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갑작스런 ‘이석기 내란음모죄 수사’에 대해 신문과 방송이 대부분의 정보를 국정원에 의존하며 결과적으로 공안몰이에 동원되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선거 등 정치개입으로 수세에 몰렸던 국정원이 이번 수사로 국면을 전환하며 최대 수혜자가 된 상황에서 대부분의 언론은 이 같은 배경에 주목하기보다 ‘국정원 發’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28일 보도된 방송사의 단독보도와 29일 보도된 신문사 지면은 대부분이 국정원 익명의 관계자에 의존하고 있다. 내란음모죄 혐의로 이뤄지는 수사가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33년 만으로 이례적인 상황에서 국정원을 이번 사건의 이해당사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보도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은 일방적인 취재원에 의존하며 사실상 ‘국정원 확성기’가 되고 있다.

KBS는 28일 <뉴스9>에서 “이석기 의원은 서울의 한 교육관을 빌려 북한의 무력 행동에 대비해 기술적, 물질적 준비를 하라는 취지의 강연을 한 것으로 국정원과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며 “참석자들의 팀별 토론에서는 경찰 지구대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하는 등의 구체적인 모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 사건은 국정원이 3년간 내사해온 것으로, 최근 결정적인 증거가 잡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KBS 28일자 '뉴스9' 보도.
 
같은 날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공안당국은) 전시에 개개인이 1인 초소가 될 수 있도록 총포류 확보방안도 강구하라는 발언을 한 정황을 잡고 압수수색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확보에 나섰다”고 보도한 뒤 “이 의원이 현재 신분을 숨긴 채 도주 중”이라 전했다.

조선일보 또한 29일 보도에서 수사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이 의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오피스텔에서 압수 수색이 진행 중인 상황을 목격한 후 곧바로 사라졌다”며 “수사기관 주변에서는 이 의원이 변장을 하고 마포 사무실에 나타났다가 도주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29일 당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해 언론의 ‘변장 도주’설은 중단됐다.

JTBC는 28일 메인뉴스에서 “이 의원의 선거광고 대행사인 CNP 산하 회사의 관계자가 중국에서 북한 고위급 인사와 접촉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관계자가 수 년 간 북한 고위직과 연락했던 증거 자료를 중국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 JTBC 28일자 메인뉴스 화면.
 
   
▲ TV조선 28일자 메인뉴스.
 
TV조선은 같은 날 메인뉴스에서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을 단독으로 공개하며 “압수수색 대상은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실행하기 위해 공모, 모의하거나 선동 선전한 사실과 관련한 입증자료 또는 그 내용이 기재된 문건”이라며 “국정원은 지난해 총선 직후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석기 의원의 불법행위혐의를 새롭게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이 지하 조직원에게 ‘총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녹취록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보도했다.

채널A는 메인뉴스에서 단독보도라며 “국정원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130여명은 지난 5월 1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종교시설에 모여 내란을 모의한 혐의다. 이 자리에서 이석기 의원은 전시상태를 대비해 물질적, 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참석자들은 지역별 분임 토론을 거쳐 다양한 방안을 발표했다. 지역별 대표자들은 ‘총을 준비해야 한다’ ‘전화국을 접수해야 한다’ ‘인천의 유류 저장소를 파괴해야 하는데 벽이 너무 두껍다’ ‘대중동원도 필요하다’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방송 보도 대부분은 국정원 익명의 관계자 발언에 의존한 것이다. ‘이석기 내란음모죄 수사’를 취재한 방송사의 한 기자는 “정보가 나오는 쪽은 국정원·수원지검 공안부·대검찰청 정도다. 취재접근이 잘 안되니 팩트 확인은 당연히 어렵다”고 밝힌 뒤 “이석기 의원은 지금 피의자 신분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검찰이나 국정원이 정보를 흘려주면 언론이 쓰는 관행 자체가 문제다.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보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29일자 기사.
 
국정원 발發 기사는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는 29일 국정원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측의) 내란 음모 혐의 등을 입증할 5건의 녹취록이 확보됐다”,“국정원은 (이석기 측이) 마포구 종교 시설 등에서 회합을 갖고 유사시에 유류 통신 등 국가 기간 시설을 파괴하고 이를 위해 총기나 폭약 마련 방안 등을 논의하는 등 수차례 체제 전복 내란을 모의했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정원측은 거의 반란을 도모한 수준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경기동부연합 모임에서) 북한군 군가인 적기가를 합창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 의원의 측근 인사가 중국에서 북한 고위직과 접촉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공안당국 관계자 말을 인용해 “종북 세력에게는 통진당 창당 자체가 국회 진입을 위한 교두보였던 셈”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국정원과 검찰에 따르면 RO(무장인민혁명조직)는 남북한 간의 전쟁이 벌어질 경우 KT혜화지사와 분당인터넷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국가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경부선 호남선 등 주요 철도시설을 파괴할 계획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평택물류기지도 타격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29일자 기사.
 

   
▲ 동아일보 29일자 기사.
 
이처럼 주요 언론은 국정원에서 발표하는 정보를 익명에 기댄 국정원 관계자 말만 믿고 보도하고 있다. 관련 정보를 국정원이 독점한 구조의 결과라고 하지만, ‘내란음모죄’라는 극히 예외적이고 민감한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내사 3년 만에 갑작스레 압수수색에 나선 공안당국에 대한 의문보다는 ‘일단 보도하고 보자’에 가까운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취재 중인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혐의와 별개로 내사 중이던 수사를 공개 전환한 타이밍이 왜 어제인지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공안당국이 지금 시점에서 긴급하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정황상 의심은 되지만 팩트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해프닝이 된 ‘이석기 변장 도주설’ 등을 언급하며 “언론은 지금 특정한 편견을 갖고 국정원으로부터 확보한 정보를 거르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출하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해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김서중 교수는 “언론은 이번 사건에 대단히 심각한 내란이 존재했던 것처럼 인상을 씌우고 있는데 녹취에서 공개되는 실제 내용은 다를 수도 있다. 내란 음모는 중대 범죄인만큼 언론은 보도에 신중해야 하는데 현재는 국정원의 표현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며 언론인의 신중한 보도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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