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이 ‘내란음모’라는 국가정보원의 공안프레임을 그대로 따라가는데 급급해 보도의 ABC를 놓치고 있다. 33년 만에 등장한 내란음모죄 공안수사를 놓고 언론은 그 배경에 합리적 의심을 품기보다 국정원 익명의 관계자가 흘리는 내용을 열심히 보도하며 단독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관련기사= <쏟아지는 ‘내란음모’ 보도, 검증없는 국정원 확성기?>(관련기사= <수사 중인 이석기 ‘내란음모’, 언론에선 재판 ‘끝’>)

한국 언론의 보도태도는 지난 28일자 <뉴욕 타임스> 보도와 사뭇 비교된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정부의 내란음모죄 수사를 놓고 “국내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이미 충격을 준 국가정보기관이 다시 한국에 정치적 폭풍을 촉발시켰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정부가 국정원이 연루된 스캔들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마녀사냥에 기대고 있다”는 발언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는 한국의 독재자들이 정치적 반대자를 친북인사로 만드는 도구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국을 휘감고 있는 ‘내란음모’를 확대보도하는 다수의 한국 언론과 대조적으로, 한국현대사의 공안 사건이 갖는 이면에 주목한 것이다. 이처럼 해외언론이 이번 사건을 균형적이며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현재 한국 언론보도 사이에는 괴리감이 있다.

물론 한국 기자들 가운데에도 합리적 의심을 품고 있는 이들은 있다. 한 법조 출입 기자는 “더 갖고 있는 게 없다면 국정원의 국면전환용으로 의심이 된다. 지금 녹취록이 나오는 것만 봐도 국정원이 일부러 언론에 흘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는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 이석기 통합진보장 의원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진보당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를 마치고 의원회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회의실을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가 끝난 시점인 지난 26일부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첫 공판이 시작됐다. 정치권에선 여야 가릴 것 없이 국정원 개혁 요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국정원 입장에선 사회적으로 국정원의 존재감과 필요성을 드러내야 할 시점이었다. 앞서 국정원이 선거개입 의혹 국면을 벗어나고자 지난 6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전례를 떠올려보면, 국정원의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이 같은 배경을 놓치고 있다. 김용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장(<뉴스타파>대표, 전 KBS탐사보도팀장)은 현재 내란음모 보도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 내지는 국정원발로 많은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지금은 취재원들이 명확해야 한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대부분 추측 내지는 전언에 불과하다. 직접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임장혁 YTN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장(YTN 기자)은 “국정원이 순수하게 이 사건에 집중했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국정원 대선개입 사안이 묻히고 있다. 국정원은 최대한 내란음모 건을 확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국정원이 현 상황으로 가장 수혜를 입고 있는 이해당사자라는 지적이다. 임장혁 공추위원장은 그러나 “YTN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은 확인도 안 된 사실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법학박사인 심석태 SBS 기자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정원이 하필 지금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 이유가 뭔지 알 것”이라며 “국정원은 이번 사건 수사와는 별개로 댓글 등 정치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한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법절차에 따른 수사를 하지 않고 여론몰이에 기대서 적당히 눙치고 가려는 부분이 있다면 호된 역풍을 맞을 것”이라 지적했다.

   
▲ 한겨레 8월 29일자 1면.
 
그렇다면 현재 언론이 지켜야할 보도 원칙은 무엇일까. 변상욱 CBS 대기자(CBS 콘텐츠본부장)는 “국정원이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 반대쪽 정보는 사실 피의자라 할 수 있는 쪽에서 나오는 것뿐이다. 국정원 수사도 외부와 연결되지 않아 취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원칙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사건 현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상욱 CBS 대기자는 “국정원 주장만 받아쓴다면 언론인으로서 자기 책무를 못하는 것이다. 국정원이 내사를 시작했다고 밝힌 3년 전부터 지난 5월의 녹취 시점과 이후 상황들을 취재하며 관련자의 행적을 찾아내고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국정원과 다른 루트에서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취재내용을 모아 사실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용진 탐사저널리즘센터장은 “내사가 수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면 왜 하필 지금 시점에 국정원이 공개전환 했는지가 사건의 핵심이다. 언론은 이 사건의 여러 맥락을 짚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에 접근하는 취재를 위해 피의자 위치에 있는 통합진보당 측의 구체적으고 적극적인 해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심석태 SBS 기자는 “사건의 진위가 무엇인지, 언론에 보도된 녹취록 속의 발언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일반 국민들은 이 발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통합진보당의 진솔한 해명이 필요하다. 과거 정보기관의 간첩 사건 조작을 이번 사건에 대한 막연한 방패로 삼으려 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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