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독립제작사협회가 창립 17주년을 맞았다. 12일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정영화 회장(사계절비앤씨 대표)은 “17년간 독립제작사의 저작권확보와 제작비현실화를 목표로 달려왔다”며 “생존위기에 내몰린 독립제작사를 방치하면 이직과 폐업이 속출할 것”이라 우려했다. 

문화부에 등록된 독립제작사는 1300여 곳. 2010년 만해도 1700여 곳이었지만 3년 사이 폐업 등으로 300여 곳 이상이 줄었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독립제작사협회 회원사는 145곳이며, 인원은 5천 명 수준이다. 정영화 회장은 “지상파에서 지금도 협회가입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입하고 싶어 하는 회원사는 방송사 눈치를 본다”며 “회원사가 늘어나 힘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제작사협회는 수년간의 노력으로 문화부에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지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표준계약서는 권고에 불과해 제도적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더욱이 제작여건이 전보다 녹록치 않아 제작사협회는 단체행동까지 고려하고 있다. 정영화 회장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표준계약을 법제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선 고양이를 문다. 최선을 다해 협상테이블로 가겠지만 총파업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제작사협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SBS는 편성대비 외주제작프로그램이 50.5%, MBC는 편성대비 47.7%가 외주제작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절반 이상의 회원사가 지상파 외주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립제작사들은 외주제작비가 너무 부족해 지상파에 민원을 제기할 때도 있지만 지상파는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 정영화 독립제작사협회장.
 
정 회장은 “MBC <생방송 오늘 아침>의 제작비가 너무 적어 다섯 곳의 제작사가 1회분을 제작할 때마다 300만 원 가량의 적자가 나고 있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그래서 지난 8월 공동으로 김종국 MBC사장과 면담을 두 번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9월엔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지상파와 독립제작사간의 불공정거래 논란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참여연대와 독립제작사협회·독립PD협회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립제작사 저작물의 저작권 91.7%가 지상파의 것으로 나타났다. 저작권 귀속 결정이 협상이 아닌 일방적 강요에 의한 것이란 답변은 81.3%였다. 이에 이들 단체는 공정위에 전면조사와 불공정 고시 제정을 요구하는 신고서를 제출했다.

유승희 민주당 의원이 2013년 국정감사에서 KBS로부터 받은 외주제작 현황에 따르면 KBS는 지난 5년간 1561편의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만들어 1464편의 1·2차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제작사가 저작권을 단독으로 소유한 경우는 단 2편에 불과했다. 정영화 회장은 “규모가 있는 제작사들도 보통 억대의 빚을 안고 있다. 제작사가 저작권을 갖고 멀티유즈 할 수 없다면 제작사도 망하고 지상파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현 상태로 가면 이직과 폐업이 속출할 것”이라 지적했다.

   
▲ 지난 10월 31일 민주당 유승희 의원과 독립제작사협회, 독립PD협회, 참여연대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 ⓒ독립PD협회
 
정 회장은 이어 “지상파PD 대비 독립PD의 인건비는 3분의 1수준이다. 최소한 같지는 못해도 금액의 70%이상은 받아야 한다. 제일 힘들고 찍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프로그램에 외주를 주고 있으면서 제작비는 인하우스 (지상파 정규사원) 대비 3분의 1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상파의 불공정거래를 비판했던 보수일간지가 만든 종합편성채널 역시 실망스러웠다. 정 회장은 “종편이 건수만 생기면 특집으로 몇 시간을 떠든다. 보도채널이지 종합편성이 아니다. 방통위에서 강하게 제재를 해야 한다. 종편에도 외주의무비율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콘텐츠산업이 살고 종합편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상파와 독립제작사간 오랜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영화 회장은 영국사례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2004년 영국은 방송사가 프로그램 저작권을 25% 미만만 갖게 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저작권을 제작자가 갖게 되니 투자자가 붙고 수익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국독립제작사협회와 조만간 교류협정을 맺고 2014년에는 공동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뒤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간의 선진적인 법제도 도입을 국회에 요구할 생각”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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