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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안 나온다고? 30년 뒤를 먼저 보자”
“답이 안 나온다고? 30년 뒤를 먼저 보자”
[인터뷰] 소셜픽션 컨퍼런스 준비하는 경제평론가 이원재씨, “상상을 해야 세상이 바뀐다”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무소속 안철수 캠프에 합류해 정책기획실 실장으로 일하던 도중 안철수 후보가 자진 사퇴하면서 ‘붕 떴다’.

지난 4월 펴낸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에서 이씨는 “그해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나는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가장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고 썼다. 이씨는 이 책에서 “정치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제한적 범위에서만 가능하다”면서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정치도 바뀌기 어렵다”고 정치에 거리를 뒀다.

그러나 이 책의 결론은 “정치의 혁신과 사회의 혁신, 삶의 혁신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훨씬 더 큰 변화가 가능하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정치가 바뀌어야 삶이 바뀐다”는 게 안철수 캠프의 캠페인 구호였는데 이씨는 “삶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그런 이씨가 최근 “상상을 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구호를 내걸고 소셜픽션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오른 이씨의 프로젝트(https://tumblbug.com/socialfiction_childrenspark)는 이틀 만에 목표 금액 300만원을 훌쩍 넘겨 목표 금액을 600만원으로 올린 상태다. 어린이대공원의 30년 뒤를 상상해 보자는 소셜픽션@어린이대공원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오픈 컨퍼런스에 최종 투자 마감을 9일 남겨둔 상태에서 11일 오후 7시 기준으로 117명이 619만7000원을 투자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놀라운 것은 이 프로젝트에 쏠린 뜨거운 관심과 열기다.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은 올해로 개장 40년을 맞는다. 서울 한복판에 여의도 6분의 1의 면적. 해마다 50억원 가까이 서울시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 밀려 어딘가 초라하고 낙후된 느낌을 준다. 이씨는 “어린이대공원의 30년 뒤를 상상해 보자”는 제안을 던졌다. 오는 30일 열리는 소셜픽션 컨퍼런스는 100명의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씨는 “공상과학소설(SF, science fiction)에 등장했던 텔레비전과 영상 전화기와 시험관 아기 등이 현실이 된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소셜픽션(social fiction)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다.

   
 
 

소셜픽션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무하마드 유누스가 제안한 개념이다. “상상을 해야 변화가 일어난다”는 게 핵심이다. 이씨는 “유누스는 전혀 다른 은행을 꿈꾸는 소셜픽션을 썼고 직접 가난한 이들을 돕는 그라민은행을 세웠다”면서 “부자들 돈을 불리는 데만 신경을 쓰는 다른 은행들과 비교하면 꿈만 같은 곳이지만 그라민은행에서 시작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 신용대출)는 이제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셜픽션@어린이대공원은 이씨가 계획하고 있는 소셜픽션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이다. 다음은 이씨와 일문일답.

- 100명이 모여서 토론을 한다는 게 가능한가.

“이번에는 장소가 비좁아서 100명으로 한정했지만 1000명이 커다란 원을 그려서 토론을 할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진행을 맡게 된다. 우선 소셜픽션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해 주고 참가자들에게 세부 토론 주제를 제안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10개 세션 정도로 나눠서 분임토의를 하고 다시 모여서 그걸로 짧게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몇 가지 제안을 선정하고 결론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 잘 될까. 토론회 같은 데 보면 나서기 좋아하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뺏는 사람들이 꼭 있다.

“오픈 스페이스 테크놀로지나 어프리시에이티브 인콰이어리 등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동원할 계획이다. 다들 뭔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오는 사람들이라 생산적인 논의가 될 거라고 기대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완성된 아이디어를 기대한다기 보다는 뭔가 집단적인 염원이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염원이 현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 정치나 사회 문제를 토론할 때는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뭔가를 바라더라도 잘 드러내지 않고 유리한 것만 강하게 이야기하게 된다. 흔히 사람들이 다들 집 걱정 없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집 있는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는 쪽으로 목소리를 내게 된다. 누구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히려 30년 뒤, 먼 미래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장기적이고 집단적인 염원을 끌어내 보자는 거다.”

- 이해관계를 벗어나야 비로소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되는 건가.

“목소리 큰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염원이 있지만 그런 염원을 크게 떠들지는 않는다. 그런 염원을 이야기해보자는 거다. 장기적으로 생각하기만 해도 변화가 있을 텐데 그런 논의의 자리가 없었다.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해보자. 1년 뒤를 이야기하자고 하면 답답하지만 30년 뒤를 상상하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기획에는 두 가지 기법이 있는데 하나는 포워드 플래닝이고 다른 하나는 백워드 플래닝이다. 소셜픽션은 먼 미래를 상상하고 그 그림을 기초로 실행 방법을 찾는 백워드 플래닝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왜 하필 어린이대공원인가.

= 이런 실험을 하기에 공간이라는 주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한국 교육의 30년 뒤, 이런 거랑은 다르다.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게 토론하기가 좋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떠올리지 않으면서 상상하기 좋은 그런 주제를 찾았다. 어린이대공원의 30년 뒤를 상상해 보자고 하면 이해관계를 떠나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 만약 이걸 서울시가 주최하는 공청회 같은 걸로 한다고 하면 목소리 큰 사람들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쉽다. 연간 예산이 50억원에, 이게 또 위탁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임대료 문제도 있고 뭔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뭔가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걸 이렇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토론하면서 찾아보자는 거다.“

- 그렇게 내놓은 결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나. 이를 테면 어린이대공원을 바꾸는데 여기서 나온 제안이 받아들여질까.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찾아와 돈까지 내면서 토론을 하고 대안을 찾고 이런 과정에서 나온 대안을 서울시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할은 대안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데까지다. 이런 모임들이 어떤 부싯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 세상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통령을 바꾸는 것 아닐까.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봐라. 정치를 내버려두고 이렇게 골방에 모여서 토론한다고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나.

“어디가 골방이고 어디가 광장인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를 내걸고 당선됐다. 51.6%의 국민들이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정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고 어떻게 정치를 바꿀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본다. 투표로 대통령을 바꾸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면 정치의 영역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것 아닐까. 정치는 삶 속에 있다.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을 짜자는 거다. 역사를 보면 항상 프레임을 짜는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 막는 사람은 이미 짜놓은 프레임 안에 들어가서 반대를 하게 된다. 프레임을 짤 수 없을 때는 반대도 해야 되는데 프레임을 짜는 걸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자는 거다.”

- 어린이대공원의 30년 뒤, 어떤 게 가능할까.

“어린이대공원은 즐거운 변화를 꿈꾸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렇지만 뭔가 확실한 결론을 내리자는 게 아니라 이렇게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거다. 서울을 돌아보면 비슷한 토론 주제가 많다. 지하상가도 오랫동안 문제가 됐는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반발이 너무 크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같은 경우도 에너지를 끌어내서 변화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 어린이대공원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니까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고 치고 기초연금 같은 주제도 가능할까.

“노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지금 정치권에서 하는 논의는 10만원을 줄까 20만원을 줄까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당장 재원 마련이 어떻고 형평성이 어떻고 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노인이 돼서 어떤 삶을 살아갈까,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를 상상해 보자. 그런 삶을 위해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가를 논의해 보자는 거다. 기초연금 20만원 논의는 지금의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전제에 깔고 있다. 노인 빈곤에 자살률은 높고 출산율은 바닥이고 복지 재정은 늘 부족하고 그런 전제를 벗어나지 못하면 20만원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정당이 우리는 노인들의 삶이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삶을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거다. 논의의 출발점이 다르다.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염원에서부터 출발해 보자는 거다.”

- 100명이 모여서 토론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거 아닐까.

“당장의 이해관계를 넘어 먼 미래에 대한 관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의지와 염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대공원은 하나의 화두일 뿐이고 첫 번째 컨퍼런스가 잘 되면 좋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논의를 널리 퍼뜨리고 싶다. 먼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를 진전시키는 에너지가 생긴다고 믿는다. 먼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해 봐야만 정치적 변화가 생긴다고 믿는다.”

   
 
 
소셜픽션@어린이대공원 프로젝트는 이원재씨를 비롯해 곽승준 고려대 교수, 김윤재 변호사, 박미향 한겨레 기자, 박상희 비룡소 대표,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조양호 더체인지 대표, 천근아 연세대 교수 등이 제안자로 참여하고 있다. 후원자들에게는 오는 30일 1호선 종각역 인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릴 컨퍼런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향후 출간될 단행본과 포토에세이집 등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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