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노무현 NLL 포기 발언’ 논란을 둘러싼 공방을 이제 멈추자고 밝혔다. 지난 1년간 대선을 비롯한 각종 정치국면에서 반복해 등장하며 다른 주요 현안을 집어삼켰던 NLL논란은 이제 멈출 때도 됐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NLL논란을 증폭시켰던 주요 언론사들이어서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명 ‘NLL논란’은 대선 두 달 전인 2012년 10월 8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가정보원이 대화록을 공개하며 논란은 더 커졌다. 기자들 대다수는 대화록 공개를 우려했다. (관련기사=<[긴급조사] 현직기자 82% “남북회담 회의록 공개 부적절”>)

이번 논란은 지난 8일 국방부가 “노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 NLL을 수호한다는 원칙 아래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 임하도록 승인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혀 ‘NLL포기’ 논란은 종결됐다. 참여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노 대통령이 NLL 문제와 관련해 소신껏 하고 오라고 말했고 그 결과 소신껏 NLL을 지킬 수 있었다”고도 밝혔다.

쟁점이 됐던 사초폐기논란과 최종본과 초안의 차이점에 대한 해석은 검찰이 폐기된 초안을 최종본과 대조하면 될 일이다.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 ‘e지원’에 탑재된 대화록 완성본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은 부분의 경우 참여정부 인사들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한겨레신문은 10일자 사설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며 대화록 공방을 시작한 새누리당의 주장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며 “소모적 공방을 중단하고, 차분하게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1년간 논란을 확산시키는데 앞장섰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한겨레신문과 유사한 논조로 “소모적 공방을 중단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 10월 9일자 조선일보 김창균 칼럼.
 

   
▲ 10월 10일자 중앙일보 사설.
 
조선일보 김창균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은 9일자 칼럼에서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 발언을 인용하며 “박근혜 정부 고위 관계자가 노 전 대통령을 감싸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닐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은 NLL을 그렇게 못마땅해 하면서도 NLL을 지키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노 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안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김창균 조선일보 부국장은 이어 “녹음파일을 들어가며 (초본과 완성본을) 대조해보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 본들 나라의 앞날과 국민들의 정신 건강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노 전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한 지도 4년이 넘었다. 김정일 위원장도 세상을 떠났다. 노 전 대통령에게 왜 이런 말을 했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일 아닌가”라며 논란 종결을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10일자 사설에서 NLL논란을 두고 “정말 한도 끝도 없는 정쟁이 아닐 수 없다. 본란은 지난 6월 국정원이 대화록 요약본을 공개한 직후 여야가 전문 공개를 주장할 때 반대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 국익만 해칠 뿐 논란을 가라앉힐 순 없다는 주장이었다”고 밝히며 “대다수 국민이 여야의 대화록 정쟁에 신물을 내고 있다”며 역시 ‘종결’을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대화록 전문이 공개됐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을지라도 김정일 앞에서 NLL을 명시적으로 포기한다고 말한 적이 없음이 확인됐었다”고 지적한 뒤 “‘저’라는 표현을 몇 차례 ‘나’라고 고쳐 기록했다는 식의 치졸한 수준까지 지긋지긋한 정쟁이 계속되고 있다. 1년을 넘긴 대화록 정쟁, 이젠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중앙일보의 논조는 마치 NLL논란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키워낸 정쟁이었고 이를 보다 못한 언론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젊잖게 충고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8대 대통령 선거와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등 주요한 정치 국면마다 새누리당과 보조를 맞추며 NLL논란을 키워 ‘종북프레임’을 확산시켰던 대표 언론사들이다. 

예컨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공개 다음날이었던 지난 6월 25일자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NLL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고 머리기사에서 전한 뒤 회의록 내용을 두고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효화하고 우리 측에 극히 불리한 공동어로구역 설정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진지하게 논의됐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같은날 “노 대통령의 언급은 NLL 포기 발언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는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정일이 언급한 북측 해상경계선은 1999년 북한 군부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우리 영토인 백령도 등 서해 5도를 북한 수역에 포함시키는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선과 NLL 사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김정일의 제의에 노 전 대통령이 의기투합해버린 것”이라며 “마치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걸 인정해 독도를 한일 양국이 공동 소유하는 섬으로 만들자고 수용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도했다.

이렇듯 보수언론은 ‘NLL포기발언’ 프레임을 활용하며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등 여권에 불리했던 국면을 무마시켜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포기발언을 한 적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프레임의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해 ‘치졸한 정쟁’을 운운하며 또 다른 ‘종북 프레임’으로 이동하려는 꼼수가 조선 칼럼과 중앙 사설의 배경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조선과 중앙의 주장은 한겨레신문과 유사하지만 결이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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