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위댄스 얘기를 하자면 이들의 라이브 콘서트 얘기를 먼저 해야 한다. 기타를 치는 위기나 노래를 하는 위보의 퍼포먼스가 그만큼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허름하다 못해 패션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은 옷차림으로 등장하는 두 사람은 공연이 시작되면 접신한 듯 달라진다. 위보는 흉내낼 수 없는 엉거주춤한 춤을 마구 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위기는 긴 머리칼을 흔들어대며 기타를 치다가 그 머리칼이 얼굴을 덮어버린 채로 연주를 계속한다.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듯한 계획되지 않은 퍼포먼스는 음악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최근 첫 번째 정규 앨범 [Produce Unfixed Vol.1]을 발표한 밴드 위댄스는 사실 이 앨범 이전에도 벌써 10장의 CD와 카세트 테잎에 나누어 담은 [언픽스드(Unfixed)] 시리즈를 꾸준히 발표한 바 있다. 음반을 구입한 이들은 데모라고 생각했지만 위댄스 본인들은 정규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하니 이 앨범을 11번째 음반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앨범은 그동안 위댄스의 음악을 공연장이나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서밖에 만날 수 없었던 이들에게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위댄스 앨범 표지
 
그러나 이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정규 앨범이라는 것만이 아니다. 이 앨범을 만들면서 위댄스는 그간 사용했던 일렉트로닉 드럼 비트를 버리고, 드러머 김간지의 실연을 채워 넣었다.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은 피기비츠 박열과 위댄스의 선택이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이들이 이미 발표했던 곡들을 다시 편곡하고 다시 연주한 버전이다. 아홉 곡의 노래를 담은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위댄스 음악의 확실한 차이와 개성이다. 이들의 음악은 보통 사람들의 미감에 익숙한 사운드와는 많이 다른 음악이다. 일렉트로닉이라고 해도 좋고, 록이라고 해도 좋을 음악을 끌고 가는 것은 보컬과 비트, 그리고 거친 기타 연주와 노이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위보의 보컬은 훈련되지 않은 목소리이다. 어눌하게 가사를 또박또박 발음하면서도 쌩소리를 질러대는 그녀의 목소리는 포크의 질감과 펑크의 질감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고 진솔하면서도 키치적이고 위악적이며 코믹한 질감까지 함께 만들어낸다. 흡사 삐삐밴드의 이윤정과도 흡사한 느낌이다.

그리고 위기가 연주하는 일렉트릭 기타는 일관되지 않는, 계속 좌충우돌하는 방식으로 보컬과의 부딪치고 곡의 흐름과 부딪치며 음악을 끌고 간다. 대개의 록 기타가 리프와 멜로디를 중심으로 짜임새 있게 구현되는데 반해 위기는 그냥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테마를 그 때 그 때 마음대로 연주하는 듯한 자유분방함과 노이즈의 사용으로 곡의 테마와 사운드 스케이프를 확장하고 균일하지 않은 혼돈 속으로 듣는 이들을 이끈다. 보컬과 일렉트로닉 기타 자체에 기본적으로 스며 있는 공간감에 이 둘의 사운드가 충돌하면서 더 크게 확대되는 공간감과 이질감이 위댄스 음악의 개성을 만든다.

   
위댄스
 
   
위댄스
 
그리고 여기에 김간지의 드러밍이 지속적이며 독립적으로 구축하는 비트 역시 공간감과 이질감을 배가시키면서 경쾌함을 더하는 결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위댄스의 음악을 들으면 어설프면서도 신나고 중독적이어서 자꾸만 그들의 음악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통일되지 않은 사운드가 산발처럼 풀어 헤치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곡 속에 함께 담겨지면서 억세고, 자유롭고, 키치적이고, 간절하고, 경쾌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들의 앨범 부클릿 아트웍처럼 대충 휙휙 그려놓은 것 같은 그림임에도 의도적인 투박함과 백치미가 엄연히 존재하듯 이들의 음악에서도 거칠고 투박한 매력과 개성적인 재미를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운드의 혼돈과 모호함은 노랫말의 일관되지 않고 분명하지 않은 서사와도 일맥상통하며 겹쳐진다. 흡사 열정은 넘치지만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곳을 찾지 못한 세대의 자화상 같은 느낌도 감지되는 음악이고, 간절함과 무의미함을 동시에 재현함으로써 권태로움과 코믹함과 뜨거움을 함께 느끼게 되는 양면적이고 복잡한 음악이다.

   
위댄스
 
이런 음악을 들으면 동시대 대중음악의 바운더리가 얼마나 넓은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정서적으로 금세 익숙해질 수 있는 음악은 아니지만 분명 정교한 기술력과 연출력으로 만들어내는 음악과는 다른 지점에서의 즐거움이 있는 음악이다. 이런 음악을 반드시 모든 사람이 듣고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디 감성이니, 저주받은 걸작이니 하는 프레임의 구별 짓기보다 다양한 감성과 사운드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된다. 인디라는 것이 담장이 되어서도, 훈장이 되어서도 곤란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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