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남성인가 여성인가'의 성별은 중요한 문제다. 선수로 활동하려면 선수등록을 해야하는데 남성은 남자선수로만 여성은 여자선수로만 등록이 가능하다. 남자선수가 여자선수 종목이나 여자선수 팀에서 뛸 수 없고 여자선수가 남자선수 종목이나 팀에서 뛸 수 없다. 여자선수가 아무리 남자선수보다 기량이 좋다 하더라도 남자선수 종목이나 남자선수 팀에서 뛸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에 예외가 있긴 있다. 골프나 테니스에서는 여자 선수가 남자선수들과 승부를 겨루었던 적이 있고, 1994년 최초로 미국 NCAA 야구경기에서 투수로 활약한 바 있는 ‘일라 보더스(Ila Borders)'라는 여성은 1997년 프로야구 북부 독립리그(Independent Northern League)의 ’St.Paul Saint‘팀에 입단해 1998년 'Duluth-Superior Dukes'팀에서 역사상 최초로 마이너리그 야구 게임에서 투수로 경기에 출전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해당 선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에는 어떠한 이견도 없었고 여자선수의 위대한 도전으로 여겨진 경우들이다. 선수등록에서의 성 차별이 아닌 성 구별은 간혹 어떤 선수의 성 정체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성별검사의 논란을 일으킨다. 그런데 대개 여자선수에 대해서 남성으로 의심을 하는 경우이지 남자선수에 대해서 여성으로 의심을 하는 경우는 없다. 여자라기보다는 남자로 보는 것이 맞기 때문에 ‘순수(?)여자’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스포츠의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논리이다.

박은선 선수의 성별검사를 요구할 권한도 근거도 없다

   
성별 논란에 휩싸인 박은선 선수. 사진=노컷뉴스
 
‘여자’축구선수인 박은선(서울시청)에 대한 다른 여자실업 축구팀 감독들이 공동으로 박 선수의 성별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여자축구연맹(이하 ‘연맹’)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내년 시즌 경기를 보이콧하겠다는 취지의 문건을 연맹에 전달한 것은 박은선 선수의 출중한 기량이 스포츠의 공정성에 위배될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한 때문일까? 어떤 근거에 의해서 박은선 선수의 성별에 의심을 품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여성이냐 남성이냐 판별의 공인된 기준이 있는지 여부도 모르겠지만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의 성정체성 판단은 일차적으로 당사자 본인에게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여성이다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문제인지도 의심스럽다. 더군다나 출생하면서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인정받고 여성으로 살아온 박은선 선수에게 단지 다른 여자선수들보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다른 감독들이 그녀에게 성별검사를 요구하는데 그렇게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그렇게 요구할 연맹이나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의 관련 규정이 있는가?

따라서 이번 여자실업 축구팀(서울시청 제외)의 감독들이 연맹에 대하여 박은선 선수의 성별검사를 요구하는 것은 권한도 근거도 없는 월권이며 또 이를 빌미로 내년 시즌 경기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사실상 협박 내지 강요나 마찬가지이다.

무분별한 성별논란을 방지할 규정 도입이 필요

이러한 여자선수에 대한 무분별한 성별문제의 제기는 해당 여성에 대해서는 인격 침해이자 프라이버시 노출의 강요라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외국 스포츠계에서는 무분별한 성별검사의 요구나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별검사에 관한 조건과 절차를 엄격히 규정한 규정 내지 제도의 도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의 결과로 국제축구연맹(FIFA)은 2011년 성별검사의 주체, 요건, 절차 등을 정한 ‘성별검사규정(FIFA gender verification)’을 제정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도 2012년 이 규정을 연맹 규정으로 채택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FIFA 또는 AFC 주관대회에서 아무나 특정 선수의 성별검사를 요청할 수 없고, 선수, 연맹, 의료 책임자(medical officer)만이 FIFA 사무총장에게 성별검사를 요청할 수 있고 요청시 구체적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도록 했다. 만약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요청을 기각할 수 있도록 했고 근거 없거나 무책임한 요청으로 밝혀진 경우에는 해당 요청자를 징계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성별검사는 산부인과 전문의, 유전학 전문가, 내분비학자 등으로 구성된 전문패널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했다.

우리 스포츠계도 이번 박은선 선수의 성별과 관련한 논란을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지 말고 더 이상 무분별한 성별검사 요구나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이나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성별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자를 엄격히 제한하고 조건이나 절차, 성별 판단에 관한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하리수씨가 축구선수로 뛰겠다고 선수등록을 신청하면 연맹이나 협회는 하리수씨를 남자선수로 등록시킬 것인가? 여자선수로 등록시킬 것인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