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게임 좀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사라지면 부모들은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감시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어른들이 보기에 자녀들에게 해가 되는 것을 '사회의 악'을 규정해 격리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되풀이된다. 최근 게임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4대 중독법(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 대한 논란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한국전쟁 후인 1950년대 중후반 만화방은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 쿠테타는 예술과 문화계에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1967년 박정희 정부는 밀수·도벌·탈세·폭력·마약과 함께 만화를 ‘사회 6대 악’으로 규정했다. 
 
매년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 되면 풍속을 해친다는 미명아래 만화책을 모아 불태우는 행사도 열렸다. '불량만화'가 폭력과 범죄를 조장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좀 먹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현재 만화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뽀로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척결대상'이 아니라 구세주로 떠올랐고, 라바는 '방송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국제 에미상의 키즈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 관람객들이 16일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에서 블리자드의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김병철 기자
 
‘사회 악’으로 떠오른 게임
 
게임으로 돌아가 보자. 새로운 미디어인 게임은 40~60대 기성세대에게 생소하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힘을 가진 그들에게 게임은 자녀들의 미래를 좀 먹는 해로운 행위다. 이런 시각은 법과 제도 그리고 언론 보도에 그대로 녹아있다. 21세기에는 게임이 새로운 '사회 악'으로 떠오른 것이다. 
 
게임을 규제하려는 기성세대의 시도는 지속적이다. 대표적인 제도가 '게임 셧다운제'다. 여성가족부 소관인 '강제적 셧다운제'와 문화체육부의 '선택적 셧다운제'는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이다.
 
청소년보호법에 규정된 '강제적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게임하는 것을 제한한다. 또 게임산업진흥법의 '선택적 셧다운제(게임시간 선택제)'에 따르면 부모는 게임사에 요청해 자녀가 특정 시간대에 게임을 접속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두 법률은 도입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논란이 있다. 또 올해 초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른바 '손인춘법(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 법은 '강제적 셧다운제' 시행 시간을  확대하고, 게임사 매출의 1%를 '중독치유기금' 명목으로 걷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정신과 의사 출신인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4월 일명 '4대 중독법(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인터넷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중독물로 분류하고, 정부가 예방교육과 중독자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법률의 골자다. 여기에 여당 대표가 힘을 보태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0월 국회에서 "인터넷 게임 중독자 47만명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며 "알코올, 마약, 도박, 게임중독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환경을 개선해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게임 중독법' 등 게임 규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를 풍자하는 만화. 사진=김병철 기자
 
국가가 취미생활도 통제하나?
 
게임에 대한 일련의 규제를 보면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일부 게임사들과 시민단체들은 셧다운제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은 "게임 셧다운제는 인터넷 실명제처럼 과도한 개인의 자율권의 침해와 법적 실효성 차원에서 위헌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밤에 잠을 자지 않는 문제는 공권력이 결정할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는 "수면 시간은 청소년 개인이나 부모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청소년의 수면권을 국가가 관리 통제하겠다는 발상을 가진 국가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셧다운제는 사회적 관리 장치의 역할도 수행한다. 국가가 청소년의 일상을 관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청소년 수면권 보장'이라는 기성세대의 주장이 모든 부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에 과몰입하는 데에는 적극 찬성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자정이 넘도록 공부를 한다고 해서 '공부 중독'이라며 이를 막는 법률을 원하지는 않는다. 게임 규제를 원하는 기성세대 심리의 근간에는 자녀를 통제해 부모 기준의 사회적 성공을 이룩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깔려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 악'인 게임을 자녀들의 생활에서 배제해야 한다. 
 
   
▲ 관람객들이 16일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김병철 기자
 
과몰입은 있지만 중독은 없다?
 
게임업계는 그동안 과몰입은 있지만 중독은 없다고 항변했다. 부정적인 뜻이 강한 중독 대신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 둘은 전혀 다른 범주라고 주장했다. 특히 '중독법'이 게임을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한다며 강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자신의 직업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마약상과 같이 취급받는 것에 대한 반발심도 작용했다. 
 
실제 의학, 법적으로도 게임을 나머지 중독물과 동급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인류가 오랜 세월동안 경험한 알코올, 도박, 마약은 많은 국가에서 중독물질로 인정돼 원칙적인 '금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마약 등은 현행법상으로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의 대상'이지만, 게임은 일부 불법 콘텐츠(음란물 등)만 규제하는 문화 콘텐츠"라고 말했다. 
 
또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성인이 되면 이런 문제가 대부분 해소되기 때문에 게임을 중독물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의학계에서도 완전하게 합의되지는 않은 것이다. 이처럼 게임을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중독 사례를 보면 언젠가 해결될 청소년기의 '과몰입' 행위로 규정한 채 온전히 개인과 가정에만 맡기기도 어렵다. 인터넷 중독을 연례조사를 하는 한국정보화진흥원(NIA)는 2012년 한국의 인터넷 중독자를 22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중 10~20대 다수가 게임 중독자로 분류된다. 특히 인터넷 중독자의 61%는 게임을 하기위해 인터넷을 이용해, 모바일 메신저를 주 목적(49%)으로 하는 평균과는 차이를 보였다. 
 
NIA 인터넷중독대응센터의 상담 사례를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중학교 3학년 A군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진 그는 학교를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산다. 어울리는 친구도 없어 PC방을 가기 보다는 집에서 인터넷상의 친구들과 게임을 한다. 게임 세계 속에선 능력을 인정받는 A군은 게임을 안하는 동안 게임 내 등급이 떨어지는 것을 못견뎌해 밥을 먹을 때도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무직자인 B씨(37세)도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20대 초반엔 직장에도 다녔으나, 1인칭 슈팅게임(FPS)에 빠지면서 일은 안한지도 10년이 넘었다. 자식을 포기한 노부부가 보내주는 용돈에 의지해 사는 그는 게임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포털 사이트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게임에만 집중한다.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됐던 그는 최근 인터넷중독대응센터에 스스로 연락해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가 열린 부산 벡스코에서 관람객들이 '게임 중독법'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김병철 기자
 
“중독은 있지만 마약과는 달라”
 
게입업계와 게이머 입장에선 마약중개인, 예비 중독자 취급을 받는 게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에 중독돼 일상생활이 무너진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외면해서도 안된다. 그런 면에서 신 의원의 법안의 내용을 잘 살펴볼 필요도 있다. 실제 중독법은 게임이나 음주 자체를 규제하는 법은 아니다. 4대 중독에 빠진 이들을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의 성격이 강하다. 신 의원은 "게임을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술과 같이 과용하면 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는 신 의원의 발상은 충분히 '꼰대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보건소의 '금연 클리닉'처럼 게임 중독이 심각한 이들을 도와주는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게임업계가 게임문화재단과 함께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이런 부분을 인정하는 반증이다. 
 
다만 신 의원의 중독법은 워낙 낙인효과와 상징성이 강해 논란이 예상된다. 법적으로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중독물로 취급하면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게임 규제 정책이 향후 더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전문가들은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면 셧다운제 수준이 아니라 더 큰 규제가 가능하다"며 "중독물질을 청소년에게 허용할 것이냐는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규제개혁공대위 사무국장인 최준영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게임 중독이라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중독물질이라고 보는 건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중독이 100% 게임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의 성장배경, 가족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된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일탈 행위나 사회 부적응을 모두 게임 때문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론 이 같은 논란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성장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청소년의 놀이문화에 불과했던 게임이 산업, 문화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게임업체 블루사이드의 김세정 대표는 "게임 없이 커온 기성세대가 자녀들의 일상과 밀접한 게임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 게임을 하는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업계도 이 성장통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가 열린 부산 벡스코에서 관람객들이 '게임 중독법'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김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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