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베트남에서 한복·아오자이 패션쇼 무대에 올라 워킹 한 것을 두고 언론이 홍보 일색이다. 이날 종합일간지 지면은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박 대통령의 한복 ‘자태’를 드러내며 의미부여를 하기 바빴다. 기자들이 대통령의 해외일정을 따라다니며 발표저널리즘에 몰두하고 있는 결과다.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은 은박으로 치장한 미색 저고리, 연한 개나리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러곤 런웨이를 10m 가량 걷는 깜짝 워킹을 선보였다. 한복을 입은 박 대통령이 걸어 나오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나왔다”고 묘사하며 “박 대통령은 평소 ‘한복은 우리 문화유산의 정수’라고 얘기해온 한복 예찬론자다. 박 대통령 해외순방에는 한복이 필수 아이템”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조선일보도 “박근혜 대통령이 패션쇼에서 한복모델로 데뷔했다. 은박이 박힌 미색 저고리, 연노란색 치마를 입은 박 대통령은 패션쇼 말미 양옆으로 늘어선 모델들 사이로 등장, 10m 정도 워킹을 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경제 넘어 문화까지…朴 대통령 ‘동행’을 역설하다>란 제목과 ‘우아한 한복 자태 뽐내’를 부제로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 중앙일보 1면 기사.
 
   
▲ 동아일보 1면 사진기사.
 
한겨레신문은 “박 대통령이 한복차림으로 깜짝 워킹을 선보이는 등 한·베트남 양국의 화합과 교류 분위기를 북돋웠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박 대통령은 베트남뿐 아니라 외국 방문 때마다 문화외교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고도 전했다. 경향신문도 “박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순방 때에도 한국 문화를 알리는 소재로 한복을 활용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패션쇼 한복 워킹’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이 패션쇼에 등장하는 것이 이례적이기 때문에 보도가치도 높다. 하지만 이번 순방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태도에는 대통령의 일정을 전하는 것 이상의 목적이 없어 보인다. 단지 대통령의 일정 중 기사거리를 포장해 나열하는 수준이다.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은 박물관 파빌리온 홀에 전시된 황금 공작새 시계, 렘브란트의 그림을 감상하며 미술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60번 째 생일인 지난 7일 하노이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환갑 축하를 받았다. 박 대통령도 수행원들과 함께 윤 장관 환갑 축하 노래를 불렀다”고 전하기도 했다.

   
▲ 국민일보 6면 기사.
 
언론은 ‘동정보도’를 넘어 박 대통령의 ‘문화외교’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바빴다. 서울신문은 “박 대통령의 문화외교는 G20 정상회의 폐막 후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방문으로 연결됐고, 지난 6월 중국 방문 당시에도 시안의 병마용을 찾아 중국 문화의 애호가로서 중국인들에게 각인되는 효과를 거둔 바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어느 언론도 ‘문화외교’에 대해 제대로 정의하지 않았다. 한복을 입고 외국인들 앞에 서는 것이 왜 문화외교인가. 이를 두고 한 누리꾼은 “독일 메르켈 총리가 해외 순방 때마다 독일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다면 우리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라고 적었다. 공식 외교행사에서 한복을 애용하는 것은 다각도로 바라봐야 함에도, 언론은 칭찬하기 바쁘다.

동아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은) 베트남인의 마음을 얻는 행보를 할 예정이다. 이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월남전 파병에 대한 마음의 빚도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순방에 대한 해석도 천편일률적이었다. 조선일보는 한국이 100억달러 규모의 원전 2기에 대한 사업권 획득을 추진 중이라고 전하며 “원전 건설협력이 구체화되면 양국 경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라는 박 대통령 발언을 전했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가 막이 올랐다. 3대 핵심 에너지 사업 수주에 어느 정도 진척을 이뤄낼지가 큰 관심”이라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사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뉘앙스였다.

더욱이 다수 언론은 후쿠시마 원전 파괴 사태 이후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며 원전의 안전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해 온 것과 달리 해외에서 원전개발 사업권을 따내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에 대해선 비판의식을 전달하지 못했다. 원전의 위험성은 경고하면서 한국정부가 해외에 원전을 건설하려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세일즈’ 외교라는 표현도 문제의식을 갖기 충분하다. 그런데 베트남에 있는 기자들은 한복 쇼에 정신이 팔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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