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비도 촛불을 꺼뜨리진 못했다. 한 주 동안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편파성, 공무원 노조에 대한 압수수색,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책임을 맡고 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에 대한 중징계 등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졌지만 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9차 촛불집회’에는 3천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이날 저녁 6시부터 서울광장에서 ‘국가기관 총체적 대선 개입 규탄 및 국정원 개혁 촉구 9차 국민결의대회’를 열었다. 참여연대는 창립 19년 만에 처음 중구 훈련원공원에서 서울광장까지 거리 행진을 펼쳐 촛불집회에 합류하기도 했다.

28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가 주최한 이날 촛불집회에서 연단에 오른 참석자들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제 수용, 통합진보당 탄압 반대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박석운 시국회의 공동대표는 “대화록 유출사건에 대한 검찰의 작태가 지극히 편파적”이라며 “국정원 사건 담당인 윤석열 검사에 정직 3개월을 내리면서도 외압으로 수사를 방해한 조영곤 서울지검장에 대해서는 징계조차 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공동대표는 “황교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래서 검사들이 소신을 가지고 진상규명에 나설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박 공동대표는 “그야말로 정치검찰 전성시대”라며 “선거 범죄의 진상을 은폐하려 하고 있는데 이제 그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특별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에서 정당들이 사생결단으로 (특검을 도입할 것을) 할 것을 촉구한다”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와 전국공무원노조 서버 압수수색까지 공통점은 (국정원 사건에 대한) 물타기 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남 공무원노조 위원장도 연단에 올라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들의 정치기본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력했지만 조직적인 선거개입은 하지 않았다”며 “이 (정권의) 마녀사냥에 동지들과 함께 하며 반드시 맞서 싸워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 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국회의 주최 19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정상근 기자 dal@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이광철 변호사도 “새 정부 들어 채동욱 검찰총장이 정권의 눈치를 안보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정원 사건 관계자들을) 기소하니 채동욱 총장을 축출하고 사건을 맡은 윤석열 검사를 찍어냈다”며 “특히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청구는 국민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는 검찰의 손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우리가 국민 공소장을 작성해 국민재판을 치를 것”이라며 “검찰조사 결과와 시민들의 제보를 받아 공소장을 만화, 노래 등으로 전파하고 국민배심원을 모집해 국민의 상식에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온 힘을 집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히 통합진보당 사태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한 교수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성, 다원성”이라며 “아무리 잘못된 이야기를 하고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 민주주의에 봉사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이 순간 민주주의 적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들고 없애려고 하는 세력”이라고 지적했다.

이날은 특히 시민·단체들의 자유발언에 눈에 띄었다. 유권자의권리를소중히여기는사람들의모임(유권소) 소속으로 미국 뉴저지에서 왔다는 제니퍼씨는 “우리는 이번 선거를 총체적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박근혜씨에게 사퇴하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전 유권자 명의로 된 당선무효증을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니퍼씨는 “우리는 지난 11개월 간 꾸준히 박근혜씨는 대통령이 아니라고 외쳤다”며 “워터게이트 사건이 2년 걸렸는데 우리는 아직 1년도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질긴 사람이 이긴다”며 “이 말을 하기 위해 뉴저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노정현 통합진보당 부산 연제구의원은 “불법선거를 눈 똑바로 뜨고 막지 못해서, 민주니 정의니, 진보니, 노동이니 단결하지 못하고 흩어져서 미안하고 사죄한다”며 “우리는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몇 날 밤을 연구하고 지켜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그게 죽여 없앨 만큼 잘못된 일이냐”고 말했다. 노 구의원은 “보수집회에서 통진당 해산 다음의 구호가 민주당 해산”이라며 “그런데 (민주당이) 진보당 편을 못들어주겠다는데,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최헌국 목사는 “비가 와도 불편하지 않지만 독재의 칼이 국민을 때리는 것은 불편하다”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청구는 박근혜·새누리당의 파쇼 독재 행위”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진보의 씨를 말리려는 박근혜의 망언 앞에 어떻게 국정원 개혁, 대통령 사과만 말할 수 있나”라며 “민주주의를 위해 진보민주세력이 총단결로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 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특검도입 촉구 19차 범국민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앞서 민주당 주최 국민결의대회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정권은 더 극렬하게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며 “훈장감인 용감한 검사는 징계하고, '정치검사'라는 주홍글씨를 달아야 할 간부검사들에게는 머지않아 권력이 큰 보상을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관한 한, 이제 더 이상은 검찰을 신뢰할 수 없다”며 “이제는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검’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국민에게 약속한 이상 절대로 특검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기관이 다시는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개혁을 위해서 국회에 ‘국정원 등 개혁특위’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생에는 한없이 무능하고, 공약에도 끝없이 무책임하고, 그런데 야당 탄압, 민주주의 탄압에는 1등”이라며 “참고인은 공개소환하고, 피의자는 서면조사한 편파수사, 정치검찰이 이번에는 도둑 잡아 준 사람은 벌주고, 도둑 놓아 준 사람은 상주겠다고 하는 참으로 염치없는 편파감찰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김 대표와 전 원내대표는 19차 촛불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맞은편 국가인권위 앞에서는 한국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들이 주최한 통합진보당 해산 촉구 결의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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