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경제지들이 연일 상법 개정안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개정안 수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 민주화 공약이 껍데기만 남게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보수·경제지들은 특히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발하고 있다. 전자신문은 9일 “지배구조 유연성과 탄력성을 상실, 오너 경영의 장점을 살릴 수 없을 뿐 아니라 해외 헤지펀드 등 국제투기자본과 불필요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7일 사설에서 “사법인 상법으로 기업 지배구조까지 획일화시키는 것은 무리”라면서 “소액주주보다 외국 헤지펀드들이 더 환영할 일”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매일경제도 26일 사설에서 “적대적 세력이나 외국계 펀드에 의해 경영권이 농락당함으로써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국부 유출로 이어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경제도 6일 사설에서 “기업 경영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많은 기업을 외국계 펀드나 투기자본 등에 고스란히 넘겨줘야 할 판이다”고 비판했다.

   
▲ 중앙일보 8월 27일일자 사설
 
   
▲ 한국경제 8월 6일자 사설
 

그러나 장흥배 참여연대 시민경제위 간사는 “이사와 감사를 일괄 선출하는 시스템에서는 지분대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당연히 최대주주 내지 특수관계인(친족, 2세 등)이 원하는 사람대로 감사위원을 뽑을 가능성이 높다”며 “분리선출을 제도화하면 소액주주들도 감사위원을 한 명 정도 선출한 권리가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뽑기 위한 취지다. 2009년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랜들리 기조에 따라 폐지된 뒤 이사와 감사를 일괄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계 논리대로라면 2009년 이전에 분리선출을 하던 시기에는 주식회사 제도가 있을 수 없다”며 “한 번 입에 넣었으니까 절대로 뺏길 수 없다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분리선출 방식 때문에 국제투기자본이 이사회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재계에 대해서도 ‘오버한다’는 반응이 많다.

경제개혁연대에서 활동하는 채이배 회계사는 “외국계 펀드건 국내 펀드건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M&A 펀드는 없다”면서 “대부분 일시적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시세차익을 노리거나 배당수익을 노리는 뮤추얼 펀드(회사형 투자 신탁 가운데 개방형 펀드)들”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미래에셋이 삼성전자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채 회계사는 “간혹 이사회나 감사에 한두 명을 선임시켜 주주권을 행사하려는 펀드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분을 투자한 회사에 주주로서 이 정도도 못하게 한다면 주주 입장에서는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돈만 투자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투자의 기본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채 회계사는 “주주가 적극적으로 한두 명의 이사나 감사를 선임하는 것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거라고 한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결국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교수도 “돈을 투자해 주주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주주권을 행사한다는데 국제 투기자본이라서 못하게 하려면 아예 회사 주식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며 “재계의 반대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윤천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 조사역은 “실질적으로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에 지분 3% 이상을 가질 정도라면 소액주주가 아니라 외국계펀드”라며 “분리 선출로 이사회에 외국계 투기자본이 들어오면 2006년 KT&G 사태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KT&G사태란 기업 사냥꾼이라 불리는 칼 아이칸이 1년 만에 KT&G의 배당과 주가차액으로 1400억 가량의 이익을 올린 후 철수한 사건이다.

정 조사역은 “회사의 지배구조는 기업이 자율에 맡기면 어련히 잘 할 건데 (정부에서) 자꾸 강제화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경영권이 가장 중요한데 헌법에 나온 대로 주주권 침해는 재산권 침해”라고 밝혔다.

정 조사역은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도 “집중투표제를 하는 나라는 세 군데 밖에 없다”면서 “미국과 일본에서도 집중투표제를 실시하다가 경영자 간의 갈등이 발생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니까 폐지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집중투표제로 소액주주가 이사회로 진출한다고 해서 대주주의 영향력에 큰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다”며 “끽해야 이사 한 명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결정 자체를 흔들 수 없다”고 밝혔다. 홍 소장은 “재계에서 두려워하는 건 오히려 그 이사가 민감한 정보를 빼낼까봐, 그래서 (구조가) 투명해질까봐인 것 같다”면서 “그렇게 계속 투명하지 못한 구조로 가면 결국 나중엔 회사가 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성인 교수도 “보통 10명 내외인 이사회에 (소액주주들이 원하는) 이사를 한 명 넣는다고 경영에 유연성과 탄력성이 없어진다면 그 회사가 대단히 취약한 회사”라고 말했다.

장흥배 간사도 “원래 회사 원리에 반하는 것이지만 서구에서도 이 제도가 허용되는 건 현재 경영진과 최대주주에만 의결권이 지분대로 보장할 경우에는 내부에서 견제와 감시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야 내부에서 견제와 감시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 9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련,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민변민생경제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 발표와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후퇴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제공
 
 
   
▲ 9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련,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민변민생경제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 발표와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후퇴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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