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이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40여 페이지 분량의 정정보도청구 소장은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Y씨와 혼외 관계를 유지한 사실도 없고, 따라서 Y씨와의 사이에 아들을 얻은 사실이 결코 없다.’ ‘조선일보는 보도 내용의 근거로 소수의 전언만을 제시할 뿐, 보도내용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24일 소장 전문을 확인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측은 ‘혼외아들 논란’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인만큼 소장 곳곳에서 반박과 해명에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채 총장 측은 △언론보도의 기본원칙 위반 △매체 영향력에 비해 허술한 취재와 근거자료 △장자연·김학의 사건 당시와는 다른 이중적 보도태도 △기사에 등장한 ‘혼외자식’ 근거가 오히려 ‘혼외자식이 아닌 근거’라는 점 등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조선일보 ‘혼외아들’ 보도의 저널리즘적 부당성을 강조했다.

채 총장 측은 소장에서 “조선일보 보도시점은 검찰총장의 지휘아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 ‘원전 비리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 사건’,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 등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건들의 수사와 공소유지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한 뒤, 말미에서 “원고(채동욱)에게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이 사건 보도를 해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원고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무리한 보도와 보도시점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 24일 채동욱 검찰총장 측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 소장.
 
채 총장 측은 “조선일보는 ‘정론직필’을 표방하면서 풍문 혹은 전언을 확인된 사실로 보도하지 않는 사풍으로 유명한 언론사”라고 운을 뗀 뒤 “보도의 파급력을 고려해 (혼외자식 보도는)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신중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었다”며 “언론보도를 하는 경우 어떠한 사실을 알게 되거나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명백히 규명될 때까지는 실명 보도를 자제하고 공직자의 경우에도 사생활 문제가 직무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이슈가 아닌 한 원칙적으로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이라고 조선일보 보도를 비판했다.

소장은 장자연 사건을 다룬 2009년 4월 12일자 조선일보 칼럼 <조선일보의 명예와 도덕성의 문제> 중에서 “입증되지 않은 주장만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언론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 명백히 규명될 때까지 우리 모두는 실명 보도를 자제하는 언론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분을 인용했다.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의 친자확인소송 관련 칼럼인 2009년 11월 19일자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 내용 가운데 “우리가 관심을 가질 것은 사생활의 문제가 A장관의 직무에 영향을 미칠 공적 이슈냐 하는 점이다. 공직자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다”고 주장한 부분을 인용했다. 과거 조선일보 보도와 현재 조선일보 보도를 대조시키며 이중적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채 총장 측은 “혼외관계나 혼외자 같은 스캔들 기사는 나중에 보도가 허위로 밝혀져도 그로 인한 피해가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고 우려하며 영국 BBC 사장이 특정 정치인을 아동성범죄자라고 보도한 것이 오보로 드러나자 이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 9월 6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채 총장측은 조선일보가 기사를 통해 ‘혼외자식’의 근거로 제시했던 △채 총장 지인이 채 총장과 Y씨가 잘 아는 관계였다고 말한 사실 △해당 아동(채 모군)이 다녔던 학교 교직원이 어떤 기록에서 해당 아동의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으로 기재된 것을 봤다고 기자에게 말한 사실 △친구들이 해당 아동으로부터 아빠가 검찰총장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채 총장과 Y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원고가 오랜 공직생활 동안 청렴하고 자기관리를 잘해왔다는 평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상식적으로 만일 원고가 Y씨와 혼외 관계에서 혼외자를 낳았다면 후배 검사들과 함께 위 레스토랑을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Y씨와는 손님과 업주 외의 특별한 관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학교 기록에 채 총장의 이름이 기재됐다는 사실에 대해선 “해당 아동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9년 무렵 원고는 고등검사장으로 승진하던 때였다. 만일 해당 아동이 실제 원고의 혼외자라면 원고 입장에선 인사 상 가장 민감한 시기에 혼외자의 학교 기록에 굳이 자신의 이름을 기재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Y씨의 자녀가 다닌 초등학교는 법조인들의 자녀가 특히 많은 것으로 알려진 서초구의 유명 사립학교”라며 “자신의 혼외자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위 사립학교에 입학시키는 일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했다.

아빠가 검찰총장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는 친구들의 전언에 대해서도 채 총장 측은 “조선일보 주장에 의하면 해당 아동이 아버지 자랑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그러한 내용을 11세에 불과한 어린 친구들만 알고 학교 관계자들은 전혀 몰랐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한 뒤 “설사 해당 아동의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더라도 그 사실이 해당 아동이 원고의 혼외자라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 채동욱 검찰총장.
ⓒ연합뉴스
 
채 총장측은 이처럼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의 근거로 내세웠던 내용들이 역으로 채 총장의 혼외자식이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피고 조선일보가 스스로 경계해왔던 추론의 함정에 빠져 사실 확인을 소흘히 한 나머지 허위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아동이 원고의 혼외자라는 점에 대해 아무런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채 총장 측은 “원고가 Y씨와 실제로 10여 년 간 혼외 관계를 지속했다면 이와 관련해 상당한 자료가 축적되고 손쉽게 확인될 수 있을 것임에도 지금까지 별다른 정황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점도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 조선일보 지면에 게재된 <실명 올리고 엉뚱한 사진에 인신공격…‘채 총장 혼외 아들’ 신상털기 도 넘었다> 기사에 대해서는 “Y씨와 그의 아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조선일보의 무분별한 보도 때문이었음에도 피고는 스스로의 책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위와 같은 책임회피성 기사를 게재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소장이 접수되자 24일 입장을 내고 “앞으로 법원에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증거보전 절차를 밟을 것이다. 만약 진위 규명이 늦어질 경우 관련 당사자들의 유전자 감정을 위한 증거보전 신청을 포함, 관련 법절차에 따라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공식적인 입장과 달리 조선일보 기자들 사이에서는 검찰총장을 겨냥했던 기사치고는 결정적 증거도 없고 취재도 부족했던 점을 들어 무리한 보도였다는 우려가 있으며 ‘혼외자식’ 보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강효상 편집국장과 정권현 특별취재부장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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