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거짓을 구분 못하는 뉴스는 사고를 일으키고 불신을 낳는다.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시도가 ‘팩트체킹’(fact checking-사실검증)이다. 발언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고 따져 묻는 것이다. 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한국 언론의 팩트체킹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한 <저널리즘 공공성 실현을 위한 한국형 팩트체킹 모델 연구>(책임 연구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결과에 따르면 국내 언론은 정파성이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사실 검증에 참여 할 유인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연구진은 “시청률과 판매부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재정·인력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현재 국내 언론 팩트체킹의 토양은 ‘불안정’하다. 동아일보는 비정기적으로 <팩트체크>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올리며 ‘윤창중 파문’이나 ‘정치권 공약 예산 추정액’ 등의 주제를 다뤄왔는데 “윤 전 대변인이 A씨(피해여성)를 방으로 불렀는지는 둘만 아는 문제다”라며 모호하게 언급하는 등 주요 팩트에 대해선 사실여부를 밝히지 못하는 식이었다.

   
▲ 동아일보 5월 13일자 기사.
 
연구진은 “사실 검증이란 이름 하에 기존 정파적 보도를 반복하거나 자사의 논지를 변호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고 밝혔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선거 후보가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새누리당 보도자료에 대한 반박으로 구성된 <한겨레21> 제935호 ‘박근혜의 자질과 능력 팩트 체크’ 기사를 예로 들었다. 

기사는 박 후보가 수백 회 민생현장 방문 기록을 갖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두고 “대선 말고 <생활의 달인>이나 <스타킹>에 나가는 것이 어떤지”라고 보도했다. 결론에선 “인터넷 쇼핑몰에서 1~2만원에 팔리는 상품도 이런 수준의 홍보는 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연구진은 “검증할 내용이 터무니없는 것이라 해도 검증은 객관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언론의 상황이 이럴지라도 팩트채킹은 꼭 필요하다. 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은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광주민중항쟁에 북한이 개입했느냐 아니냐 이런 것들은 좌우 진영이 싸워야 할 일이 아니라 팩트체킹 되어야 할 일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들은 이념 성향에 따라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문제들에 대해 팩트체킹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실현 가능한 팩트체킹 모델은 무엇이 있을까. 연구진은 언론사가 직접 검증자로 나서는 ‘언론사 주도의 독립형 모델’과 대학 등 공공적인 기관이 팩트체킹 기구를 설립하는 ‘연구기관 주도의 협업 모델’을 제안했다. 여기에 언론사들이 자신의 지면이나 편성에 진실 검증을 위한 고정면이나 편성을 배치하는 것도 저널리즘 신뢰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다. 

   
▲ factcheck.org 화면.
 
연구진이 제안한 대학·언론의 협업모델은 미국의 ‘factcheck.org’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전문 검증자 및 경영자 10명과 대학생 5명이 사실검증을 시도하고 결과를 공표하는 포맷으로, 언론이 아닌 대학 기반 연구센터의 독립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당의 경우 검증 대상이 공화당 47%, 민주당 53%로 뚜렷한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 검증결과는 언론이 인용보도하고 있다.

언론을 통한 본격적인 사실 검증의 국내 사례로는 2012년 대선 후보자의 주요발언 사실여부를 검증한 오마이뉴스의 ‘오마이팩트’가 소개됐다. 오마이팩트는 대선후보 발언 검증 형태로 된 일종의 탐사보도기획으로, 2012년 11월 2일부터 12월 18일까지 사실검증팀이 후보 발언과 캠프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76건의 기사를 송고했다. 거짓의 비율이 높을수록 해당 후보의 코가 피노키오처럼 길어졌다.

   
▲ 오마이뉴스 '오마이팩트'의 피노키오 지수. 대선 당시 오마이팩트의 사실검증은 화제를 낳았다.
 
당시 오마이뉴스 사실검증팀이 바로잡은 논란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데가 (우리나라) 한 곳밖에 없다고 하더라”(10월 30일)고 말했다. 하지만 필리핀·아르헨티나·대만·캄보디아·이스라엘도 투표일이 공휴일이었다.
▲ 이정현 박근혜 후보 캠프 공보단장은 “투표시간 연장 주장을 들고 거리에 서 있으면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이다”(11월 1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 안철수 전 대선후보는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45%다.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OECD 국가들 중 노인 빈곤율은 평균 15%다”(11월 8일)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1년 OECD에서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OECD 30개 회원국 노인 빈곤율 평균은 13.5%였다.
▲ 김정길 민주당 부산선대위 상임위원장은 “해양수산부 폐지를 대표 발의 한 박근혜씨가 해양수산부 부활을 공약했다”(11월 6일)고 말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폐지가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사람은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박 후보는 공동발의자였다.
▲ 민주통합당이 ‘투표시간, 왜 우리나라만 6시?’라며 투표시간 연장을 주장했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멕시코, 호주 등 국가도 오후 6시에 투표를 종료한다.
▲ 문재인 후보는 “부산은 청년실업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됐다”(11월 14일)고 말했지만 통계청 확인 결과 부산의 청년실업률이 16개 시·도에서 가장 높았던 때는 2000년(12.1%)과 2001년(10.9%)뿐이었다.
▲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이 “안철수씨 딸이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면서 사용하는 콘도가 월 렌트비용이 5000달러”(11월 18일)라고 말했다. 확인 결과 렌트비는 월 2000달러 내외였다.

오마이팩트의 ‘피노키오’ 지수는 쏟아지는 속보에 치이며 그대로 받아쓰기 바쁜 저널리즘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며 언론계에 회자됐다. 연구진은 오마이팩트를 두고 “이 같은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사실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시도일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시선을 모으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 성향 언론사다. 검증 수에 있어 박근혜 후보 및 선거참모에 대한 검증 사례는 43차례였지만, 문재인 후보는 18건, 안철수 후보는 6건이었다”라며 “검증자의 정파성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정파성을 벗어난 팩트체킹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언론 협업 모델 역시 교수들의 정파성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팩트체킹이 공공적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검증의 대상과 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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