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10월 정례 회의내용이 안타깝다. 독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곳이 문제적 보도를 옹호하는데 논리를 찾느라 급급해서다. 조순형 위원장(전 국회의원)과 김창완(가수), 안창원(서울YMCA 회장), 윤석민(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지연(태평양 변호사)씨 등이 권익위원으로 참석했다는데, 이들은 조선일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보도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열린 회의에서 독자권익위원회는 “사생활 보호 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언론윤리강령이나 언론실천규범을 보면 공익에 대해서는 네 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며 “넷째가 ‘범죄의 폭로, 반사회적 범죄 또는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라고 예시하고 있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 문제는 공익을 위해 보도하는 게 맞고, 이런 사실은 지면에서 명확하게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다.

즉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보도는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이기 때문에 보도가 정당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중대한 근거는 무엇일까. 당시 조선일보 보도는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여서 논란이 된 것이 아니라, 보도 자체를 두고서 논란이 됐다. 이 건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기사가 안 된다는 주장이 있었고, 기사가 된다 해도 당사자에게 가해질 충격 수준에 비해 취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 조선일보 9월 6일자 1면 기사.
 
더욱이 다른 혼외자식 논란과 달리, 채동욱 건은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채 전 총장과 임모 여인 어느 쪽도 문제제기를 한 적 없는 특이한 건이다. 일반적인 혼외자식 논란은 여성쪽에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며 불거지기 마련이다. 둘 사이의 갈등이 드러나면 윤리적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건의 경우 이러한 갈등이 없는 상황에서 언론이 일부러, 쥐어짜내듯 들춰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아무 문제 없었던 이들의 ‘관계’를 일부러 들춰낼 만큼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는 무엇이 있었나. 아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폭행하거나 인신매매를 한 증거도 없다. 채동욱 보도를 둘러싼 갈등은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라는 조선일보 보도 근거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가 안 됐기 때문에 불거진 것이다. 독자권익위원회가 이 점을 모르지 않을 텐데, 평가에서는 이 점을 무시한 듯 보인다.

권익위는 이어 “피의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걸 왜 보도하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일반 범죄 얘기고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보도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채동욱 전 총장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범죄를 저질렀나. 이는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TV조선이 인터뷰한 임모씨의 가정부라 주장하는 여성 또한 채 전 총장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범죄로 볼 만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도대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범죄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의 큰 문제적 범죄는 아동 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범이다. 이 경우는 피의자 신분에서도 얼굴이나 이름이 낱낱이 공개된다. 그렇다면 채 전 총장은 과연 어떤 부분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에 버금가는,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범죄를 저질렀나. 이 역시 조선일보 보도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채 전 총장의 사생활을 사회적 이슈로 키워냈지만, 보도는 범죄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조선일보는 지난해 9월 아동성폭행 피의자 얼굴을 공개했다가 일반인으로 드러나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수준의 과오를 반복할 수도 있다. 독자권익위도 이 점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애써 무시된 느낌이다.

   
▲ 조선일보 18일자 37면 기사.
 
권익위는 위와 같은 주장에 더해 “이제는 사실이 거의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기사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인사청문회에서 어떻게 이런 것이 밝혀지지 않고 청빈성만 부각된 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지도 한번 다뤄 볼 수 있는 사항이다”라고 밝혔다. 도대체 ‘마무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한 마무리인가. 이미 채 전 총장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종결시키고자 사표를 냈다. 앞으로 법조인으로의 삶조차 불투명해진 그를 ‘부관참시’하자는 것인가. 이를 통해 한국사회가 얻을 수 있는게 무엇인가. 권익위는 이 같은 상식적인 질문도 하지 못했다.

권익위는 여기에 덧붙여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보도는 대형 특종이다 보니까 다른 언론사들이 음모설, 배후설, 기획설 등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며 조선일보를 옹호해주기까지 했다. 물론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婚外) 아들 숨겼다’는 첫날(9월 6일) 보도 제목이 너무 단정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반론 기회를 왜 주지 않았는가에 대한 지적도 있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타당한 지적은 비평에서 주를 차지하지 못했다. 독자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려 했다면,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했다.

독자권익위는 이번 회의에서 “권위 있는 고급 신문이 되려면 양질의 국제적 감시자 기능은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며 국제뉴스 강화를 주문했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권위 있는 고급 신문이 되려면 국제뉴스 강화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혼외자식 보도에 대한 성찰이다. 독자위원회는 일종의 옴부즈맨으로서 사회적 논란이 있었던 보도내용에 대해 가감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묻고 싶다.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가 지켜내려는 권익은 독자의 권익인가, 조선일보의 권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