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황금의 제국> 시청자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긴박감이 넘쳐 집중하거나, 너무 어렵고 무겁다며 채널을 돌린다. 그 흔한 멜로도, 액션도 없다. 오직 성진그룹 회장이 되는 것만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유일한 욕망이다. 회장이 되기 위해 또는 회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굳은 얼굴로 상대를 노려보며 밥상머리에서 던지는 숱한 독설과 냉소, 그러다 눈치 보며 아첨하고 편 가르는 게 이 드라마의 유일한 서사다.

<황금의 제국>은 집요하게 재벌가를 지옥으로 묘사한다. 욕망의 지옥이다. 지옥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다. 상위 1%, 태어날 때부터 서민이 평생 벌어도 못 벌 수준의 주식을 보유한 이들도 지옥에 남아있는 건 마찬가지다. 명색이 ‘제국’이라고 하지만 최서윤(이요원 분) 일가가 사는 집과 성진그룹 본사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제국의 전부다. 제작진은 답답할 정도로 집과 사무실만 보여준다. 최서윤도 우리처럼 쳇바퀴 인생은 매한가지다.

장태주(고수 분)는 성진그룹 회장으로 상징되는 ‘자본 욕망의 끝’을 향해 행복을 유예한다. 하지만 그가 설령 회장이 되어도 욕망을 버리기 전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끝없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재벌도 살기 힘들다’가 이 드라마의 메시지일까.

치매로 경영권 경쟁에서 탈락한 한정희(김미숙 분)는 19회에서 증오의 대상이었던 최동성 일가 자식들에게 본인의 성진시멘트 주식을 나눠주는 것만이 ‘진정한 복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본주의사회는 ‘욕망의 자기증식’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은 끝없는 불만족에 고통스러워하다 생을 마감한다. 한정희는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이 같은 ‘진실’을 마주한다.

   
SBS <황금의 제국>. ⓒSBS
 
<황금의 제국>은 ‘자본의 디스토피아’를 인물 간 갈등으로 정교하게 그려낸다. 말 몇 마디가 오고가면 수백억짜리 계열사 지분이 오고가고 10억 달러가 인출되는 제국에선 신문·방송과 검찰을 쥐락펴락하고 국회의원이 선물을 받고 머리를 조아린다. 하지만 제국을 이끄는 주인공들은 유아적이다. 밥상에서 밥알을 겨우 넘기며 감정적인 멘트를 쉼 없이 날리며 자신의 위치를 상대에게 각인시키는 유치함을 반복한다. 이런 자들이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국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차이다.

제작진은 여기서 주인공들의 위치를 쉼 없이 바꾸며 인간성이 말살된 자본의 경쟁을 비춘다. 최근 몇 회만 봐도 최서윤 부회장 체제에서 장태주·최민재(손현주 분) 연합→한정희·최민재 연합→최서윤·장태주 연합→최민재 회장→최원재·장태주 연합→최서윤·최민재 연합 등 회장 자리를 둘러싸고 시청자도 정신없게 만드는 연합과 배신이 반복되고 있다. 각각 자본의 대리인인 이들은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다른 자본을 마주할 뿐이다.

인물간의 냉정한 경쟁관계는 자본주의의 ‘소외’를 드러낸다.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는 1844년 쓴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간을 상품으로 생산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비인간화된 존재로 생산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로 뒤덮인 세상은 점점 구조적으로 인간을 배제한다. 우리는 사람들 틈 속에서 살지만, 고독감을 느끼고, 재산수준으로 인생을 평가받는데 익숙해진다. <황금의 제국>에 등장하는 사장님 회장님들에게도 ‘소외’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17회에서 최민재의 아버지 최동진은 아들에게 욕망을 버리고 함평 농장으로 가자고 말한다. 형님이자 창업주인 최동성 성진그룹 회장의 죽음을 보며 최동진이 느낀 것은 ‘욕망의 덧없음’이다. 아무리 많은 자본을 갖고 있어도 욕망은 해소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고통스럽다. 최동진의 말처럼 “고구마 한 번 배부르게 먹어보자”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황금의 제국’을 이룬 황제(최동성)는 병실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다.

자본주의는 ‘욕망의 자기증식’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인간은 체제 속에서 상품으로 이끌려 다닌다. 모든 고통의 근원은 절제되지 않는 욕망이고, 주어진 욕망이다. <황금의 제국>은 매회가 끝날 때마다 우리에게 욕망의 제국에서 탈출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장태주·최서윤·최민재의 삶을 바라보는 시청자 역시 함평농장으로 내려갈 생각은 별로 없다. 우리는 모두 제국을 유지하는 제국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체제의 굴레를 드러내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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