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과 일부 언론사들이 지난 26일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의 성적 조작 사건과 관련한 영훈국제중학교 공판 기사를 보도했다가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 홍보실이 언론사에 기사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영훈중 교사 ㅅ씨는 검찰이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에 지원한 이 부회장 아들의 주관적 영역 점수(자기개발서 등 평가)를 만점으로 고친 뒤 응시자 성적 순위표를 당시 교감이던 김아무개씨에게 줬는데 김씨가 ‘그래도 합격권에 못 들었네’라고 말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예”라고 대답했다.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성적 조작 사실을 영훈중 교사가 인정한 것이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뉴스1은 공판 관련 소식을 보도했지만 이후 기사를 삭제했다. 연합뉴스는 26일 기사를 게재했지만 당일 밤에 삭제해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나온 상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 관계자는 “노사편집위원회에서 관련 문제를 제기해 사측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다음주 이를 공개해 기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홈페이지
 
뉴시스는 당일 관련 내용의 기사(<'이재용 아들 합격권 점수에 들지 못했다' 영훈중 교사, 법정서 증언>)를 최초 보도했지만 2시간 만에 기사를 삭제했다. 이에 대해 막내 기수인 12기 기자들은 사측에 기사 삭제 경위에 대한 설명과 재발 방지 그리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2기 기자들은 기사 삭제 과정에서 해당 취재 기사에게 통보도 없이 삭제한 점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언론사 홈페이지에서는 뉴시스 기사를 검색할 수 있다. 조선일보와 JTBC는 뉴시스 기사를 전재하고 있다. 한겨레는 관련 소식을 28일자 9면 기사 <"이재용 부회장 아들 성적 고쳐줬다">에서 전하며 뉴시스 기사를 인용한다고 밝혔다. 
 
뉴시스는 민주당 박혜자 최고위원이 “영훈중과 이 부회장 사이 커넥션이 밝혀져야 한다”고 발언한 내용의 30일자 기사 <박혜자 “이재용 아들 성적조작 의혹, 영훈중과의 커넥션 밝혀야”>까지 삭제한 상태다. 
 
   
▲ 뉴시스 네이버 화면
 
뉴스1 역시 영훈중 교사가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성적을 조작했다’는 진술을 주된 내용으로 한 기사를 작성했지만 편집국 간부들이 기사 삭제로 의견을 모았고, 이를 취재 기자에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와 파이낸셜뉴스는 뉴스1 기사를 여전히 전재하고 있다. 
 
뉴스1은 기사를 삭제하는 대신 <"영훈중 성적조작 책임 숨진 교감에 떠넘기나">라는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영훈국제중학교 입학비리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2012년과 2013년 입학 성적 조작을 숨진 영훈국제중 교감 A씨(54)가 모두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뉴시스는 이런 기사 삭제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민수 편집국장은 “아직 재판 중인 사안이니 결과가 나오면 다시 확인하자는 차원이었으며, 이재용씨 아들이 부정입학을 했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라 중계방송 하듯 보도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편집국장은 12기 기자들의 요구와 관련해 기사 삭제 경위는 이미 설명했으며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기사 삭제 시 가급적이면 기자들과 협의를 거치겠다고 했다. 또한 취재기자에게 기사 삭제와 관련해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와 뉴스1는 기사 삭제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사회부장은 “삭제됐다고 들었으나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고, 뉴스1 사회부장은 “(영훈중 부정입학과 관련해)이미 유사한 기사를 많이 내보냈다. (삭제한 정확한 사유는)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다른 언론사들 역시 관련 기사를 삭제했다. 아시아경제 <영훈중 교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 성적 고쳐줬다”>, 노컷뉴스 <영훈중 교직원, “삼성전자 이재용 아들 성적 고쳐줬다”>, 세계일보 <영훈중 직원 “이재용 아들 성적 고쳐줘”>, 이투데이 <영훈국제中 관계자 "이재용 부회장 아들 성적 조작됐다"> 기사가 온라인 상에서 사라졌다. 
 
서울신문 <영훈국제中 직원 “이재용 아들 성적 고쳐줬다”>, 한국일보 <영훈국제中 직원 "이재용 아들 성적 고쳐줬다">, 국민일보 <영훈국제중 교직원 “이재용 아들 성적 고쳐줬다” >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아시아경제 사회부장은 두 차례의 통화에서 모두 “경위를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디지털뉴스 부장은 “당시 자리를 비워서 알지 못한다, 온라인 기사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고 했다. 나머지 언론사는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 한국일보 홈페이지
 
세계일보의 경우 관련 기사를 애초 지면에 반영할 계획이었지만, 확인한 결과 지면(5판)에 해당 기사는 빠졌다. 세계일보 편집국 관계자는 “2판까지는 있었는데 이후 빠진 것 같다”면서 “영훈중 공판 관련 내용은 한 두 번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여러 차례 나온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번 기사가 삭제되는 과정에서 삼성그룹 홍보실이 기사 삭제를 부탁하는 전화를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언론사 기자는 “삼성에서 우리 언론사의 취재기자를 비롯해 해당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면서 “그룹 혹은 오너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면 이런 작업들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언론사 관계자도 “삼성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홍보실 측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언론사 가운데 통신사를 담당하는 정재웅 부장은 “통신사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를 담당하는 박효상 부장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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