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분들은 왜 아픈 사람을 두고 파업 하냐고 비난하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거치면 환자에게도 좋은 적정 의료시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환자의 안전도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도 지킬 수 없습니다.”

늘 환자들로 북적거리던 서울대병원 1층 로비가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병원 직원들로 가득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돈벌이진료를 중단하고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라며 23일 오전 5시부터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연건동 서울대병원과 강남 건강검진센터, 위탁 운영되는 동작구 보라매병원 병원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은 오전 9시 30분 서울대병원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사성과급제 폐지 및 적정진료시간 보장, 비정규직 정규화 및 병원 인력 충원, 임금인상(20만 9천원 인상)’ 등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서울대 병원이 공공병원으로 제자리를 되찾는 우선 과제라고 판단 한다”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 23일 9시 30분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가 진행한 파업선언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지난 6월 10일 취임한 오병희 병원장은 취임한지 한 달 만인 7월 17일 올해 680억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10% 비용절감’을 지시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적자가 경영위기는 사실이 아니라며 비상경영으로 인한 비용절감 정책과 의료성과급제도에 반대했고 적정진료시간 보장, 인력충원 및 임금인상 등을 요구했다. 노조와 병원 측은 4달 간 45차례의 교섭을(본교섭 20차, 실무교섭 25차) 벌였으나 결국 타협에 실패했다. 노조는 지난 10일부터 5일 간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했고, 전체 노조원 중 94%이 파업에 찬성함에 따라 1400여명의 조합원 중 필수 업무 유지 인원을 제외한 400여명이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

   
▲ 23일 9시 30분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가 진행한 파업선언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노조의 핵심적인 요구는 의사성과급제 폐지 및 적정진료시간 보장이다. 서울대병원은 국공립병원 중 가장 먼저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했다. 의사성과급제란 환자수와 검사 건수에 따라 의사들에게 진료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초진환자 특진비 100%, 재진환자 특진비 50%, 검사비 10%가 의사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노조는 검사 건당, 환자 수대로 수당을 받은 의사성과급제로 인해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현정희 서울대분회 분회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15분 동안 11명에서 13명을 진료하는데, 사실상 환자 진료시간이 1분이 채 안 된다”며 “심지어 서울대병원에는 암 심장 질환자 등 중증질환자가 전체 환자의 51%인데도 그렇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환자인데도 1분이나 2분, 아니 심하면 30초 진료가 끝”이라고 지적했다. 현 분회장은 “중증환자는 의료법에 따라 개업한 의원은 의사가 하루에 75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중증질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KBS 소비자 리포트 갈무리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서울대병원에서는 오전 세 시간, 180분 동안 15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환자 1명 당 3분밖에 진료를 못한다고 많은 동료들이 걱정했었는데, 지금 서울대병원은 환자 1명 당 진료 시간이 채 1분이 안 된다”며 “병상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병상은 차고 넘치는데도, 환자 진료시간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 많은 성과급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보라매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태엽 씨는 “차라리 환자들한테 돈을 많이 써서 돈이 없다고 하면 창피하진 않을 것”이라며 “서울대병원은 선택 진료비를 가장 많이 받은 병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택진료비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때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서 드는 비용으로 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않는 비급여 에 속해 100퍼센트 환자가 부담한다.

   
▲ 유튜브영상 ‘쉿! 의사성과급의 비밀’ 갈무리
 
의사성과급제는 노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의사가 진료를 많이 할수록 간호사 등 병원 직원들의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노동 강도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김동근 노동자연구소 연구원은 “직원 평균보수는 2012년 5,245만원으로 5년간 10% 인상되었는데, 소비자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임금은 7% 가량 삭감됐다. 종사자 1인당 매출액은 2008년 1억 4,090만원인데 2012년 1억 8,242만원으로 29.5% 증가했다”며 “같은 기간 지원 평균보수가 7.4% 증가한 것에 비추어보면 임금인상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동강도가 급격히 상승한 것”이라고 말했다.

   
▲ 노동자운동연구소 보고서 갈무리
 

서울대 노조가 의사성과급제 폐지 및 적정진료시간 확보와 인력 확충을 함께 주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향춘 서울대노조 파업대책본부장은 “부족한 인력 탓에 병원 노동자들은 화장실 가는 일도 참아가며 일하고 있고, 끼니를 거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환자를 돌보는 병원에서 의료 인력은 의료서비스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은 퇴직이나 이직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원 감소도 신규채용으로 메꾸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대학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노조의 13.7% 임금인상 요구나 인력충원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경영여건 개선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의사성과급 및 적정의료시간 요구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진료를 보다가 시간이 다 됐다며 환자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 환자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어쩔 수 없다”며 “환자들이 몰려드는데 30명 밖에 안보겠다고 할 순 없지 않나”라고 답했다.

또한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노조와의 교섭을 통하여 조속히 파업이 종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측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해야 협상이 되지 않겠냐. 어디까지 수용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양측의 의견차가 워낙 크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실무적인 문제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 유튜브영상 ‘쉿! 의사성과급의 비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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