막 내용은 광고물 관리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광고물의 내용이 위 법 제5조에서 정한 금지광고물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광고물의 내용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심의위원회가 그 심의 권한을 벗어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그러면서 “광고 문구에 한하여 이례적으로 객관성과 적정성 여부를 따진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적 접근이며 이러한 피진정기관의 행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의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된다”며 “마포구가 우려하는 광고 내용의 객관성과 그 적절성 등의 판단은 이를 접하는 주민들의 몫”이라고 권고했다.

이 사안에 대해 박홍섭 마포구청장이 소속된 민주당의 유승희 전국여성위원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워낙에 성차별이 심하고 가부장적이며 남성우월주의가 강해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민의식이 함양될 수 있는 문화운동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며 “구청과 행정 관료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관에서도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입장을 설명하고 대체공간을 마련하는 등 시민들이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성소수자 문화제 불허 결정과 관련해 마포구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공연장소가 원래 아마추어 예술인을 위한 곳이라 운영체제가 신청인들의 취지랑 맞지 않다”며 “상업적이거나 특정 목적의 계몽·선전활동에 대해선 승인하지 않고 있는데 신청 단체의 경우 이런 목적을 띤다”고 설명했다.

마포구 도시경관과 관계자도 현수막 게시 불허 건에 대해 “공문으로 불허 통보를 한 후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와 별다른 협의를 진행하지는 않았다”면서 “인권위 권고에 따른 인권교육은 지난 9월 17일 오후 6시부터 도시경관과 직원 26명을 대상으로 30분간 진행할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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