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호 YTN 기자는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20분 쯤 걸려 도착한 곳은 도봉산에 위치한 주말 농장 텃밭이다. 육체노동을 하고 싶어 올해부터 농사를 시작했다. 잎을 하나하나 살펴 벌레를 잡아내고 친환경 비료를 뿌린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생각에 열심이다. 아들의 방 한구석은 어느덧 효소창고가 됐다. 최근에는 오미자 효소를 담갔다. 

조승호 기자는 “효소를 젓다 보면 잡념이 다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강태공이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렸듯이, 나는 효소를 저으며 시간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8일에는 강원도 철원에서 ‘YTN달리는 사람들’ 모임에 참가해 마라톤에 나섰다. 그는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끝이 기다리고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0월 9일로 해직 1829일 째를 맞는 조승호 기자의 일상이다.

현덕수 기자는 얼마 전 고향 제주도를 찾았다. 2년 만이었다. 그는 올레 길을 걷고 해변을 달리며 한바탕 뛰어놀았다. 고향을 찾은 아들 앞에서 어머니는 YTN사원들을 향해 “맡은 일 잘하고 우리 아들도 해결 잘 해주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현덕수 기자는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간디의 말을 곱씹으며 얼마 전 우장균 기자와 함께 한라산에 올랐다.

   
▲ 2008년 YTN 공정방송투쟁 당시의 모습. ⓒ이치열 기자
 
지난 6일로 YTN해직사태가 5년을 넘겼다.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선거특보출신이 낙하산으로 사장에 임명되며 시작된 싸움이었다. 명분도 있었고 국민적 지지도 있었고 조합원들도 똘똘 뭉쳐 있었다. 해직 당시에도, 노조위원장의 구속 당시에도,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다. 1심에서 전원복직 판결이 난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해직사태는 기약 없이 해를 넘겼고,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까지 왔다.

5년은 녹록치 않은 시간이었다. 권영희 YTN노조위원장은 “우리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해직사태 이후 입사한 후배기자들은 복직의 당위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침체된 조직분위기에서 그저 쉴 틈 없이 살고 있다. YTN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오히려 해직기자들이다. 기자들은 일상에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언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발자취는 언론운동의 이정표가 됐다.

YTN 밖에서 대안언론 참여로 투쟁 이어가는 기자들

정유신 기자는 5년째 출근하지 않는 아빠로 통했다. 징계무효소송 진행과정을 체크하고 큰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과 얼마 전 첫 돌이 지난 둘째의 예방접종을 챙기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첫째가 생겼을 때 ‘노종면·조승호·현덕수·우장균·정유신·권석재 전원 복직’이란 1심판결을 접했고, 둘째를 얻었을 때는 ‘노종면·조승호·현덕수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2심판결로 낙담해야 했다.

그랬던 그에게 새 명함이 생겼다. 정유신 기자는 지난 9월 30일부터 노조 전임자 파견 형식으로 <뉴스타파>에서 경제팀 선임기자로 발령 났다. 그는 “해가 바뀌는 동안 믿기지 않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이명박정부 언론암흑기의 반작용으로 탄생한 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의 일원이 될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유신 기자를 포함한 YTN 해직기자들은 대한민국 언론의 토양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 YTN 해직기자 6인. 왼쪽부터 조승호, 우장균, 현덕수, 노종면, 권석재, 정유신 기자.
 
권석재 기자는 <뉴스타파> 카메라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뉴스타파 탄생부터 지금까지 촬영을 책임지며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는 “YTN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지만 계속 참고 버텨야한다. 여기서 복직 할 때까지 끝까지 질기게 버티겠다”고 말했다. <뉴스타파>에는 공정방송투쟁 이후 YTN을 그만두고 이직한 최기훈 기자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2년간 한국기자협회장으로 활동하며 YTN 해직문제를 비롯해 각종 언론 자유 투쟁에 앞장섰던 우장균 기자는 지난 9월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장균 기자는 “나이 마흔이 넘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가장을 세 글자로 줄이면 ‘미친놈’이라 한다. 마흔 다섯에 해직됐던 그 미친놈의 나이가 50이 됐다. 아내는 그 미친놈을 5년 가까이 보살펴주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노종면 기자는 YTN 언론인들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는 지난 5년 간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책임검증위원, <뉴스타파> 앵커를 거쳐 지금은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에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뉴스바>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언론을 만드는 영역에 들어섰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거짓과 왜곡이 판치는 언론으로부터 안전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불법사찰에 희생된 언론인들, 미디어 피폭지 순례로 공정방송 의미 되새겨

   
▲ YTN 해직사태 5년 일지. ⓒ미디어오늘
 
언론계는 YTN 해직언론인 사태를 이명박정부의 언론사 불법사찰 결과물로 보고 있다. YTN노조는 “YTN에 대한 사찰은 조직적·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며 사장 교체, 간부 인사 개입, 노조 탄압 등으로 YTN 장악이라는 사찰의 목적을 실현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노조는 지난 3월 5일 “민간인 불법사찰의 머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며 이 전 대통령에게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노종면 기자는 “불법사찰의 산물로 현재 배석규 경영진이 들어섰기 때문에 해직사태는 해결 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직사태가 장기화 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도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해직사태에 책임이 있는 배석규 사장은 여전히 사장이었다.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비춰질 때, 해직기자들은 1000리(400km)가 넘는 도보순례를 떠났다.

해직기자들은 지난 6월 10일부터 19일간 쌍용차 평택 공장(집단해고 투쟁), 삼성전자 온양공장(산업재해 투쟁), 제주 강정마을(해군기지 반대 투쟁), 울산 현대자동차 송전탑(비정규직 투쟁), 진주의료원(공공의료 투쟁) 등 ‘미디어 피폭지’를 찾아 ‘공정 방송’의 의미를 되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직기자들은 불안과 외로움을 떨쳐냈다. 마침내 종착지인 남대문 YTN사옥에 도착했을 때 정유신 기자는 “여태껏 가장 먼 출근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 지난 6월 YTN 해직기자들의 미디어피폭지 순례 당시 모습. ⓒYTN노조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투쟁을 시작했다. 지난 5일에는 해직5년을 맞아 시끌벅적한 기자회견 대신 ‘해직5년 넘어서기’란 이름의 조촐한 희망캠프를 다녀왔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이날은 눈물 대신 웃음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마음껏 떠들고 노래하고 웃었다. 이들은 굳이 입 밖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괜히 무겁게 정세토론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YTN노조는 해직사태 5년을 맞아 올린 성명에서 “노동조합은 이 ‘5년’을 회사 발전을 위한 큰 전환점으로 삼고자 한다. 해직 몇 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만으로 끝날 수는 없다. 5년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를 걷어내자”며 전 사원에게 해직자문제 해결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 YTN노사는 현재 비공식적으로 해직자 문제를 논의 중인 상황이다. YTN 사측 관계자는 “앞날을 예단할 순 없지만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종면 해직기자 “앞으로도 상당 시간 걸리겠지만 견딜 수 있다”

해직기자들의 복직여부를 결정할 징계무효소송은 2년째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법적 판결 이전에 노사가 내부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YTN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는 것이 중론이다. 내부에서 앙금을 정리하고 화합의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설령 법적 강제로 복직이 된다 해도 오래된 불신의 벽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해직사태를 만든 구본홍 전 YTN사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1심결과가 YTN정상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며 “해직문제는 법원판결 이전에 대화와 화합으로 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영희 YTN노조위원장 역시 “해직자 복직과 보도공정성 회복이 별개의 사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YTN이 이전의 ‘명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복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직기자들은 ‘복직’ 자체보다 더 큰 것을 기다리고 있다. 노종면 기자는 “우리는 막연하게 ‘YTN으로 돌아가겠다’ 이전에, 언론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의미에서의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YTN으로 복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5년의 세월을 정당한 언론자유 투쟁으로 인정받고 이들의 투쟁이 새로운 언론자유의 씨앗이 되어 YTN에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 지난 6일 1박2일로 진행된 YTN '해직5년 넘어서기' 희망캠프 모습. ⓒYTN노조
 
노종면 기자는 “5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해직기자가 복직됐으면 좋겠다는 게 당연한 생각일수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YTN기자들은 보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는 본질적으로 공정방송을 놓고 이뤄졌던 일”이라며 “기자들이 지금보다 분투해야 한다. 그만큼 YTN 뉴스가 망가졌다”고 우려했다.

YTN은 지난 5년간 불공정성 논란이 반복되며 시청자들이 떠나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mS가 발표한 2013년 상반기 시청률 결산(전국 유료매체 가입·비가입 가구 24시간 기준)결과 올해 0.58%로 지난해보다 하락해 종편 4사에 밀린 10위에 그쳤다. 2012년 YTN의 영업이익도 119억 5천만 원으로 2011년 184억여 원보다 감소했다. 올해 역시 적자를 기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상암동으로 사옥을 이전하는 2014년 초에는 반드시 사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해직기자들이 경영진의 바람대로 고개를 숙일 것 같지는 않다. 노종면 기자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견딜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5년이 흘렀어도 언론인으로서의 원칙은 떳떳하게 지켜내겠다는 다짐이다. 해직기자들은 YTN 바깥에 있지만 언론인으로서 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심장은 여전히 힘차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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