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불방논란 끝에 방송된 KBS <추적60분> ‘서울시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제재당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공적심의기관인 방심위가 부당한 심의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추적60분>의 경우 제재 근거가 ‘재판 중인 사건은 다루지 말라’는 논리여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방심위 산하 보도교양특위는 지난 9월 24일 회의에서 위원 9명 가운데 5명이 법정제재를 주장했다. 이들은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등의 심의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제재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법정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심위 전체회의 자리에서도 위와 비슷한 주장이 과반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성 논란의 경우 다툴 소지가 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란 이유로 방송제재를 논의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언론계 공통된 지적이다. 박건식 MBC PD협회장(전 PD)은 “이런 논리라면 우리나라에서 방송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다”며 “언론보도로 재판결과가 좌지우지 될 것이란 판단 또한 법률 전문가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박건식 회장은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빌미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경우에는 형사사법시스템의 기능장애를 가져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입증 등 구체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심의규정 제11조가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거나 탄압하는 기제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 노조위원장(왼쪽) 등 KBS본부 관계자 및 언론인들과 언론단체 인사들이 2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 위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KBS '추적60분'에 대한 심의를 비판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김효진 KBS <추적60분> PD는 “국정원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매도해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법원의 1심판결을 보도하자 국정원의 신뢰를 훼손하고 최종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막힌 논리를 마주했다”며 “우리가 국정원의 체면까지 생각해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김 PD는 “제작진은 말이 안 되는 지적을 두고 말이 되게끔 반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경신 방심위 심의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11조 조항을 두고 “영국과 미국의 배심재판에서 배심원에게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정재판 차원에서 등장한 조항인데 이번 사례의 경우 영미식 국민참여재판이 아니어서 방송이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은 사법부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위원은 “인터넷 심의의 경우 오히려 재판중인 사안에 대해 심의를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며 MBC '광우병' 편에 대해 검찰과 정부측이 주요 근거로 심의결과를 이용한 점을 들어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방송이 아니라 오히려 심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11조 조항의 삭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방심위에 대한 비판을 요약하면 무리한 과잉·표적 심의에 따른 제재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22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14조(객관성) 위반으로 권고조치를 낸 MBC <무릎팍 도사> ‘안철수’ 편(2009년 6월 17일 방송) 심의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윤성옥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만약 연예인이 군대 갔을 때를 추억하거나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과장된 내용을 소개했어도 이렇듯 엄격하게 적용했을까”라며 ‘안철수’ 편에 대한 제재를 두고 “지엽말단적인 내용에 대한 제재였으며, 정치심의가 예능으로 확장 된 결과였다”고 지적했다.

윤성옥 교수는 “연예오락이라고 사실관계를 잘못 다뤄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방송심의가 정치적 표현물을 중점적으로 심의하고 있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의 방심위 구조에선 이 같은 논란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박경신 방심위 심의위원은 “심의위원 아홉 명의 편견이 모여 제재를 결정하는 방심위 심의 구조 자체에 회의적”이라며 자율규제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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