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최근 외국 기업들이 철도시설의 감독 및 경영 조달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정부조달협정을 개정해 국무회의에서 기습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순방 중 프랑스 경제인 간담회에서 공공시장 개방 약속 및 대통령 시행령 개정 언급을 한 직후 이 같은 국내에서의 법적 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나 KTX 등 철도 민영화 위한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측은 그러나 박 대통령이 우리 공공시장만 개방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EU도 개방을 위한 비준 처리를 요구하기도 했으며 민영화는 절대 아니라고 해명했다.

13일 청와대와 법제처, 민주당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일 공공부문 시장을 개방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달협정 개정에 관한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기습처리했다.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은 현재 대통령의 재가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의정서에는 일반철도 및 도시철도의 시설 건설 및 조달, 설계 등 엔지니어링 서비스, 감독 및 관리의 조달계약 등이 공개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날 한겨레의 보도로 알려지게 됐다.

공공시장 개방 관련 정부조달협정의 국무회의 통과 직전인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 경제인 모임 ‘메데프(Medef)’와 간담회에서 공공시장 개방 약속과 조만간 대통령 시행령 개정 의사까지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르몽드는 지난 4일자 ‘한국, 공공부문 시장을 외국기업들에 개방할 것’이라는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외국기업들에 대해 한국의 공공부문 시장을 조만간 개방하겠다고 공표한 사실에 프랑스 측 청중이 특히 만족했다”며 “특히 비관세 장벽을 폐지함으로써 양국간의 교류에 장애가 되는 일련의 장벽들을 제거하기 위한 대통령 시행령이 오는 며칠 이내에 내려질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4일 프랑스 경제인모임 '메데프'와 간담회 참석 장면.
 
또한 당시 간담회 자리에서 ‘공공시장 진입장벽 문제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는 프랑스 경제인의 질문에 “도시철도 시장개방과 관련해서는 정부조달협정 비준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도시철도 분야의 진입장벽도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라고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 말 외에도 EU도 공공시장 개방을 위한 비준안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EU도 빨리 비준안을 조인해주기 바란다”고 언급한 대목이 르몽드 보도엔 빠져있다고 설명했다. 김 배변인은 “정부조달협정 개정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진전돼 온 것이며, 이는 우리만 개방하는 것이 아닌 상호시장 개방으로, 5억 명 인구의 EU 시장에 우리 기업의 진출도 바라보고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정부조달협정을 우리와 EU가 모두 비준해야 한다며 우리 외에도 오는 12월 초 WTO 각료회의 전에 발효하기 위해 국내 비준절차가 진행중이지만, 이는 43개국 전체가 동시에 하는 것이므로 EU도 빨리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조달협정에 관해 43개국이 끊임없이 만나서 토론해오다 지금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정 개정에 해당하는 문제를 국회 동의는커녕 국민 몰래 추진한 이유에 대해 김 대변인은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추진돼 왔던 일로, 국회 비준을 받는 대상이 아니다”라며 “법적 절차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오래 전부터 철도부문, 특히 KTX 민영화 강행 움직임에 반대해왔던 철도노조와 민주당은 민영화는 아니라던 정부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공공부문에 해당되는 분야를 국민의 동의없이 도둑처리하려 했느냐고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4일 프랑스 경제인모임 '메데프'와 간담회 참석 장면. 사진=청와대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은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상호조약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미 철도부품과 운영 분야에서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 프랑스와 독일로 우리 기업과는 경쟁력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정부조달협정 개정안 대로라면 이들 나라의 산업이 국내 공공부문까지 침투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지하철 서울메트로 9호선 운영사의 대주주가 프랑스의 베올리사여서 향후 이 쪽 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백 팀장은 “무엇보다 외국자본이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 국내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수익과 이윤을 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재인 철도분야의 국내 산업은 완전히 붕괴하고 사양화의 길로 갈 것”이라며 “이런데도 우리 정부가 국가기간산업을 앞장서서 해외에 시장개방을 허용하는 것은 결단코 용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백 팀장은 국민 몰래 처리하려고 한 정부에 대해 “최소한 철도와 지하철은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인데도, 이를 해외에 개방하는 문제를 결정하는데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나라 말로 얘기한 다음날 기습적으로 국무회의에 통과됐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국민이 알게 됐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박 대통령이 경제인들에게 박수받았다고 좋다고 얘기해놓고 뒤로는 지난 몇 년을 갖고 있다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통과했다는 사실을, 그것도 외국 언론(르몽드)에 나온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황당한 노릇”이라고 성토했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국민을 기만한 체 정부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치밀하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준비해왔음을 방증하고 있다”며 “지난해 3월 WTO 정부조달위원회가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 의결이 철도민영화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비판이 나왔을 때 박근혜 정부는 ‘철도민영화는 공공조달시장과 개방과 아무런 관계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결국 이 말이 거짓말임이 밝혀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국가기간산업을 외국자본에 내주는 중대사안을 우리나라 국민보다 외국 기업인에게 먼저 전한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과, 국회에 상의나 보고절차 없이 기습적으로 국무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회 비준이 필요없다는 청와대와 법제처 주장에 대해 김 대변인은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은 대통령령, 부령 또는 고시의 개정을 요하게 된다. 따라서 동 조약도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이라 할 수 있으며, 적어도 대통령령의 개정을 수반하게 되는 조약의 개정사항이야말로 법률의 개정에 준하기 때문에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며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 없다고 해석했다해도 ‘국회는 서명된 조약이 통상조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에 비준동의안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통상절차법 9조와 ‘영향평가에 해당하는 사항은 국회와 국민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는 11조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국민과 국회를 기만하고 헌법과 법률의 절차도 깡그리 무시한 채 국민 위에 군림하지 말라”며 “지금이라도 정부조달협정의 국회비준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이 협정 개정안은 민영화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프랑스가 철도를 우리 나라에 깐다고 그것이 프랑스 것이 되느냐. 왜 되지도 않는 민영화를 갖다 붙이느냐”고 말했다.

르몽드 보도 이후 ‘박 대통령이 프랑스가서 조공외교하고 왔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 김 대변인은 “외국가서 자기 시장을 날로 내놓고 오는 대통령이 어디 있느냐”며 “개방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며, 5억 명의 인구를 가진 EU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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