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한전)의 내부규정 개정을 다룬 경향신문의 단독기사가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사는 지난달 29일 오후 3시 24분에 온라인에 등록됐다가 오후 4시 1분에 경향신문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유됐으나 현재는 기사를 볼 수 없도록 지워졌다.

21일 경향신문과 김제남 의원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등에 따르면 <'송전탑' 현금 보상 받으려면 '집단 민원하라?'>는 기사는 지난달 29일 오후 경향신문 홈페이지 첫 화면에 올려졌으나 곧 경제면으로 옮겨진 뒤, 아예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제남 의원실 관계자는 21일 “처음에 기사가 경향신문 온라인 두 번째에 올라갔다가 시간 지나서 옆 세로면 두 번째에 있다가 삭제됐다”고 말했다. 이 위치는 경향신문과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가장 크게 편집되는 기사로 사실상의 톱뉴스로 받아들여진다.

   
▲ 삭제된 경향신문 단독기사
 
‘밀양의 친구들’ 소속 이아무개씨는 29일 오후 5시께에 이 기사를 공유했지만 오후 9시께에 기사가 삭제됐다는 것을 알고 "기사가 삭제됐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파악중"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트위터 @antik***도 오후 9시 35분께에 "기사가 삭제되었다고 나옵니다. 1시간 전부터 그런 듯 한데요"라고 썼다. 이를 종합해보면 기사가 등록된 지 대략 5시간 만에 삭제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씨는 이날 밤 11시께에 "제가 링크한 기사가 데스크에 의해 삭제됐다고 합니다. 언론통제가 드디어 경향에까지 미치나봅니다. 씁쓸하네요"라고 밝혔다. 김아무개씨도 “나도 공유했던 기사인데 데스크에 의해 삭제당했다. 페친 분들이 언론이 되어 보도합시다. 널리널리 알려주시길”이라고 썼다.

경향은 해당 기사에서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이 공개한 한전의 내부규정 개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 7월 31일 한전은 주민 현금보상을 위한 내부규정을 개정해 현금보상의 기준 중 하나를 '집단민원으로 인한 사업이 지연됐거나 지연이 예상되는지 여부'로 바꿨다는 내용이다.

경향은 "정부가 전력시설 건설 등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주민들은 정부정책에 협조하는 대신 집단민원을 제기해야 현금 등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라며 "집단민원을 제기해 공사를 지연시켜야 하는 등 전 국민을 갈등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경향은 "개정된 운영 수칙대로라면 전국 1511기 송전탑 건설현장 지역 주민들은 집단 민원을 통해 공사를 지연시켜야만 현금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며 "집단민원을 제기해야만 개별보상을 해주겠다는 집단민원 유발법을 만들었다"는 김제남 정의당 의원의 말을 전했다.

김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밀양 지역분이 이를 알려줘서 그 경위에 대해 경향에 문의를 했다“면서 ”항의도 했다. 경향에서는 팩트의 문제라기 보다는 ‘경향의 논조와 맞지 않다’는 일반적인 해명을 했고 이해하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공식 트위터가 공유한 삭제된 기사 링크
 
그는 “우리(의원실) 입장에서는 (한전 내규 개정이) 중요한 내용이라고 봤다"면서 "내용을 언론사 기자들이 모르는 게 아니다. 단독까지 했는데 기사가 내려간 것이 이해하기 어렵긴하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준 경향신문 산업부장은 21일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사 거리가 안 된다. 둘째 기사를 잘못 썼다. 틀린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기사를 잘못 썼다는 의미에 대해 김 부장은 "기사를 잘못 썼다는 것에는 많은 것이 있는데, 팩트를 왜곡했다거나 문장이 올바르지 않다거나 여러가지가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기사를 잘못 썼다"고 답했다.

그런 문제가 있는데도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노출된 이유에 대해 그는 "메인에 있고 없고 그런 것은 몰랐다. (취재기자가) 단독이라고 써서 올렸으니까 (편집팀이) 메인에 편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전의 외압설에 대해서는 “한전이 우리에게 무슨 외압을 합니까. 경향신문이 한전 외압 받는 곳이냐”고 반박했다. 기사를 쓴 정유미 기자는 기사 삭제 경위 등에 대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에 김제남 의원실은 "팩트에는 문제가 없다. 계산을 해야하는 팩트도 아니고 어려운 팩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계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은 "국책사업에서 마을에 주던 기금을 개별적으로 현금을 주게 된 것이다. 향후에 다른 국책사업에도 영향을 준다. 또 집단민원을 해야 개별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며 ”이게 왜 기사거리가 아니냐. 엄청난 뉴스"라고 말했다.

한전 홍보팀은 21일 "그때 온라인 기사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우리 입장을 설명 드렸다. 내용이 집단민원 제기해야지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요청이 있었을 때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라며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한 부분만 부각했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 삭제 외압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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