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전멸한 ‘탐사보도’ 부활할 수 있을까
어느덧 전멸한 ‘탐사보도’ 부활할 수 있을까
경영난·인식부족·권력압박 극복이 과제… 제도권에선 ‘뉴스타파’ 모델 적용 쉽지 않을 듯

한국 언론에도 ‘탐사보도 전성시대’라는 말이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이었다. ‘탐사보도가 살 길’이라는 비장함 속에 다양한 결과물들이 쏟아졌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탐사보도팀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탐사보도의 중흥을 이끌었던 ‘주역’들의 진단은 비슷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깊어졌다. 탐사보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2005년 4월, 중앙일보는 사고(社告)를 냈다. “본지 이규연·김기찬·김정하·손민호 기자가 미국 탐사보도협회(IRE)가 주는 ‘2004년 외국 언론 특별상’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IRE는 미국 미주리주립대에 위치한 세계적인 탐사보도 전문 언론단체다. 중앙일보는 2004년 3월에 보도한 ‘가난에 갇힌 아이들’ 시리즈로 상을 받았다. 한국 언론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중앙일보가 탐사보도팀(기획보도TF팀)을 처음 구성한 건 1998년이다.

세계일보는 2005년 1월, ‘탐사보도의 세계’라는 전문 사이트를 열었다. 탐사보도 기사와 관련 자료 등을 소개했다. 2001년 특별기획취재팀이 구성된 이후, 세계일보는 <기록이 없는 나라>, <당신의 주민번호가 떠돈다>, <미군기지 환경오염리포트> 등을 보도했다. 한국신문상, 엠네스티언론상 등을 받았다. 2004년에는 ‘이달의 기자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했다. ‘탐사보도에 강한 신문’은 세계일보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세계일보가 신문 1면을 바꿨다’는 평가도 나왔다.

   
세계일보가 운영했던 탐사보도 홈페이지.
 
탐사보도의 전성기였다. KBS에도 2005년 4월 탐사보도팀이 신설됐다. 같은 해 국민일보도 ‘기획취재팀’을 출범시켰고, 동아일보와 서울신문, 경향신문 등도 비슷한 시기 탐사보도 전담팀을 편집국 내에 꾸렸다.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탐사보도 기사를 내놓았고, 사회적 반향도 컸다. “기사가 몇 건이 돼도 상관없으니까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대로 원하는 걸 써봐라. 그거였죠.”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을 이끌었던 채희창 산업부장의 말이다.

탐사보도는 흔히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의 이면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보도방식’으로 정의(定意)된다.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특징도 있다. 탐사보도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된다. 결과물은 드물게 나온다. 안수찬 전 한겨레 탐사보도팀장은 “기본적으로 일간지는 일간·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경영진이나 데스크는) 탐사보도를 기자들에게 독려할 뿐, 시간을 확보해주는 데는 매우 미흡하다. 그런 마인드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탐사보도를 전담하는 팀이 생긴 건 이런 이유에서다. ‘출입처를 벗어나야 탐사보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KBS 탐사보도팀을 이끌었던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9시 뉴스의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 포맷, 1분20초짜리 짧은 리포트, 데일리성 리포트로는 사회의 복잡한 현안이나 이슈를 다루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준비모임’을 결성해 해외 사례를 모으고, 탐사보도를 연구했다. 이 같은 기자들의 ‘문제의식’은  탐사보도팀의 활약으로 이어졌다.

언론사 경영진들의 판단은 달랐다. 채희창 부장은 “경영진들에게 탐사보도의 가치나 효용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신문의 질을 높이고 충성독자들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탐사보도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안수찬 전 팀장은 “이런 기사를 쓴다고 해서 언론의 위기, 특히 언론사의 상업적인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는 걸 경영진에 입증해 보이기에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탐사보도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탐사보도팀은 수시로 외풍에 시달렸다. 2005년 부활한 탐사기획팀의 팀장을 맡았던 중앙일보 이규연 논설위원은 “편집인이나 국장이 바뀔 때마다 춤을 췄다”고 말했다. 또 “‘편집국 인원이 적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탐사보도팀에서 인력을 뺀다”는 문제도 있었다. “근시안적 사고가 부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권력과 경영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도 빠지지 않는다. KBS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5년 10월 KBS 탐사보도팀이 4개월에 걸쳐 추적한 KBS 스페셜 <고위공직자 그들의 재산을 검증하다> 편. ⓒKBS
 
당시 KBS 탐사보도팀의 검증 보도로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이 줄줄이 자진 사임했다. KBS는 정권 초기 추진됐던 공공기관장 인사를 ‘측근 챙기기’로 결론지었고, 정부 관료들과 건설사의 커넥션을 들춰내 ‘서민경제’ 구호의 실체를 폭로하기도 했다. 김용진 대표는 “KBS의 경우는 탄압이라고 해도 될 텐데,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사장도 바뀌었다. 탐사보도팀의 뉴스에 정권도 부담을 느꼈던 것 같고 회사 경영진도 그런 의중을 반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은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KBS의 탐사보도팀은 2008년 조직이 3분의 1로 줄어든 끝에 2010년 끝내 해체됐다. 지난해 파업이 종료되고 탐사보도팀이 부활하긴 했지만, 조직 규모는 축소됐다. 조선일보의 탐사보도팀은 출범 1년만인 2005년 4월 흩어졌고, 중앙일보와 세계일보에서도 탐사보도팀은 해체와 부활을 반복했다. ‘한겨레in’이라는 이름으로 탐사보도 기사를 내며 주목을 받았던 한겨레 탐사보도팀도 출범 1년을 조금 넘긴 2012년 7월 해체됐다.

이런 상황에서 비영리 탐사보도매체를 표방한 ‘뉴스타파’는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제한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는 약점이 있다”면서도 “탐사보도라는 게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탐사보도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상황에서 뉴스타파가 일종의 균열을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 매체들의 탐사보도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지금 '비영리 탐사보도매체'를 지향하고 있는 뉴스타파가 지난 6월 보도한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편. 뉴스타파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뉴스타파가 기존 언론사들의 모델이 되긴 어렵다. 뉴스타파는 출입처와 속보에 쫓기지 않는다. 시시각각 온라인 기사를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3만여명의 후원회원을 확보해 탐사보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재생산 구조를 마련했다. 최근의 ‘조세피난처’ 특종은 그 결과물이다. 반면 신문·방송의 기자들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탐사보도의 퇴조를 불러왔던 요인들은 그대로다. 이규연 논설위원은 “적어도 제도권 언론에서는 살아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시 ‘기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진 대표는 “기본적으로 본래의 저널리즘은 기자가 직접 취재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탐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탐사팀을 운영해야 탐사보도가 된다고 보진 않는다”며 “(언론들이) 탐사보도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채희창 부장은 “결국 탐사보도는 기사”라며 “시간이 흘러도 기록이 될 만한 기사, 그런 탐사보도는 언제든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용진 교수는 “생산과 수요라는 측면에서 탐사보도의 조건자체는 상당히 나쁜 상황”이라면서도 “탐사보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무엇”이라고 강조했다. 안수찬 전 팀장은 “탐사보도를 늘린다고 독자가 늘어나지는 않지만 충성 독자가 늘어나고, 임계점에 이르면 양적 전환도 일어날 것”이라며 “일회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전면적인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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