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KBS노조)이 26일 새벽 5시부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임금인상 등이 주된 요구입니다. 26일 오전 KBS노조는 “파업 참가 인원이 2500여 명이고 일부에서 방송차질이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론이 마냥 따뜻하진 않습니다. 공영방송에서 그것도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제1노조가 주축이 되어 파업에 돌입했는데 여론의 주목도가 떨어집니다. KBS 제2노조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김현석·KBS본부)는 이번 파업에 사실상 불참했습니다. KBS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지만 뉴스와 프로그램은 거의 정상적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사측도 노조 파업에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진 않습니다. 
 
쉽게 말해 KBS노조 파업이 여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이 같은 조짐은 이미 파업에 돌입하기 전부터 일정 부분 예견됐던 일입니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열린 전국조합원 총회에는 4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했습니다. 1000여 명 정도의 조합원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던 기대치는 빗나갔습니다. 
 
   
KBS노조는 2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전국조합원총회를 열고 26일부터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KBS노조
 
파업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추는 아나운서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KBS 아나운서들이 대부분 KBS노조 조합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파업이 갖는 파급력이 상당히 클 수도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지금, KBS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업에 참여하는 아나운서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KBS 관계자는 “일부 아나운서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방송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면서 “만약 노조가 파업동참이라는 압박을 가하면 노조 탈퇴를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노조 소속 조합원인 아나운서들이 노조 파업에 동참하지 않으려 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찜찜한 면’이 있습니다. 지난해 KBS본부가 김인규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95일간 총파업 투쟁을 벌일 때 파업에 참여했던 아나운서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KBS본부 소속 아나운서들은 한동안 프로그램을 맡지 못했습니다. 이번 KBS노조 파업에 아나운서들이 참여를 주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KBS노조 파업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부인할 순 없습니다. 그것은 KBS노조가 파업으로 내세운 명분이 그동안 노조가 보인 행보와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 KBS 기자는 “솔직히 말해 김인규 전 사장 때부터 지금까지 편파보도나 프로그램 공정성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으며 사측에 문제제기 했던 것은 KBS본부 노조였다”면서 “이 과정에서 ‘제1노조’의 존재감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PD는 “솔직히 KBS노조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찬반 투표를 벌였을 때 의외였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KBS뉴스나 프로그램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한 것은 KBS노조가 아니라 KBS본부였다는 얘기입니다. 
 
   
KBS노조 조합원들과 사측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보도본부 3층에서 대치하고 있다. ⓒ KBS노조
 
KBS노조로선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겁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KBS뉴스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나름 노력해 온 측면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구성원들이 이번 KBS노조 파업을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게 뭐냐구요?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는 KBS본부와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KBS노조는 ‘나름’ 방송 공정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얘기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좀 다릅니다. KBS의 공정성 확보와 지배구조 개선 등과 같은 사회적 의제에서 KBS본부가 주도적으로 의제설정을 해오자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작동했고 그것이 결국 이번 파업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죠. 
 
솔직히 말해, 김인규 전 사장과 길환영 사장 체제에서 KBS본부는 경영진과 ‘각’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대립한 반면 KBS노조는 상대적으로 활동이 미미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조합원 수에 있어선 KBS노조가 많긴 하지만 그만큼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평가에 KBS노조가 동의 못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이번 노조 파업에 ‘냉랭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는 겁니다. 
 
임금인상 부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외부에선 KBS노조 파업의 결정적 계기가 ‘임금인상’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명분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내걸었지만 속내는 ‘임금인상’ 아니냐는 거죠. 공영방송사에서 최대 조직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지만 다른 언론에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지어 ‘적당한 시기를 봐서 파업을 접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KBS인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KBS노조 파업이 ‘여론의 관심’을 받기엔 부정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KBS측은 ‘파업 여파는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도 생각만큼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노조 파업을 바라보는 외부시선도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습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내걸었기 때문에 파업을 접기 위해선 정치권이 ‘화답’을 해줘야 하지만 요즘 정치권 움직임을 보면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각에선 이번 파업이 KBS노조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 난관을 KBS노조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그건 KBS노조의 몫이겠지요. 다만 KBS노조 파업이 여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집행부가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 ‘괴리감’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이번 노조 파업 또한 승리로 귀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