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송해 할아버지의 주옥같은 이 한마디는 종교에 가깝다. 대기업이 잘되면 모두가 잘 산다는 ‘낙수효과’(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IMF 이후 한국 사회에서 현실성을 잃었다. 대신 그 자리엔 ‘지하수 펌핑 효과’(부의 원천인 아랫물이 갈수록 위로 뽑혀 올라가는 현상)가 자리 잡았다. ‘있는 놈은 점점 잘 살고, 없는 놈은 점점 못 산다’고 했던가. 참말이다.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바람과 달리 스스로를 배신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빚이 늘고, 행복을 쫓지만 결핍을 맛본다. 학교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강수돌 교수와 취재현장에서 한국경제를 마주한 이정환 기자는 이 같은 ‘배신의 매카니즘’을 분석하며 ‘행복의 조건’을 제시한다.
강수돌 교수는 현 사회를 ‘죽음의 경제’로 규정하고 죽음의 경제가 이뤄지는 조건으로 △공동체와 개인의 분리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분리 △구상과 실행의 분리(구상은 경영자, 실행은 노동자) △삶터와 일터의 분리 △자연과 인간의 분리 △생산과 소비의 분리 △내면과 외면의 분리를 꼽는다.
강 교수는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은 포기한 채 그 속에서 더 나은 한 자리만 차지하려 하면서 자본주의를 내면화 한 결과, 삶이 핵심이고 돈은 수단에 불과한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나는 진정 행복한가’와 같은 자기질문을 던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정상시민’은 “공부중독으로 출발해 일중독, 나아가 소비중독의 세계에 체계적으로 편입됐다.”(강수돌)
저자는 이처럼 세상의 날 것을 드러내며 충고한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우리의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주입된 욕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비로소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던 속박과 힘겨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제도적인 변화로 설명할 수 없는 ‘주체의 해방’을 의미한다.
강수돌 교수는 “우리는 여태껏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에게 값어치 높게 평가받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켰다”고 말한다. 종일노동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과잉 속에 심신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살아내기 위해 ‘자기파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자본의 무한탐욕에 일회용 부품처럼 쓰이다 버려지고 있다. 굳이 마르크스의 <자본론> 따위를 읽지 않아도 하루하루 임금노동자로, ‘을’로서 살다보면 깨치게 되는 현실이다. 행복할 순 없을까. 저자는 자기 파업을 통해 우리 자신을 민주화하여 잃어버린 인간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등을 주장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율적 공동체도 주요한 대안으로 내놓는다.
한국 경제의 배신 / 강수돌·이정환 지음 / 굿모닝미디어 펴냄 | ||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강 교수와 이 기자는 입을 모아 “근본적으로 노동사회를 벗어나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루족 말 중에 ‘우분투’(ubunte)라는 단어가 있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다’는 뜻이다. 꿈은 함께 나눠야 현실이 된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며 소외에서 벗어나는 것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뿌리 내릴 수 있다.
저자들은 하루하루 생존으로 지쳐 상상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이유’와 ‘행복을 위한 방법’들을 대담을 통한 거시적 경제 분석과 함께 쉽게 풀어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배신감을 느낀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