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이 국정원 직원의 사이버 여론공작 활동에 대한 증거분석 과정에서, 대선 개입 관련 의미 있는 활동 기록을 발견하고도 서울수서경찰서에 이 같은 분석결과를 전달하지 않고 폐기하거나 은폐한 것으로 밝혀졌다.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6차 공판에서는 서울청 증거분석팀이 수서서 수사팀에 전달한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29)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물 검증이 진행됐다.

이날 검찰은 “서울청이 수서서 수사팀에 지난해 12월18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넘겨준 증거분석결과 자료는 수사팀이 의미를 이해하고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아니었다”며 “국정원 직원 김씨가 ‘오늘의 유머(오유)’ 사이트에 빈번하게 접속하며 댓글을 작성하고 수정·삭제하는 등 의미 있는 자료를 분석 과정에서 확인하고도 분석 결과물에는 전혀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개한 서울경창청 CCTV 화면 중 일부.
 

검찰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청 증거분석팀은 김씨가 오유 사이트에서 “저는 이번에 박근혜를 찍습니다”는 제목의 글에 찬반클릭 활동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의미 있는 자료로 파악해 별도로 저장하는 등 필요한 자료는 갈무리하고 출력까지 했다.

하지만 서울청이 수서서에 전달한 분석결과 자료에는 30만 건에 달하는 김씨의 인터넷 접속기록 목록과 일선 경찰서에서 접근이 어렵고 서울청에서 사용한 프로그램이 없이는 열 수 없는 웹 문서 목록이 대부분이었으며, 유의미한 저장정보와 출력물은 건네주지 않았다.

검찰은 “서울청이 준 분석결과물 웹 문서의 실상은 수사팀이 증거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전문 분석관이 당연히 해줘야 하는 작업들을 전혀 하지 않고 수사팀이 접근하기 어렵고 읽을 수 없는 단순 목록뿐”이라며 “대검찰청 분석 툴을 통해 열어본 결과 분석결과물에는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전후 텍스트 내용을 모두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서울청 분석관이 지난해 12월19일 오후 늦게야 인코딩(암호화)된 파일을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고, 복원해준 문서파일에는 김씨가 아이피 변조 프로그램을 사용한 흔적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분석관이 온 시간은 지난해 대선이 거의 끝날 무렵인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서울청 증거분석팀이 수서서 수사팀의 디지털 증거분석물 반환요청에도 ‘국가 안보’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다가 언론 보도 후 오후 4시경 수서서에서 분석결과를 받은 것으로 거짓 대응을 지시했다”며 “실제로는 이날 오후 7시쯤에서야 경찰청으로 찾아온 수서서 수사팀에 하드디스크 하나를 돌려줬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김 전 청장 측 변호인은 “인터넷 접속기록에 있는 URL 정보를 복사해 인터넷 브라우저 주소창에 붙여넣기 하면 게시물과 작성시간 등의 확인이 가능하다”며 “엑셀파일의 필터 기능을 사용하면 시간·확장자별로 파일 확인을 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수서서에서 이런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으면 얼마든지 수사에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검찰은 “수서서가 압축파일 해제를 18일 밤에 했어도 용량이 30기가나 되고 수십만 건 이르는 파일을 전수 조사해 확인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며 “증거분석팀이 접속 기록 분석을 하면서 필요한 자료를 따로 저장하고 출력까지 했는데, 그 자료는 주지 않고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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